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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소송을 하고 있는 중 배우자의 동의 없이 시험관 시술로 아이를 임신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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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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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일기. 2


BY 손풍금 2006-07-16

창문을 열어놓고 빗소리를 듣고있습니다.

요즈음 부쩍 잎이 무성해진 베란다 앞에 있는 나무가지에서 새가 종일토록 울고있어요.

아마도 집 없는 새 같았어요.

<집이 없는....>

 

겨울이면 동네 공원벤취에 신문지를 덮고 누워있는 노숙자들을 보면 그냥 지나칠수가 없습니다.

이 만큼 걷다 먼발치에서 뒤돌아 몰래 확인하는 버릇까지 생겼습니다.

오래도록 함께 했던 옛남자는 아닐까... 저렇게 밤새다 눈이라도 오면 저 사람 얼어 죽으면 어떻게하지.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면 일을 하면 적어도 거리에서 몸누이지는 않아도 될텐데.

왜 일을 하지 않을까.

가슴을 쓸어내리며 가던 발걸음을 다시 옮깁니다.

 

 

 

 

지난 달.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기 전 두아이를 앉혀놓고 블로그에 올려놓은 <이혼일기>를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다 읽고 난 아이들이 말이 없습니다.

\"엄마가 책을 계약했는데 이 원고를 넘기려 하는데... 너희들 생각은 어떠니? \"

큰아이와 둘째아이가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너희들이 원하지 않으면 안넘길거고...혹시 너희친구들이 보게되면... \"

두아이는 동시에

\"우리는 괜찮아. 엄마 넘겨...\"

그리고는

\"그 이후에 일은 왜 안썼어? 아빠가 엄마를 더 무섭게 괴롭혔던일 말이야. 아빠도 그런 글 봐야 한단 말야.\"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상처가 너무 깊어 마음아픕니다.

<이혼일기>원고를 넘기기 전까지 몇날을 고심했고 가까운 친구에게 상의를 했습니다.

넘기라고 아픈상처를 품고있지 말고 그만 내려놓으라고...

그 글을 못넘기고 망설이는 이유가 뭔데...하고 되려 화를 내었습니다.

출판사에 원고를 넘긴 그 날부터 하루도 편히 잠들지 못했습니다.

 

오래도록 함께했던 옛남자의 등뒤에 나쁜남자라고... 세상사람들을 향해 주홍글씨를 새겨놓는것 같아서요.

 

몇날을 고민하다 급하게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도저히 안되겠어요. 원고 중 <이혼일기>는 빼주세요.\"

 

\"왜요? \"편집장님이 말합니다.

 

\"제가 마음이 편치 않아서 안되겠어요. 그 사람이 잘살아주길를 진심으로 빌고 있어요.

원고를 넘긴 그 날부터 잠을 이룰수가 없어요. 죄송해요.\"

 

\"그 글을 빼면 글의 중심을 잡기가 힘든데요.\"편집장이 다시 말합니다.

 

\"그래도 싫어요. 출판 안해도 좋아요. 빼주세요.\"

 

\"상의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죄송해요.\"

 

다음날 연락이 왔습니다.

\"안선생님 마음 편한데로 해드리겠습니다. 또 달리 빼고 싶은글은 없나요?\"

하는 배려도 잊지않았어요. 정말이지 고마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옛남자와 헤어진지 3년이 넘어섰습니다.

아주 드물게 제게 재혼을 물어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듭니다.

 

\"저는 남자가 싫습니다.\"

 

\"세상에 좋은남자가 얼마나 많은데요.

그래서 아내에게 잘해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떴을때 혼자남은 여자는 곧 재혼을 하지요.

그 남자에게 받은 사랑을 기억해내고는 쓸쓸해 혼자서는 살아가지를 못해서이지요.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답니다.\"

 

저는 혼자서도 잘놀고 잘삽니다.

우울증요?
우울증 걸릴 시간없습니다.

살아야해요. 어떻게든 살아서 모든 걸 제자리에 놓아야 합니다. 나는 그만큼 절박합니다.

남자요?

재혼요?

하아. 참. 내~

 

이제 비로서 사는거 같은걸요.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를겁니다.

접근금지를 받아내고 이혼을 하고 나서도 옛남자는 집을 나가지 않았어요.

 

\"이혼했으니까 이제 여기서 나가줘... \' 나가지 않는 남자를 붙들고 저는 사정을 합니다.

\"우리는 이제 이혼했으니까 남이잖아. 그러니 나가줘...제발\"

\"갈때 없어. 못나가.\" 옛남자는 언제나 제 멋대로입니다.

그런 옛남자가 안하던 짓을 하기 시작합니다.

제가 일하고 돌아오면 설겆이도 해주고 이불도 펴줍니다.

이혼하고 나니까 말이지요. 말하자면 동거로 들어간 셈입니다.

나는 이 남자만 보면 숨이막혀 곧 쓰러질것 같은데요.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술마시면 자기도 다스리지 못하는 폭력을 잠재우기 위해 어디선가 자고 들어오는 노력도 합니다.

나는 그게 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미 모든건 다 끝났는데... 그 결과에 승복하지않고 우리에게 무슨일 있었냐는 듯 하는 그 행위에 대해서 말이지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아무말도 못하고 불덩이를 꿀꺽 삼킨 듯 가슴만 다 타들어 갑니다.

 

그를 보낼 수 있는 계기가 우연히도 찾아옵니다.

가지 않으려는 그를  내게서 떠나 보냅니다.

 

그를 떠나보냈지만 노상에서 술취해 쓰러져 있는 남자만 보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어디선가 그도 저러고 있지 않을까... 마음이 아픕니다.

덜컥 아프기라도 한다면 돈 한푼없이 치료도 받지 못하고 병들어 죽어가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지만 말이예요.

이러다 덜컥 아프기라도 한다면 아파도 마음놓고 아프지 못하는게 더 슬픈일아닐까.

몸은 눕힐곳이 있을까.

앞으로 한참 교육받고 성장하여야 될 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게 더 기막힌 일이였지요.

사는게 하루 하루 힘들지만 누구 하나 의지할 곳 없는 현실에 마지막 보루로 종신보험을 듭니다.

우리 세식구. 그리고 망설이다 옛남자것도 듭니다. 이렇게 네 사람의 보험을 들었습니다.

삼년 전에 말이지요.

 

지난 해 옛남자에게 보험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일년이 넘게 보험을 들고 부었으니  이제 도저히 힘들어서 못붙겠으니 본인이 직접 부우라고...

늙어 병들면 바람막이는 되어줄거라고...

 

옛남자는 누가 내 걱정해달랬느냐고 세상에 있는 험한 욕이란 욕은 다들고 와 제게 바가지로 퍼붓습니다.

험한 욕설에 전화선이 끊어지지 않은게 다행입니다.

그리고는 보험료 낼 돈 있으면 지난날  내게 주었던 자기의 돈을 돌려 달라고 합니다.

................

 

다시 죽을동 살동 일을하며 마지막 생명줄인것 처럼 보험료를 먼저 챙겨넣습니다.

요 며칠 전 비에 흠뻑 젖어 장터에서 물에빠진 생쥐꼴을 하고 물건을 차에 싣고 있는데 옛남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받아야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를 받은 내게 한동안 말이 없습니다.

\"말해봐. 왜 그러는데...\"좋은날엔 친구처럼 지내던 마음으로 그에게 말합니다.

못알아듣는 소리로 웅얼거립니다.

\'무슨일인데...\"

 

\"혹시 예전에 말한 그 보험... 지금도 내고있니?

 

\".....응. 왜 그러는데...\"

 

\"내가 좀 다쳤어. 내일 수술 들어가...\"

............

쏟아붓는 비를 감당하지 못해 짐을 옮겨싣다 다리에 힘이 빠져 비가 오든 말든 길에 주저 앉습니다.

 

일을 하다 다쳤을리는 만무합니다.

부디 자기 몸이나 잘 건사하고 살아주었으면 했는데...

옛남자가 말을 하지 않아도 왜 다쳤는지는 다 압니다. 그럼요. 알고말고요.

세상에...  아직도 그러고 싶을까... 

인생에 실패한 자신과 자식을 위해서라도 이를 악물고 보란듯이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보지않아도 술처먹고 싸운게 분명해요. 이럴때는 처먹었다고 말해야해요.

술은 그렇게 먹는게 아니잖아요.

 

\"보험회사에 연락하라고 할게.\"

 

그래 비라도 주룩주룩 와라...

이 더러운 놈의 한 세상...다 씻겨 나가게....

 

 

 

 

천경자님의 <어느 여인의 시.>

 

 

집에 돌아가 아들을 앞에 앉혀놓고 이야기 합니다.

아빠라면 고개먼저 돌리는 아들은 내 말에 한마디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아빠가 없다면 네가 이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아빠가 밉다고 버릴 수는 없는거다. 아빠가 많이 다쳤으니 가봐야지. 어서...\"

녀석이 싫다고 도리질 해요.

\"군대가기 전에 인사 가는거다 생각하고...어서 빨리 병원에 가봐.\"

그래도 싫다고 나한테 이제 소리까지 지릅니다.

\"이 나쁜놈의 자식. 너 나한테 한번 맞아볼래.\"

끝까지 가지 않는다는 녀석에게 빗자루를 가지고 와 업드리라고 했어요.

나는 녀석의 엉덩이를 내 힘이 다할때까지 내려칩니다.

힘은 벌써 다 빠졌는데 녀석이 꿈쩍도 하지 않아 나는 엉엉 울면서 내려칩니다.

빗자루 꽁댕이가 풀어집니다. 손바닥에 가시가 박힙니다.

학교에서 늦게 돌아온 딸아이가 문을 따고 들어오고 나는 그자리에서 내려치는 것을 그만두고 두다리를 뻗고 울어버립니다.

 

다음 날 녀석이 제 아빠가 있는 병원엘 갔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옛남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 보내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힘들었을텐데 보험들어줘서 고맙다고...이제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앞으로 전화하는 일 없을테니 이제 마음 편히 살라고...다시는 괴롭히지 않겠다고.

 

<미안하다. 잘살아...>

 

 옛남자가 내게 미안하다고 말을 해요.

잘못했다고 한 적은 여러번이지만 미안하다고 한 적은 처음입니다.

 

<미안하다.  잘 살아...>

 이제 옛남자는 찾아오지 않을겁니다.

 언젠가는 미안하다. 라는 말을 꼭 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때 비로서 내가 놓여지는 날이고 그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하느님. 왜 그렇게 오래도록 저를 미워하셨어요?>

 

 

기차는 8시에 떠나네

 

Agnes Balt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