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문고에 책을 반납하고 큰아이 책을 세권이나 빌려서 비오는 거리를
걸었다.
태풍이 온다는데 아마도 그 위력이 만만치 않은가보다.
그래도 아직은 중부지방에 커다란 피해는 없지만 자연의 변화무쌍함이란 인간의 힘으론 도저히 감당해낼수 없는 조화이니 일찌감치 조심조심함이 상책인것 같다.
매일 다니는 길인데 언제 피었는지 무궁화꽃이 떨어지는 빗물이 힘에 겨워
고개를 숙이고 빗방울을 떨어내고 있다.
카메라를 꺼내 물먹은 무궁화를 보며 눈을 맞춰준다.
시골의 시냇가는 엄마의 빨래터도 되어 주었다가
목말라하는 벼들의 시원한 목을 축여주는 농수로도 되어 주었다가
개구장이들 여름 한나절 시원하게 멱을 감게해주는 간이 수영장도 되어 주었다.
우리 5남매만 다 참석을 해도 그득할만한 개울인데 찌는듯한 날씨가 며칠
지속되고보면 아이들은 너나할것 없이 개울가로 모여든다.
말많은 지지배들이 남자애들이랑 빤쓰만 입고 물놀이를 하는게 그당시엔 별로 게의치 않게 생각이 들었는데
조금 조숙했던 아이들은 그나마 빤쓰에 런닝조각을 하나 더 걸치고 물장난을 쳤다.
개울가 옆으로 작은 동산이 있는데 그곳엔 지지배들만의 간이 탈의실이 있는데 남자아이들은 얼씬도 못하게 철저하게 자리 매갬을 확실히 해놓은 곳이 있다
양지바른 곳에 산소가 하나있고 그 앞으로 울타리 모냥 무궁화를 빙돌려심었는데
그 촘촘함이 개미한마리 들어가지 못할정도로 촘촘하니 지지배들의 탈의실로는 안성맞춤이었던게다.
아마도 그 산소주인은 죽어서도 무궁화꽃을 울타리로 삼을 정도니 애국자 임에 틀림없었을 거라고 아이들끼리 수근거리기도 했고...
사실 애국자이건 아니건 우리에게 유용한 탈의실을 제공해줬으니 애국자 보다 더한 대접을 받은 분이었다.
물놀이를 하고나서 갈아입을 속옷이며 수건을 구퉁이에 찔러놓고
무궁화 잎사귀를 몇개따서 귀에 막고 물놀이를 시작하면 어느덧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오고 물의 차가운 기운이 온몸에 시원하게 전달이 되어온다.
유일하게 수영을 할줄 몰랐던 우리집 다섯형제들...그 흔하디 흔한 개헤염도 칠줄 몰랐으니 어디가서 시골출신이라고 명함도 못내민다.
그렇게 오후의 햇살은 기울고 지지배들은 무궁화 울타리속 조용한곳에서
말끔히 옷을 갈아입고 집으로 향한다.
어느 유명호텔 수영장 보다 어느 유명한 리조트의 수영장 보다 더 훌륭했던 우리들의 간이 수영장과 무궁화울타리 탈의실은 세월이 흘러 흘러
엄마의 빨래터도 못 되어주고
동네 꼬마들의 수영장도 못 되어주고...
그나마 아직까지는 농수로서의 기능만 할뿐...
우리들의 기억속에서 멀어져간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세월따라 어느 도회지 사람이 그 동산을 사들여서
전원주택을 짓겠다고 산소도 이장을 했으니 그 애국자와 함께 무궁화꽃도 옯겨졌나보다.
무성한 풀만이 자리한 동산과 개울가는 세월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남겨놓았지만
지나칠적마다 웃음이 절로 베어나온다.
우린 흙탕물에서도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으니까....
그리고 무궁화 울타리...
그리고 애국자...
그리고 지금은 어디메에서 잘들 살고있을 지지배들이 그리운 비오는 오후 나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