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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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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여분 간의 상념 (아름다운 뒷 모습)


BY 조약돌 2006-07-10

일어나기는 좀 빠른것 같아 뒤척이고 있는 아른 아침에

요란스레 전화 벨이 울린다.

잠시 누굴까 생각하다 이시각에 전화할 사람은 친정엄마 밖에

없는데 싶어 수화기를 드니 역시 엄마의 목소리다.

 

지난번 오셨을때 우리 큰 아이가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청국장이

제일 맛이 있다며 할머니 살아 계실때 나보고 얼른 배우라고 했던말이

맘에 걸리셨는지 관절때문에 고생 하시면서도 손수 농사 지으신 콩을

절반도 더 퍼다 주시곤 또 외손주 청국장 해주려고 나머지  

콩을 가지고 오실 모양이다.

 

전화를 끊고 한시간 반 후면 도착하실 엄마를 마중하기 위해

아침을 서두른다.

모처럼 부지런을 떨고 전철역에 도착하니 30여분의 여유가 있고

출근 시간이라 그런지 모두 종종걸음 치는 사람뿐  나 혼자 만이

역전 의자에 덩그러니 앉아 오가는 사람에게 눈길을 주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십여분이 지났을까  잠시 전까지 그리 붐비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그때부터는 머리가 희끗 희끗 하신 노인들이 주

고객이고 오시는 분마다 우대권을 받으시는 분들이다 보니

창구 앞에서의 모습도 각양 각색이다.

 

무표정 하게 내미는 표 한장을 무표정하게 받아 가시는 어른이

있는가 하면 조금 전의 연배 인듯한  할아버지 한분은 작은 배낭을

메고 주황색 모자에 빨간  조끼를 입으시곤 내미는 표 한장을  받아

들면서 가벼운 목례와 함께 한 손을 번쩍 들어 씩씩하게 인사를

한후 바쁘게  출구를 빠져 나가신다.

 

잠시후 도시에 있는 자식에게 한 보따리 전해주고

다시 시골로 향하시는 듯한  두 촌로의 모습

자식들이 시원하게 여름을 보내시라고 사드렸는지

모시메리 남 녀 두벌에 약간의 선물 꾸러미를 든채

무엇이 그리 미안 하신지 잠시 주저 주저 하시더니만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표 두장을 받아들고 가시는

모습에서 우리 친정 엄마의 모습도 함께 스쳐 지나간다.

 

그 모습을 보며 지금 어디 쯤 올라 오실까 생각에 잠기는데

칠십은 더 되어 보이고 머리가 희끗 희끗하신 아주 

점 잖아 보이는 노 신사 한분

창구 앞에서 가볍게 목례를 함과 동시에 바지 주머니로

손을 넣어 돈을 꺼내시는것 같아 나를 잠시 의아하게 만들더니

한손으론 표를 받아 들고 다른 한손으론 감사함의 조그마한

보답인지 창구 앞에 놓여진 하트 모양의 불우 이웃돕기 모금함에

\"땡그렁\" :땡그렁\"  동전 두개를 떨구고는 다시 가벼운 목례와

함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를 뜨시는 것이었다.

순간  그 뒷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고 흐믓 하던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눈길이 머물게 했다. 

 

난  십 여 년이 조금 더 지난 후에 이중 어떤 사람의

모습으로 창구 앞에 서있게 될까?

지금의  바램으론 작은 배낭을 메고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들꽃 찾아 산으로 향하면서 가던 걸음 잠시 멈추고 서서

저 노신사처럼 동전 몇개라도 떨굴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앞으로의 미래를 꿈꾸어 보는데

 

모두가 입구를 통과해 빠져 나가고 한참이 지난 시간

뒤 늦게 한 노인이 두손 가득 짐을 들고 두리번 거리며

밖을 향하는 것이 보인다.

 

그제야 정신이 퍼뜩 들어 자세히 보니

아들 들의 걱정을 들으며 작년 여름내내

뙤약 볕에서 얻어내신 콩이 배낭에 들어 있는지 

소 처럼 굽은 등에는 보기에도 많이 무거워 보이는

자주색 가방이 매달려 있고 텃밭에서 가꾼 야채까지

가지고 오셨는지 양손 가득 짐을 들고는 나가려다

다급하게 \"엄마~\" 하고 부르는 딸의 목소리를

확인 하시곤 팔순의 노모가 환하게 웃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