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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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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루미 선데이


BY 손풍금 2006-07-09

비.jpg

 

 

글루미선데이. O.S.T.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며칠 전 이였어요.

그 며칠 전부터 비가 내렸는데 날씨하고 아주 절묘하게 어울리는 영화였지요.

물론 그 날도 비가왔구요.

휴일에 그런 영화를 보는것은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지요.

 

 

<글루미 선데이.>

레코드발매 8주만에 187명이 노래를 듣다 자살을 했다는 죽음을 부르는 곡,

자살자의 찬가, 라는 수식어를 들을때마다 놓쳐버린 영화를 보고싶었어요. 아주 많이요.

다시 어제 밤부터 비가 내렸어요.

비가 와서 모처럼 보일러를 돌리고 업드려 걸레질을 하고 있었어요

발치에 걸린 리모콘을 들어 TV의 전원을 켜니 OCN에서 글루미선데이가 시작하고 있었어요.

아하~ 하고 쾌재를 불렀지요.

하던 걸레질을 멈추고 TV 앞에 앉았습니다.

커피물을 올렸지요.

커피는 타왔지만 부다페스트. 그 아름답고 적막한 도시의 영상에 빠져 아직 한모금도 마시지 못했습니다.

 

<여자를 사랑한 남자는 피아노를 치고 그의 곁에서 여자는 노래를 합니다.

여자의 노래가 끝나고 피아노를 치던 남자는

그 여자를 사랑하는 또 다른 남자의 권총을 빼앗아 자살을 합니다.

노래를 끝낸 여자가 화장실에서 총소리를 듣습니다.>

 

그제서야 식은커피를 돌아다 봤습니다.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해봤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벗어나 모멸감을 주는 관계.

그에 관한 자존심.

타협이 오른것일까. 이해하는것이 옳은것일까. 아니면 비껴가는것이 옳은것일까.

부딪혀 극단적인 방법을 찾아내는것이 옳은것일까.

습기찼던 날 내 눈은 빛나고 모처럼 정신과 영혼은 한없이 한없이 호사를 누립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려요.

날씨가 개였으니 어서나오라고...장사할 자리 다 해놨으니 빨리 나오라고...전화가 왔어요.

 

\"어, 나 오늘 휴일인데...지금 영화보고 있는데 , 오늘 하루 쉴래요.\" 하니

 

무슨 개풀뜯어먹는 소리 하느냐고..장마철에 날 개였을 때 하나라도 빨리 팔아야지. 돈 많이 벌어났느냐고...

언제 또 비올지도 모르는데...영화가 밥 먹여주는냐고... 그런 철 없는 짓 좀 하지말라고..

친한 장꾼언니가 말합니다.

 

\"그래도 이영화 꼭 봐야하는데... 조금만 있으면 끝났는데.. 그럼 조금만 있다가 나갈게요.\"

 

다른 장꾼들이 지금 자리 차지할라고 기다리고 있는데

여지껏 몇사람이나 쫓아보내느냐 우리가 얼마나 욕을 먹고 있는데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다른사람 앉힌데요

그 말을 듣고 나니 미안해서 할 말이 없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들고도 쉽게 집을 나서지 못하고 화면에서 눈을 뗄수 없어 뒷걸음질 칩니다.

 

다시 나왔느냐고 전화가 옵니다.

새벽부터 나가 비그치길 기다리고 자리 맡아준 언니에게 고마워 지금 막 나가고 있다고 했어요.

 

그래야지. 영화가 밥먹여주나...언니가 말했어요.

맞아요. 영화가 밥먹여줘? 안먹여주지...

 

사랑하는 남자를 땅속에 묻습니다.

그 곁에 한 남자가 서 있습니다.

주인공인 여자는 아름답습니다.

부다페스트 그 도시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했으니까요.

그녀를 사랑하는 또다른 독일장교가  나타납니다.

나는 뒷걸음질 치던 걸음을 멈춥니다.

 

다시 전화가 옵니다.

빨리 장에 나오라고.....ㅡ.ㅡ;;

 

문앞 신발장에 TV리모콘을 올려놓고 문을 잠급니다.

<짤칵.>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를 사랑한 유태인남자가 나는 참 좋던데...

운전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할때 뜬금없이 엊그제 장터로 찾아온 친구의 말이 떠올랐어요.

 

\"나는 네가 느닷없이 닥치는 일을 겪어나가면서 행여라도 마음다칠까봐 그게 가장 걱정된다.

부닥치는 모든 일들..어쩔수 없겠지만 혹시라도 마음다쳐 아예 마음마저 닫아버릴까 걱정된다.

단지 걱정되는 것은 그것뿐이야...\"

그렇게 친구가 말을 했어요.

 

그 말을 며칠동안 가만히 생각해봤습니다.

내 마음 다칠까봐 걱정해주는 그녀.

그녀 자신은 대가족에게 헌신을 하며 살아가는 아주 영리하고 똑똑한 그런데 정작 그 누구도 자신에 대해서는 단 한사람도 걱정없다는... 그런데도 늘 웃고 사는 파랑새같은 그녀에게 들은 그 말이 내내 새겨졌습니다.

아마 요즈음 내가 힘을 내고 있는것은 그녀의 말때문이였을겁니다. 

 

 

무주장._1.jpg

 

 

그런 그녀가 기차를 타고 장터에 왔어요.

\"아, 맛있다. 이거 맛있네요.\"하고 장꾼들이 말을 하자

제친구는 신이나 말합니다.

\"그거요. 토마토 살짝 데쳐서 껍질을 벗겨가지고 믹서에 갈았어요. 더운날 이렇게 고생하시는데 시원하게 드세요.\"

내 이웃들에게 한잔씩 다 돌립니다.

나는 친구의 속마음을 다 알고 있습니다.

 

<내 친구 밉더라도 예쁘게 봐주세요.

혹 갑작스레 비가 들이닥치거나 술취한 사람이 시비거는 곤란한 일 생기면 부탁드려요.> 그 뜻인 거 나는 다 알거든요.

보자기에 꽁꽁 묶은 김치를 들고오면서 아마 친구는 내게 어떻게든 기운을 불어넣어주고 싶었던거...

그것도 나는 다 알아요.

다 알고 있어. 영주엄마.

온통 상처 투성이인 내가 끝내는 주저 앉을까싶어서 걱정이 되었을까.

나는 자랑스럽게 토마토쥬스를 마셔요.

이거 내 친구가 갈아왔어요. 맛있어요. 하면서....

 

 

오늘 이야기는 몹시 길고 깁니다.

사실 오늘 장에 나갔었어요.

옥천영동에 집중호우가 내릴거라는 긴급 메세지를 확인하지 못했던것도 아마 제가 생각이 많아서였을거예요.

새벽에 장터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는 온몸이 흠뻑젖어 아이들이 깜짝 놀랬어요.

문을 여니 아마 비가 집으로 들어오는지 알았을거예요.

 

 

비_오는_날..jpg

 

집으로 돌아와 몇시간동안 죽은 듯이 누워있었어요.

지금도 아침일이  생각이 나 휘청휘청합니다.

숲에서 휩쓸려나온 나무가지와 죽은풀가지가 내 바지가랑이에 왜 걸쳐졌는지는 말하지 않겠어요.

이 이야기는 오래도록 숨겨놓겠습니다.

 

<글루미선데이>

 

저사람도 사랑이라는 것을 알까...하고 바라보게 되는

어제는 그런 생각을 종일 장터에서 했습니다.

 

주무시는_과일아줌마.jpg

 

 

 

 

오래 전 남편과 사별한 아주머니가 장에 나와 장사를 합니다.

그 아주머니는 숫자도 모르고 한글도 모른다고 했어요.

그래서 두부를 주문하거나 콩나물을 주문할때는 옆에 있는 할머니가 전화를 걸어주신답니다.

아주머니를 사람들은 얼마 전부터 떠벌이라 불러요.

그 떠벌이아주머니에게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답니다.

아주머니와 함께 사는 남자는 훤칠하게 잘생겼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제 곧 그 훤칠한 남자가 아주머니가 병들면 떠나버릴거라고 예언들을 합니다.

 

남자가 생기기 전에 장사를 할때 아주머니에겐 목욕도 안가 냄새가 났다고 흉을 봅니다.

혼자 살때는 옷도 손자옷입고 다니더니

저 콩나물 팔아 옷사입는것좀봐. 주책여. 파마도 글쎄 석달만에 다시했다네. 합니다.

석달만에 했다는것은 자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날마다 두피맛사지를 받는 저쪽편 여자들 이야기도 있는데 말이지요.>

 

그래서요?

 

글자도 모르는데 전화도 걸줄 모르면서 남자가 생기니까 핸드폰을 샀대.

핸드폰에 1번을 누르면 남자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날마다 전화기를 끼고 살더만

글쎄 몇달전에는 전화요금이 13만원이나 나왔다지 뭐여. 저 떠벌이 눈깔이 훽 뒤집혔지.

집구석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한겨.

그 돈 있으면 자식새끼들 주지... 저 여편네가 미쳤어.

그 전화요금때문에 한동안 정신 나간거 같더니 그래도 다시 전화질여...

전에는 언제 장에 나왔다가 들어갔는지도 몰르게 조용하더니 남자를 알고 나서는

얼마나 말이 많아졌는지 우리가 떠벌이라고 부른다니께.

어이~ 떠벌이 .하고 아주머니가 부릅니다.

 

부강언니.jpg

 

 

며칠 전 팔다남은 복숭아에 흠집이 많이 생겨 나눠먹자고 이웃장꾼들을 부르는 공주아줌마.

복숭아를 깎아먹기도 전에 떠벌이 아줌마는 비닐봉투를 펼쳐듭니다.

\"우리 신랑 줘야지.\"

그중 가장 멀쩡한 복숭아 세개를 담습니다.

모여앉은 아주머니들께서

\"집에서 퍼질러 노는 사람 뭐가 예쁘다고 갖다줘. 자네나 먹어. 그거 내놔. 우리들 노나(나누어)먹게.\"

떠벌이아줌마는 복숭아봉투가 담긴 봉투를 등뒤로 숨깁니다.

\"내가 우리 신랑 챙겨줘야지 누가 챙겨줘.\"

다시 핸드폰을 꺼냅니다.

1번을 오래도록 누릅니다.

\"난디유. 이따 복숭아가지고 갈께유. 점심은 챙겨먹었어유? 날 더워도 찌게 꼭 뎁혀먹어유. 잘못하면 탈나유\"

전화를 하는 내내 아주머니의 얼굴이 붉어집니다.

내 마음이 다 콩닥거렸어요.

 

사람들이 흉봅니다.

\"그렇게 좋아? 좋으면 뭐혀... 마누라 먹여살릴생각도 안하고 집에서 뭐한댜...그 멀쩡한 아자씨는...\"

한소리 하면 떠벌이 아주머니는 듣기 싫어합니다.

 

\"어여. 복숭아나 먹어...\"

 

 

무주장._4.jpg

 

요즈음 법정스님의 <맑고 향기롭게>를 읽고있습니다.

오늘 읽은 글 중 한문장을 옮겨보겠습니다.

 

<부슬비가 내리면서 숲에는 안개가 자욱이 서려있는데 아까부터 저 아래 골짜기에는 이따금 인기척에 실려 땅을 파는 괭이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시작되는 글은 \'가난한 이웃을 두고\' 를 소제목을 둔 글입니다.

숲에서 약초를 캐어 삼십리 밖에 있는 광천장에 갔다 팔려고 하는 아주머니의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에도 가난한 살림에 보태기 위해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하니, 세상은 참으로 고르지 않구나 싶었다. 그약 부리라는 걸 내다 팔아야 얼마나 받을까. 도시의 같은 또래 여인들이 손톱에 바르고 눈가에 칠하는 그런 물감 하나 살 만한 값에도 못 미칠 것은 뻔하다. 비에 젖은 머리와 옷을 보고 그대로 지나칠 수 없어 함께 올라와 아궁이에 불을 비치고 떡국을 끓여먹었다.>

...................................

 

 

오늘 제 이야기가 한없이 길어지는 걸 이해해주시겠어요.

 

저는 그 훤칠한 남자가 곧 떠나갈거라해도 떠벌이아주머니를 찾아와 사랑을 느끼게 해준 그 남자의 손을 높이 들어줍니다.

아주머니가 퍼머를 하고 화장을 하고 색깔이 고운 옷을 사입고...

나는 그 이야기만 들어도 눈물납니다.

 

왜냐하면 ...

가난한 늙은 여자는 사랑할줄을 모르는 줄 알았습니다.

 

핸드폰이야기.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