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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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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데기 클럽회장은 막자언니였다.


BY 정자 2006-07-06

 막자언니네 집에서 두 아줌마들에대해서 난  일부러 감추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돈이 없다고, 못생겼다고,  과거가 있다고  남자에게 버림을 받아 갈 곳 없어 헤맬때 막자 언니의 도움으로 죽겠다고 차에 뛰어든 여자를 보살피고 치료를 해 준 인연에, 떠벌이 아줌마처럼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사경을 헤메는 둘리아줌마도 병원에서 살려 낸 생명의 은인이었다.

 

 둘리 아줌마는 깨어나자 마자 막자언니 멱살을 잡고 흔들며 죽어가는 걸 왜 살렸냐고

책임지라고 한 통에 얼결에 같이 살았다고 한다.

 

여기에 네살박이 아들에 두살짜리 딸아이를 업고 내가  이사왔는데, 이사 온 모양새가 어설프고, 변변한 살림도 없이 두아이를 앞서거니 뒷서거니 걷는 폼이 반은 얼이 나간 표정이었다고 한다. 혼자 된 여자는 아닌 것 같고, 남편은 있는지 없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러다 막자언니는 우리 영은이를 보고 그렇게 귀여워 했다. 툭하면 당신 집에 데려가 그 좋은 음식솜씨를 발휘해 영은간식에, 아들놈 데리고 노는 재미로 나에게 수시로 왕래를 하니, 나 혼자  죽네 사네 고민하는 시간보다  오는 사람들 얼굴 읽는 게 더 바쁜 바람에 힘드네 어렵네라는 말을 잊어 버렸다.

 

 난 한참후에 알았다.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다 살다가 여기까지 흘러 들어온 것을 묻는 다면 그건 대단한 실례였다. 그럼에도 서로 아픈 상처를 감추기 위해 서로 더 큰 목소리로 싸워대니 아주 넌덜머리가 날 정도로 막자언니는 싸움 말리는 게 하루일과였다.

 

 거기에다 둘리 아줌마는 술꾼이었다,  둘리라는 별명도 요리보고 저리보고 확인하자, 술에 수면제를 밥먹듯이 겁없이 먹는 통에 막자언니는

늘 노심초사였다. 주방이며 싱크대며 구석 구석 일일검열하니 둘리 아줌마는 그래서 할 수없이 살았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여인네들이 오지게 먹은 마음에 뭉치니 이게 무서운 게 없고, 겁날 것도 없는 그 동네에서 난  다시 사는 것을 배우기 시작 한 것이다.

 

 우연히 인수한 시골다방에 우르르 몰려가 일하는 통에 바뻐서 싸울 틈이 없다고 떠벌이 아줌마가 나를 불러댄다. 영은이 데려와라..오면 맛있는 거 해놓을테니 꼭 데려와라 신신당부하니 나도 아예 언니네 가게에 두고 나 혼자 보험영업을 해 대었으니, 이보다 든든한 후원자

가  없었다.

 

 거기에 막자언니는 식당수입금을 고르게 분배를 했다. 없는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처지이니 나에게 아예 장부를 넘겨주고 통장을 넘겨 주어 회계를 보게 했다. 적자일 때도 있었는데, 등따습게 잘 방이 있으면. 밥 안굶고 살면 그걸로 만족하자 이런 식으로 서로 위안을 주었다. 난 각 각  개인보험으로 건강보험을 가입을 시키고 식당에서 발생되는 이익을 그대로 공개하고 달마다 보고를 했다. 막자언니나 다른 아줌마들도 어떤 이의도 토도 달지 않았다. 그럼에도  더욱 뭉쳐 커지니 나도 그 힘에 새삼 놀라곤 했다.

 

 서로 처지를  감춰 주어야만  상처회복을 할 수 있었던 것을 막자언니가  말없이 늘상 해대었던 곳. 김막자식당은 소박데기들이 모여 다시 사는 삶의 현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