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사춘기에 크게 마음을 다쳤다.
반항기의 여느 아이들처럼 가출도 했었다 하고, 담배도 피웠다 하고, 술도 마셨다 했다.
다행히 한 해 재수를 해서 대학엘 갔지만 어느새 술에 너무 길들여져 있어 공부는 하고 다니는지 그래서 허깨비 같은 남자를 내가 멋있다고 좋아하고 있는 건 아닌지 가끔씩 만나는 게 회의적일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 회의적인 건 잠깐이고 멋있게 보이는 건 오래 마음에 남아 그의 졸업과, 그의 취업과, 우리가 부부가 되는 것을 고만고만 한 때 한꺼번에 치르게 되었다.
그의 직장이 늘 술을 마시게 되어 있는 분위기라 깊은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 때문에 혼자 있는 게 무서워 남편과 데이트 하면서 배웠던 맥주를 홀짝거리다 취해 잠들곤 했다.
그렇게 안 듯, 모른 듯 술 실력이 늘어 지금은 부부이 앉아 주거니 받거니 대작을 하면 다음날 가볍게 일어나는 쪽은 오히려 내가 되고 말았다.
큰아이가 스물 두 살이 되었다.
삶을 살아내는 방법을 여전히 술에 의존해 자신도 모르게 가족을 힘들게 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남자의 모습을 배울까 두려워 서른 즈음에 미국 주재원으로 있을 때 그곳에서 태어난 큰아이를 미국으로 보내고 싶었다.
큰아이 적응시킨다는 것을 핑계로 남편을 일과 술에서 빼내오고 싶었다.
남편에게 둘째 더 늦기 전에 영어 연수도 시키자는 이유를 들이대며 1년 휴직을 강하게 권하고 가족이 다시 1년을 미국에서 보낸 뒤 큰아이를 남겨두고 돌아왔다.
대학생이 된 녀석에게 담배 냄새가 났다.
제 아빠가 예전에 (미국 갔을 때 끊었다) 피웠던 상표의 담배가 가방에 있었다.
금단 현상으로 힘들게 담배 끊으신 걸 보면서도 배웠느냐 핀잔을 하니 담배에서 아빠 냄새가 나더란다.
방학 중에 집에 온 녀석은 함께 있고 싶은 제 엄마의 심정 따윈 안중에도 없고 날마다 친구에, 술에 취해 들어온다.
제 아빠가 했던 것처럼 어느날엔 낄낄 웃고
어느날엔 엄마 미안하다 품으로 기어 들어와 어리광 하고
어느날엔 친구랑 싸웠다며 다 죽이겠다 으르렁대고
어느날엔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는 내게 씩 웃으며 손을 입에 대고 조용히 제 방으로 올라간다.
“제 아빠의 피가 아들의 몸을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