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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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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고 있는 피 (1)


BY 풀향기 2006-07-04

나는 엄마의 늦둥이였다.
그래서 엄마의 나이 든 모습 안에서 자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아이들과는 다르게 초등학교 때부터 내 일은 혼자 해 내야 했었다.
긴 머리감기, 속옷 빨기, 운동화 빨기, 방 청소하기, 미싱에 필요한 실을 원통에 감기 위해 실 타래를 내 양손에 걸고 엄마의 빠른 손놀림에 맞추어 양손을 뱅뱅 돌리며 풀어내야 하는 일.

그렇게 늘 엄마 옆에서 고물고물 커 나가는 동안 바라 본 엄마의 손재주는 내겐 늘 경이로움이었다.

엄마의 옷 만드는 솜씨는 그 중 으뜸이었다.

고등 학교 때 쯤이었을까?
일찌감치 대학을 포기하고 타자학원에 다니면서 한가한 시간에 바느질 하는 것을 가르쳐 달라 했더니 몸에 붙은 벌레 털어내듯 단호하게 안된다며 다시는 그런 말 하지도 말라 하셨다.
이유는 여자가 재주를 가지면 결국 그 재주 풀어 먹고 살게 된다며.

그래서 엄마 옆에서 사는 동안 미싱에 앉아 보지도 못하다 결혼 후 월부로 미싱을 사 혼자 실을 얽히고 풀고, 풀고 얽히고를 반복하며 엄마의 걱정처럼
재주라고 할만큼의 실력을 지니지 못해 바느질로 벌어 먹고 살지 않을 그만큼만  바느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의 피가 내 몸을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