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 번개가 친다.
하루 종일 회색빛이더니 저녁 해가 져서야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일기예보에선 아직 본격적인 장마라고 하지 않았다.
딸 아이가 자기는 비오는 날이 좋다고 한다.
어디 안가고 집에서 마냥 뭉갤수 있어서 좋단다.
얘는 방콕 스타일인 모양이야.
뭉개기 좋아해.
장마가 오면서 열대성 저기압이 발달하면 태풍이 몰아쳐 온다.
태풍. Typhoon. 53년부터 이름 지어졌단다.
처음엔 정치가 이름을 따서 지었다가 78년부터 여성의 이름, 혹은 여신 이름을 붙였단다.
왜냐고? 여자의 마음처럼 어디로 갈지 몰라서. 아니, 어디로 튈지 몰라서.
테스, 사라. 이런 태풍이 대표적이다.
그 이후에 여성들이 항의하여 여자, 남자 이름을 번갈아 쓰기로 했다.
(여자들의 파워는 그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막강했나부다.)
아시아에선 각 국가별로 정한 고유의 이름을 돌아가면서 태풍의 이름을 붙인다고 한다.
북한에서 정한 이름들이 기러기, 갈매기, 도라지, 메아리, 매미.
남한에서 정한 이름들이 개미, 나리, 장어, 수달, 노루. 등등 이라고 한다.
2002년 월드컵이 전국민의 마음을 앗아가 모두 열광하고 들떴던 그 해.
서해 교전으로 우리의 해군 함정에 타고 있던 장교들과 장병들이 전사했던 그해.
태풍 루사.
강릉을 비롯해 동해안을 휩쓸고 지나갔다.
매년 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으로 그저 조금 참고 있으면 스치고 지날줄 알았던
이 바람이 본색을 드러냈다. 월드컵의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800mm가 넘는 비를 뿌렸다고 한다.
많은 지역이 침수되고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매시간 톱뉴스였다.
고금을 막론하고 나라에 재앙이 발생하면 제일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힘없고 가난한
국민들이다. 애써 가꾼 농지와 농작물이 유실되고 평생 살아온 집과 집터가
불과 몇시간 사이에 물줄기에, 산사태에 힘없이 파손되어 버린다.
곳곳에서 물에 잠긴 집에서 살림살이 하나라도 건지려는 이재민들의 애타는 마음이
연일 보도되었다.
우리 어릴적에도 비만 오면 마당에 물이 한강수였다.
여차하면 방안이나 부엌에 물이 언제 차 오를지 몰라 어른들이 잠도 안자고 지켰었다.
대야로 부엌의 물을 퍼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곳이 예전부터 여름에 태풍으로 비가 많이 왔었나보다.
2002년 그해. 강릉을 비롯한 동해안에 수해가 났을때.
강릉 공원묘지가 산사태에 휩쓸려 형체도 알수없이 무너져 내렸었다.
아, 아버지.
우리 아버지의 산소가 있었던 그곳.
연일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오빠와 남동생이 왔다갔다하면서 전화통에 불이 났다.
휩쓸려 무너진 봉분들, 뒤섞여버린 유골들. 오열하는 유가족들.
동생이 서울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그 소식을 물어 날랐다.
유전자검사까지 했단다.
얼마 안되서 아버지의 유골을 찾았다고 했다.
6.25전쟁중 총탄에 맞았던 다리의 상처. 뼈 속까지 상처가 있엇으니까.
동생이 확인햇다고 한다.
아버지의 유골을 화장해 동해바다에 뿌렸다.
아, 아버지.
난 비가 무섭다. 이 기억에서 도망가고 싶다.
그러나 이맘때쯤의 비 소식은 아픈 기억을 되살린다. 작년에도, 올해에도.
내년에도 그럴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