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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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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징후


BY 불토끼 2006-06-27



전철문이 열리고
 
40대 초반으로 뵈는 한쌍의 남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여자의 손에는 양념된 양고기가 가득 든
아가리 딱 벌린 케밥이 쥐어져 있다.
그 여자가 내 앞에 앉지 않길 바랬는데 아니나
다를까 텅빈 전철안에서도 하필이면 내 앞에 앉는다.

나는 고깃기름을 입술에 묻힌 채 우물거리는
그녀의 입을 보지 않기 위해
창밖을 내다 본다.
책을 읽는척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양고기 케밥에서 흘러나오는 냄새가
내 비위에 거슬리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다.

나는 고기를 숙이고 그녀의 차림새를 ㅤㅎㅜㅌ어본다.

‘아, 눈이 피곤하다’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 그녀의 패션센스를 욕하기 시작했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신발과 반바지,
대충 손에 집히는대로 입고 나온 듯한  푸르죽죽한 반바지,
거기에 빨간 사과무늬 남방은 또 뭐람.
잠시후
그 여자는 먹다만 양고기를 싸들고 하차했다.
휴-

전철에서 뭘 먹는 사람은 왜 역겨워보일까.
밖에서 식욕을 보이는 건
밖에서 성욕을 보이는 거와 비슷해서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다 생각의 중심이 나로 바뀌었다.

나는 언제부터
전철이나 버스안에서
식욕을 보이는 사람들을 역겨워했을까? 
불과  2, 3 년 전만해도 나 역시 입을 우물거리며
버스간에 앉아있었는데,
최근들어 그런 일이 없어졌다.

혹시나 내가 너무나 배가 고파
전철이나 버스안에서 뭘 먹어야 할 위급시에는 
승차하기 이전에 허겁지겁 먹어치운다거나
그러지 못할 시에는 차안 귀퉁이에서
돌아서서 먹고는 자리에 앉는 편이다.

그간 느끼지 못했는데 이건 놀라운 발견이다.
최근들어 내가 변했다는 것이.

공공장소에서 뭘 먹는 사람을 보는 것만 싫은 것이 아니라
싫어진 것이 꽤 많다.
엉덩이 살이 비져나오도록 딱 달라붙는 바지입은 여자,
팬티가 다 드러나도록 바지를 내려입은 남자,
버스에서 큰소리로 통화하는 사람,
옆사람이 들릴 정도로 크게 음악을 듣는 애들,
심하게 다리를 떠는 사람,
길가에서 진하게 키쓰하는 남녀 등
헤아리자면 수도 없다.

이 모든 것들은
불과 10여년 전에 우리 엄마가 금기시켰던 사항이다.
천하게 보이니
영문이 크게 쓰인 티셔츠는 입지 말아라,
화장을 짙게 하지 말아라,
딱 달라붙는 바지를 입지 말아라,
츄리닝을 입고 다니지 말아라,
그리고 복나가니
먹으면서 다니지 말아라,
문지방에 앉지마라,
다리를 떨지 말아라, 등등.

‘아줌마 짜증스럽고 고리타분하기도 하지!’

요렇게 한마디로 일축하고
얄망스럽게도 나는
계속해서
맹렬히 다리를 떨었고
낭창하게 문지방에 계속 앉았고
꽉 끼는 청바지를 입고 다녔었다. 

그런데 나는 이제 서서히
내 입으로 짜증스럽고 고리타분하다고 말했던
아줌마가 되어가는 모양이다.
눈에 거슬리는 젊은 것들이 왜이리도 많은지.

한창땐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관대해지고
이해심이 많아지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나이가 들수록
눈에 걸리적거리고
마음에 안드는 것이 많아진다.

한때 젊은이었던 늙은이들은
젊음을 잃어버리는 순간
‘요즘 애들은 말야...’로 시작되는
넋두리를 들어놓지.
이런 말로 내 증세를 일반화 시키지만...

아, 나는 점점 두려워진다.
장차 내 조카딸이나
그 비스무리한 여자아이들에게
정조는 목숨과도 같은 것이니
결혼전까지 지켜야한다고 하지나 않을까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