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향을 맡고 싶었던 여름날,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책이나 집어들고
버스를 타고 무작정 솔밭엘 갔다.
내가 집어든 책은
이상의 단편소설집이었는데,
그것이 솔밭의 솔향기와 떨어지는 솔방울 소리와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하루가 지난 오늘까지 그 여운이 남아있다.
그 책으로 말하자면
동시대 작가인
심훈과 이상의 작품집이었다.
나이만 9살 차이난다뿐 거의 동시대 인물임에 틀림 없는데
두 사람의 글이 어찌나 차이가 나는지.
나는 지금까지 한국문학이라고 하면 스토리가 뚜렷하고 해학적인
채만식이나 김유정, 김동인의 작품들을 선호해왔었다.
이상의 작품이라곤
고등학교때 배운 \'날개\'가 전부다.
그런데 그의 단편들을 읽고보니
가히 그가 천재로 불릴만하다는데에 의의를 달 수가 없다.
그의 단편들은
지금으로부터 100 년 전의 작가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정도로 세련됐다.
글이 21세기적인 것이 아니라,
그의 인간됨됨이가 21세기적인 것이다.
나는 그의 단편중 띄어쓰기가 안된 두편을 제외한 대여섯 편을 읽었는데
읽는 족족 내게 즐거움을 주었다.
근본이 기생인 그의 부인 금홍이는
그의 소설에 여러가지 모습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1인칭 작가시점인 그의 소설들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결혼 후에도 서방질을 하는 여편네를 오면 오나 가면 가나 받아들인 그의 면모.
사랑하는 금홍이를 다른 남자에게 양보하는 그의 면모,
그러면서 금홍이를 사랑하지 않는다 할 수 없는 그의 면모.
이런 것이 비단 사랑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그의 태도가 아니었을까 하고.
나는 이런 남자에게
친일파니 뭐니 하는 굴레를 씌우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설사 이상이 폐병을 이겨내고
육이오를 치렀다 쳐도,
그는 다른 지식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골수 공산주의자는 되지 못했으리라.
그에게 있어서 삶은 그냥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지는
아름다울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민들레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스물세 살이요, 3월이요, 각혈이다.
여섯 달 잘 기른 수염을 하루 면도칼로 다듬어 코밑에 다만 나비만큼 남겨가지고
약 한 제 지어들고, B라는 신개지 한적한 온천으로 갔다.
게서 나는 죽어도 좋았다.
이렇게 소설을 시작한 이상은
이 온천에서 금홍이를 만나 이렇게 소설을 맺는다.
금홍이는 은수저로 소반전을 딱딱 치면서
내가 한 번도 들은 일이 없는 구슬픈 창가를 한다.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질러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