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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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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홍서방네


BY 불토끼 2006-06-22



나에겐 이모가 없다.
우리 엄마가 외동딸인 까닭이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엄마의 사촌동생들을 친이모처럼 따른다.

그중에서 엄마와도, 우리와도 친하게 지냈던 이는
홍서방과 결혼한 홍서방네였다.
이름은 옥경이이모.

우리 외가쪽 사람들은
친가쪽보다 다 등치가 크고
키들이 크고 인물들이 헌칠하다.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그중 우리 엄마가 늘 홍서방네라고 일ㅤㅋㅓㅌ는
 옥경이 이모가 제일 기골이 장대하고 인물도 좋았다.
우리 엄마보다 열댓 살이나 어린 옥경이 이모.
처녀적에 화장품 가방을 들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화장품을 팔러 다닐 때
이모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화장품 모델
정윤희보다도 더 예뻤다.


처녀적 이모는
아모레 화장품 가방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가
전투적으로 화장품장사를 시작했다.
그걸로 부지런히 시집갈 밑천을 모으더니
실망스럽게도 어디서 시든 땡감같이
비실비실한 남자를 만나서는 결혼했다.
키는 옥경이이모와 비슷해보이나
기골이 장대한 옥경이 이모 옆에 서면
왠지 작아보이는 사람,
얼굴이 너무나 나른하여
혹시나 마른버짐이 폈나 싶어
얼굴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남자.
옥경이 이모가 어디서 이런 남자를 구해서 결혼했는지
나로서는 의문이다.
필시 중매였을 것이다.

어쨌든
이 이모가 결혼을 해서 애를 낳고 사는데
월급쟁이 남편의 벌이가 시원찮으니
직접 장사에 나선 것이었다.
백화점에서 이불가게를 하다 빚더미에 앉은 적도 있었고
식당을 하다 덜어먹은 적도 있었고
선물가게를 하다 결국 살림을 거덜내고는
다시 자신의 본업인 영업으로 되돌아갔다.
보험을 시작했는데 그게 적성에 맞았는지
돈을 좀 번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애들이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애들 조기유학보낸다는 명목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친척 어른들은
‘그게 그렇게 집구석에
엉덩이 붙이질 못하고 댕겨쌌더니
결국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며
혀를 끌끌 찼지만
이모는 정식으로 이민을 간 것이 아니라
학생비자로 미국엘 간 것이었다.
대책도 없고 돈도 없이.
힘들게 살았는지 한동안 소식이 없더니
 한 1 년전 내동생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내가 한국엘 갔을 때
동생네 집으로 전화가 한통 왔었다.

“이모, 너무 반가워. 이게 몇 년만이야? 잘 지냈지?

“잘 지내다 뿐이니. 아유, 여기 사는거 딱 내 체질이야.”

“그동안 소식도 없고 뭐하고 살았어, 이모?

“일만하고 살았지 뭐.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내가 뭐 놀고 먹을 팔자가 되니?
이름만 학생이었지
내가 이 나이에 공부한다고
공부가 머리에 들어올 것도 아니고.
홍서방이 돈 부쳐줄 위인도 아니고.
나 그동안 레스토랑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살았어.
그거 하면서 영어도 좀 늘었고.
이 나이에 미국오니 벌어먹고 살 일이 막막하더라.
한국에선 사오십대 여자가 웨이트리스 한다면
욕얻어먹겠지만
여기선 그 나이에 웨이트리스만 하다가
늙어가는 여자도 많아.
생각보다 월급도 만만찮고.”  

이모가 처녀적
처음으로 화장품 외판원을 시작했을 때,
작은외할아버지에게 자주 머리채를 붙잡혀
집어로 들어오곤 했다.
없는 집안이지만
국회의원 후보가 나온 집안인데
어디 감히 딸년이 남부끄럽게 그러고 돌아다니냐고.

그런데,
국회의원 후보가 나온 집안의 딸인 이모가
미국에서 웨이트리스로 일을 한다.
그것도 나이 마흔이 훌쩍 넘어.
듣는 나는 놀랐지만
말하는 이모는 당당했다.
숨길만도 하건만.


이야기가 시작되자
붓물터지듯 옛날 이야기가 막 쏟아져 나왔다.
홍서방은 한국서 월급쟁이를 계속하며
기러기 아빠로 살았는데
월급이 워낙 형편없다 보니 자기 입에나 풀칠할 정도였지
애들 학비며 생활비 보내줄 여력도 안됐고
생활비는 취업비자도 없는 이모가
어떻게 어떻게 불법으로 취업해서 벌었다고.
그동안 웨이트리스를 해서 번 돈으로
두 아이 대학공부 시키고
막내는 졸업을 앞두고 있고.
이젠 미국산지 7년이 넘어
영주권도 나왔고
캘리포니아에 집도 한 채 큰놈으로다가 샀으니
고생끝이란다.
요즘 그쪽으로 조기유학오는 한국애들이 많아
자식들 다 결혼해서 나가면
그 집에서 하숙을 칠 계획이란다.
그리곤 노년엔 한국있는 홍서방 불러들여
미국에서 조용히 살고싶은게 이모의 꿈이었다.

세월이 무상하다고
내가 고등학교때 겨우 코흘리게였던 딸이
벌써 대학을 졸업했단다.
딸이 미국넘이랑 결혼하면 어쩔거냐고 했더니,

“미국넘 좋지.
인물좋지, 키크지. 매너좋지.
지야 미국넘이랑 결혼하든 한국넘이랑 결혼하든
난 상관할 바 아닌데
나야말로 미국넘이랑 연애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이모는 캘리포니아가 살기좋고 풍경도 좋으니
신랑이랑 한번 놀러오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나이가 들어도 왕년의 홍서방네 하나도 변한게 없다.
지금껏 돈버느라 또 망하느라
연애도 한 번 못해보고 40을 훌쩍 넘긴 우리 홍서방네.
나는 솔직히,
늙으막에 홍서방네가
홍서방 몰래 맘에 품어둔 남자라도 하나 있길 바랬다.
안그럼 그 괄괄한 여자가 무슨 맛으로 인생을 살까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