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시절엔....
작업..
듣기만 하여도 가슴 설레이는 단어였다.
마흔이 넘은 지금...
작업!
듣기만 하여도...
...지친다.. 지쳐..--;
이십대의 작업은
정신적인 노동이였다면
사십대의 작업은
육체적인 노동이다.
그리고 이십대의 작업은
해 질 무렵 핑크빛 무대의상을 두루 갖추고
피비린내 나는 카리스마로 거리를 압도 했지만
사십대의 작업은
해 뜰 무렵 앞치마 목에 두르고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받쳐 충성을 다할 것을
주방 앞에서 굳게 맹세하여야만 한다.
이십대의 카리스마와
사십대의 칼있으마와는
분명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음마 음마한 차이가 있다.
도마를 펼치고 한껏 카리스마를 휘두르고 있던 어제...
아래 아리님의 글속에서 내게 작업 들어가도 좋다 라는
단어가 떠올라 순간 필름 되감기 해서 20년전으로 가 보니
한때 작업에 열중했던 내 젊은 시절이
아직 그곳에 있어 잠시 쪼그리고 앉아 구경하고 왔다.
여고시절.
주근깨가 많이 난 명자라는 친구는
아침에 교실에 들어오면 그 전날 모르는 남학생이
집까지 따라왔다는 둥, 쪽지를 건네 줬다는 둥 하며
친구들을 빙 둘러앉혀 놓고는 군침 도는 이야기로
늘 하루를 시작하곤 하였다.
키 작고 주근깨 많은 명자는
늘 남학생들로 인해 행복에 겨운 비명을 지르는데
키 크고 여드름 많은 난 왜 없냐고요오~~~
따라오는 남학생은 고사하고 여고 3년내내
버스 안에서 쪽지 한 장 건네 받은 적 없었으니
이것이야말로 피라미드에 이은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기다림의 끝은 있었으니
드디어 내게도 명자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추운 겨울..
졸업을 앞두고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뒤에서 왠 남학생이 따라 오더니
떨림 섞인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네는 게 아닌가.
“저..기요...잠깐..만요.....”
그려...
드뎌..올 것이 오고야 만겨! ^ㅡㅡ^
내심 기대에 벅찬 눈길로
우아한 자태로 스르르 뒤돌아서
그 남학생을 본 순간....
헉! *,*;
긴장이 고마 확~ 풀어져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남학생의 모습은
고행석 만화주인공인 구영탄과 아주 흡사 했다.
그렇게 내 뒤엔 키 작은 구영탄이
쭈빗대며 어찌할 줄 몰라 서 있었다.
그 남학생은 그렇게 멈칫멈칫 하더니
교복 주머니의 먼지라도 털어내듯
힘겹게 말을 한마디 한마디 꺼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와 오랫동안
같은 버스를 탔었다고....
안타깝게도... 기억에 없다...
아마 만원 버스 안에서 그 친구의 키가
파묻혀 못 봤을지도 모르겠다고 혼자 생각했다.
그 친구가 다시 말을 한다.
이제는 서로 학교를 졸업 하게 되면
버스 안에서 나를 다시는 못 볼 것 같아
망설이다가 오늘에서야 말을 건네게 되었다고..
아...
심금을 울리는 대사다..
그러니깐 몇 년 동안 가슴에 품고
오늘에야 말을 건냈다는 거..그거 아닌가..
살짝.. 감동.. 먹을 뻔 했다.
별명이 호랑이이신 아버지는 늘 말하셨지.
여자는 남자를 만날 때 동정으로 만나지 마라...
동정이 애정이 되고
애정이 욕정이 된다고..
다른 건 몰라도..적어도 그 말씀에 순종했다난. -_-;
그래서 난 애석하게도 구영탄에게
순간 마음이야 몹시 땡큐 쏘 머취 했지만
아이 엠 쏘리 하고 돌아선 ..
안타까운 한겨울의 추억이 있다.
아..참!
길가 옆 제과점에서 구영탄과 잠시 곰보빵도 먹어 주?었다.
모..그 정도는 그 친구에 대한 예의다.
솔직히 말하라고?
....사실... 배고팠다..-.-;
그렇게 여고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뒤를 따라 온 그 남학생은
순정만화 속 테리우스가 아닌
명랑만화 속에 나오는 구영탄이었음을
이렇게 만천하에 고하면서..
한편으론 그 친구가 고맙기 그지없다.
그나마 키 작은 구영탄의 작업 아니었으면
여고 3년 시절 내내 작업 들어온 남학생이
한명도 없을 뻔 하지 않았겠는가..
요즘처럼 통신문화가 발달되어 속전속결이 아닌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었던 그때 그 시절의 작업의 추억...
20년 전 내 여고 시절엔 이렇게
요즘처럼 가공된 테리우스가 아닌
구영탄처럼 순박한 까까머리 머스마들이 있었기에
지난 흑백시절의 추억이 구수하게 와 닿는다는 말로
이글을 대충 마칠까 한다.
이쯤에서 마무릴 지어야
비아 신상에 좋을 듯 하야... ㅋ
여고 졸업 후...
화려했던 현역 선수시절 이야기는..
고마 생략키로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