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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607

작업.


BY 올리비아 2006-06-20

 

스무살 시절엔....


작업..

듣기만 하여도 가슴 설레이는 단어였다.


마흔이 넘은 지금...


작업!

듣기만 하여도...

...지친다.. 지쳐..--;


이십대의 작업은

정신적인 노동이였다면


사십대의 작업은

육체적인 노동이다.


그리고 이십대의 작업은

해 질 무렵 핑크빛 무대의상을 두루 갖추고

 

피비린내 나는 카리스마로 거리를 압도 했지만


사십대의 작업은

해 뜰 무렵 앞치마 목에 두르고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받쳐 충성을 다할 것을

 

주방 앞에서 굳게 맹세하여야만 한다.


이십대의 카리스마와

사십대의 칼있으마와는

분명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음마 음마한 차이가 있다.


도마를 펼치고 한껏 카리스마를 휘두르고 있던 어제...


아래 아리님의 글속에서 내게 작업 들어가도 좋다 라는

단어가 떠올라 순간 필름 되감기 해서 20년전으로 가 보니


한때 작업에 열중했던 내 젊은 시절이

아직 그곳에 있어 잠시 쪼그리고 앉아 구경하고 왔다.


여고시절.


주근깨가 많이 난 명자라는 친구는

아침에 교실에 들어오면 그 전날 모르는 남학생이

집까지 따라왔다는 둥, 쪽지를 건네 줬다는 둥 하며

 

친구들을 빙 둘러앉혀 놓고는 군침 도는 이야기로

늘 하루를 시작하곤 하였다.


키 작고 주근깨 많은 명자는

늘 남학생들로 인해 행복에 겨운 비명을 지르는데

키 크고 여드름 많은 난 왜 없냐고요오~~~


따라오는 남학생은 고사하고 여고 3년내내

버스 안에서 쪽지 한 장 건네 받은 적 없었으니


이것이야말로 피라미드에 이은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기다림의 끝은 있었으니

드디어 내게도 명자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추운 겨울..

졸업을 앞두고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뒤에서 왠 남학생이 따라 오더니

떨림 섞인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네는 게 아닌가.


“저..기요...잠깐..만요.....”


그려...

드뎌..올 것이 오고야 만겨! ^ㅡㅡ^


내심 기대에 벅찬 눈길로

우아한 자태로 스르르 뒤돌아서

그 남학생을 본 순간....


헉!  *,*;

긴장이 고마 확~ 풀어져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남학생의 모습은

고행석 만화주인공인 구영탄과 아주 흡사 했다.


그렇게 내 뒤엔 키 작은 구영탄이

쭈빗대며 어찌할 줄 몰라 서 있었다.


그 남학생은 그렇게 멈칫멈칫 하더니 

교복 주머니의 먼지라도 털어내듯

힘겹게 말을 한마디 한마디 꺼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와 오랫동안

같은 버스를 탔었다고....


안타깝게도... 기억에 없다...


아마 만원 버스 안에서 그 친구의 키가

파묻혀 못 봤을지도 모르겠다고 혼자 생각했다.


그 친구가 다시 말을 한다.


이제는 서로 학교를 졸업 하게 되면

버스 안에서 나를 다시는 못 볼 것 같아

 

망설이다가 오늘에서야 말을 건네게 되었다고..


아...

심금을 울리는 대사다..


그러니깐 몇 년 동안 가슴에 품고

오늘에야 말을 건냈다는 거..그거 아닌가..

 

살짝.. 감동.. 먹을 뻔 했다.


별명이 호랑이이신 아버지는 늘 말하셨지.

여자는 남자를 만날 때 동정으로 만나지 마라...

 

동정이 애정이 되고

 애정이 욕정이 된다고..

 

다른 건 몰라도..적어도 그 말씀에 순종했다난. -_-;


그래서 난 애석하게도 구영탄에게

순간 마음이야 몹시 땡큐 쏘 머취 했지만

 

아이 엠 쏘리 하고 돌아선 ..

안타까운 한겨울의 추억이 있다.


아..참!

길가 옆 제과점에서 구영탄과 잠시 곰보빵도 먹어 주?었다.

 

모..그 정도는 그 친구에 대한 예의다.

솔직히 말하라고?

....사실... 배고팠다..-.-;


그렇게 여고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뒤를 따라 온 그 남학생은


순정만화 속 테리우스가 아닌

명랑만화 속에 나오는 구영탄이었음을

 

이렇게 만천하에 고하면서..

한편으론 그 친구가 고맙기 그지없다.


그나마 키 작은 구영탄의 작업 아니었으면

여고 3년 시절 내내 작업 들어온 남학생이

한명도 없을 뻔 하지 않았겠는가..


요즘처럼 통신문화가 발달되어 속전속결이 아닌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었던 그때 그 시절의 작업의 추억...


20년 전 내 여고 시절엔 이렇게

요즘처럼 가공된 테리우스가 아닌


구영탄처럼 순박한 까까머리 머스마들이 있었기에

지난 흑백시절의 추억이 구수하게 와 닿는다는 말로

 

이글을 대충 마칠까 한다.


이쯤에서 마무릴 지어야

비아 신상에 좋을 듯 하야...


여고 졸업 후...

 

화려했던 현역 선수시절 이야기는..

고마 생략키로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