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경...
두어 달 전,
수업 중이었다.
배가 이상시리 아팠다.
똥이 마려운 것도 아닌데... 거기다가 오줌도 마렵지 않건만 아래서 뭔가가 찔끔 거리며 나왔다.
수업 종이 ‘땡’ 하고 치기가 무섭게 소녀는 꽁지에 불이라도 붙은 냥, 급하게 화장실로 향했다. 뭔 놈의 화장실이 그리도 뭔지.
곧 소녀는 자신의 팬티에 묻어 있는 검붉은 피를 보게 되었다.
워낙 약한 몸에 툭하면 병원 행이었던 소녀. 병원에 출석부를 찍어야 되겠다는 간호사의 농담을 들을 정도로, 늘 감기와 배탈을 달고 살았지만 피를 흘린 적은 없었다. 그 흔한 코피도 한번 흘린 적 없던 그녀였다.
‘이건 또 무슨 징조지...’ 처음 겪는 일 앞에 벌컥 두려움이 생긴 소녀.
‘난...이렇게 죽는 거야...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도 피를 토하고 죽잖아. 난...토하는 게 아니라...쏟고 있어... 이건 더 무서운 거야. 내가 죽으면 우리 엄마가 제일 슬퍼하겠지... ’
밖에서 왜 이렇게 안 나오느냐고 두들겨대며 난리였지만 소녀는 쉬는 시간의 종소리가 울리도록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부패 될 때로 된 변기 아래, 내용물속에서 무수하게 많은 생명체가 바글바글 꿈틀거리는 그곳에서. 슬픈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있던 소녀.
학교를 파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녀는 매일 ‘이년아’하는 무정한 할머니의 품으로 파고들며 대성통곡을 했다.
“할머니, 내가 잘못했어. 매일 앙살하고 대든 것 미안해. 필성이도 이제 때리지 않을게. 앙앙앙...”
“왜 그려? 뭔 일이여. 엉? 왜 그랴?”
소녀의 갑작스런 반응에 빨래를 개키다 놀란 할머니가 부들부들 떨며 우는 소녀의 등을 토닥거리며 물었다. 그래도 소녀는 차마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말을 선뜻 말하지 못했다.
“어떤 놈이 놀렸어?”
“아니. 앙앙앙... 할머니... 내가 벌받나봐. 할머니가 해준 옛날 얘기에서 나오는 나쁜 놈처럼...앙앙앙...어떻게...우리 엄마 불쌍해서 어떡해...앙앙앙...”
“이게 왜 이려? 답답하게 하지 말고 어여 말해봐. 뭔 일이여?”
달라붙어 우는 소녀의 몸을 조금 떨쳐놓고 걱정으로 상기된 할머니가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소녀의 얼굴을 가뭄 앓는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진 거친 손바닥으로 닦아 주셨다.
“어디 아픈겨?”
(- -) (_ _) (- -) (_ _) 끄덕끄덕...
“어서 일어나. 병원 가자.”
소녀가 아픈 것이 제일 무서운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병원부터 찾았다. 병원이 지독히 싫은 소녀는 아파도 좀체 내색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분이셨기에. 무엇보다 소녀의 행동이 살짝 이상하니, 필시 아파도 크게 아픈 거라고 느끼신 할머니가 외출복을 찾아 황급히 방으로 들어가셨다.
“할머니...이미 틀렸어.”
“뭐? 뭐가 틀려.”
“난...죽어가고 있는 거야. 병원에 가도 소용없어.”
“얘가 지금 무신소리를 하는겨? 어디가 어떻게 아파서?”
“...훌쩍...훌쩍...피가...”
“뭐? 피가... 무슨 피가?”
“피가 많이 나와...”
방에서 옷을 갈아 입다말고 할머니는 돌처럼 굳어서 장승처럼 서 계셨다.
파뿌리처럼 하얗게 질린 얼굴로.
“어디서 피가 나와?!”
다시 말을 꺼내기까지 몇 분이 흘렀는지 모른다. 할머니가 소녀의 곁으로 다가와서 앉으며 물으셨다.
“팬티가... 팬티가 다 젖었어...”
“뭐?!!!”
긴장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리고 소녀를 일으켜 세우더니 훌러덩 팬티를 벗겨 내렸다.
그리고 검붉게 젖어있는 공책 페이지 한 장과 피로 얼룩진 팬티를 확인했다.
소녀는 흘러나오는 피에 대한 응급조치로 자신의 노트를 한 장 뜯어내어 그것을 잔뜩 비벼 부드럽게 한 다음 팬티에 덧대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그것을 말없이 한참을 들여다보고 계셨다.
‘할머니도 쇼크를 받았구나...하긴, 손녀딸이 죽어 가는데 놀라지 않을 수가 없겠지...’
얼어붙은 할머니를 보고 소녀는 생각했다. 엄마만 걱정한 자신의 짧은 생각이 후회스러웠다. 매일 욕을 해대는 할머니지만 늘 손주들에게 지극정성이신 분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건만........
“할머니...괜찮아. 훌쩍훌쩍...너무 걱정 하지 마러. 나 죽는다고 슬퍼하지 말구. 훌쩍훌쩍...”
“킥킥킥...깔깔깔깔...”
소녀의 말에 할머니가 폭소를 터트렸다. 작게 웃던 웃음이 점점 커지더니 뒤로 자빠질 듯, 몸을 잔뜩 뒤로 재끼며 한 팔을 지지대 삼아 크게 웃어대셨다.
할머니의 돌발적인 행동에 소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 때문에 실성한 것이 아닌가 걱정되기까지 했다.
“훌쩍...훌쩍...할머니...왜 그래? 내가 누군지 알겠어?”
소녀가 할머니 곁으로 다가가 앉으며 물었다.
‘콩!!!’
소녀의 머리로 알밤이 날아왔다. 이건 또 무슨 시츄레이션? 죽어가는 자신 앞에서 웃지를 않나 그것도 모자라서 폭행까지... 억울해도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는 소녀는 마룻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서 멈췄던 울음을 더 크게 대공통곡 해댔다.
손녀딸의 한스러움(?) 앞에서도 한참을 더 웃어대던 할머니가 방 안으로 들어가더니 곧 새 팬티와 수건과 반짇고리를 갖고 나오셨다.
그리곤 수건을 몇 번 접더니 그것을 팬티에 덧대고 바늘로 꿰매면서 연실 큭큭 거리며 웃어댔다.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기는커녕 좋아죽는 할머니의 모습이 여간 섭섭한 것이 아닌 소녀는 끈질기게 울어댔다. 얼마나 울었을까?
“이년아, 어서 일어나서 이거나 입어. 바닥에 피 다 묻어.”
“뭐어?! 앙앙앙...... 할머니는 내가 죽어 가는데 바닥에 피 묻는 게 걱정돼? 내가 죽는 게 그렇게 좋냐고! 흑흑흑...”
“죽긴 누가 죽어. 썩을 년. 늙은 헬미 놀래켜기나하고...벌써 다 컸네.”
소녀는 곧, 자신이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하는 달거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읍내에 있는 학원(주산학원)에서 돌아 올 때 슈퍼에 들려 생리대를 사오라는 할머니의 명을 받잡아야 했다.
생소한 단어, ‘생리대’를 잊을까봐 소녀는 손바닥에 그것을 큼지막하게 썼다.
소녀...그날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남자 몇 명과 여자 한명이 있는 슈퍼에 가서 큰 소리로 “생리대 주세요.” 하고 말했다. 단어도 생소했지만 당체 그것이 무엇인지 본 적도 없었기에 스스로 찾길 포기한 터였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찾아달라는 생리대는 찾아 줄 생각도 않고 지들끼리 뭐라고 속닥거리며 키득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못 들었나?...생각한 소녀는 처음보다 더 큰소리로 “생리대 주세요.” 하고 목청을 높였다.
소녀의 말에 남자들이 킥킥거리고 아가씨의 얼굴빛 앵두같이, 아니 자신이 어른이 됐다는 징표처럼 시뻘겋게 변하는 것을 봐야했고 도대체 저들이 못 먹을 것을 먹었나 왜 사람 앞에 대고 난해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인가!...만 생각했다. 그들이 보였던 반응을 한참 뒤에 깨달았고 뒤 늦게 얼굴이 후끈 거렸던 소녀...
아무튼, 소녀는 그날부터 자신은 이제 어른이라고 믿었다. 주변의 친구들보다 빨리 어른이 된 자신은 친구들이 그렇게 유치해 보일 수가 없었던 거다.
그런 소녀가 일주일에 한번 가는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집을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500m쯤 위에 중학교가 있었다. 중학생의 하교시간과 맞아 떨어졌는지 버스 안은 이미 만원이었다.
4km 거리의 버스종점인, XX리가 소녀의 목적지.
버스는 비포장도로 위로 희뿌연 먼지를 일으키고, 덜컹거리며 달렸다.
낑기는 버스 안 이곳저곳에선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소녀는 울음보를 터트린 막내 동생을 감싸기에 급급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서 중간쯤 왔을까?
버스 안에 사람이 반은 빠져 나갔다.
조금의 여유를 찾은 소녀의 눈에 중학생의 묵직한 가방들이 새삼스레 다가왔다.
‘아, 나도 이제 곧 저 무거운 가방의 주인이 되겠지. 그러기 대따 싫은데...’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어떤 남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헉...... 이럴 수가...... 6년간 타고 다녔던 버스 안의 낯선 남학생.
대따 잘 생겼다.
학년을 구분할 수는 없지만 필시 자신이 다니는 초등학생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왜?
그렇게 잘생긴 남자를 본 적이 없었으므로...
(당시, 교복이 폐지 됐을 때라, 중고등 학생들도 자유복장이였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
동그란 눈에 깊게 패인 쌍꺼풀, 오뚝한 콧날, 야무지게 생긴 입술.
파란색 체크무늬 남방에 복숭아 뼈, 한참 위로 올라간 청 빽바지. 하얀 운동화.
복장도 세련됐다.
자신이 그동안 봐왔던 애송이 남자들과는 뭔가 몰라도 판이하게 달랐다. 남자가 소녀 쪽으로 던진 시선은 스쳐지나가는 것이었지만 소녀는 돌아간 목이 아플 정도로 남자에게서 한참을 못 박혀 있었다.
소녀의 시선이 너무 따가웠던 걸까...
남학생의 눈이 다시 소녀에게 닿았다.
이번엔 화들짝 놀란 소녀가 얼른 시선을 돌렸다.
자존심하면 대한민국에서 순위 안에 들 소녀는 자신의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시선을 피한 소녀였지만 머릿속은 복잡하게 데이터가 돌아가고 있었다.
‘어디서 내릴까?’
‘그동안 못 봤던 얼굴인데...’
‘아...갑자기 왜 이렇게 더운 거야?’
‘심장이 벌렁거리는 것이 멈추질 않아...’
소녀는 남학생이 자신의 마음을 눈치 챌까봐 차마 고개를 그쪽으로 향하진 못했지만 내리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창가 쪽으로 무서운 집중력을 쏟아 냈다. 어디서 내리는지 알아야만 그쪽 마을에 사는 친구들에게 수소문해 볼 수 있을 테니...
그런데 남학생의 모습이 종점이 가깝도록 내리는 사람들 무리 속에 없었다.
몇 사람 없는 차 안을 ‘휭’하고 돌아보니 앞쪽 의자에 앉아있는 남학생의 뒤통수가 보였다. 뒤통수도 그리 멋질 수가....
목적지인 바닷가 특유의 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소녀의 마을에 도착했다.
소녀는 남학생에게서 애써 시선을 피하며 두 동생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남학생이 어디를 다니러 온 것인지 궁금해서... 그런데, 2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남학생이 따라오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소녀. 헉헉헉...벌렁벌렁...
벅찬 숨소리와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로 소녀의 귀가 시끌시끌, 난리도 아니었다.
‘웬일이니, 저 사람도 내게 필이 꽂혔나봐. 날 따라오고... 그래도 순순히 응해주면 안되겠지?’
수학은 못해도 그런 쪽의 계산이 빠른 소녀의 머리...
도도한(?) 여성상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은 소녀가 동생들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곧 당도한 집.
소녀는 잠긴 대문의 열쇠를 풀고 얼른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스파이놀이라도 하는 냥, 바싹 벽 쪽으로 몸을 붙이고 창문을 내다보았다.
그런데...집 앞까지 따라와 있어야 할 남학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따라오기는커녕 소녀의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도로 건너편에 있는 자신의 아빠 친구가 살고 있는 건물의 뒤쪽 작은 문으로 들어가는 남학생의 모습을 허탈하게 바라봐야 했다.
(소녀는 이렇듯 어릴 때부터 김칫국물을 즐겨 마셨다. -_-^)
“누나 왜 그래?”
눈치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래야 볼 수 없는 동생 진영이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