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밥을 먹지 못하는 핏덩이를
시할머니께서는 뻥튀기를 입으로 씹어서 먹여 키우셨다.
말하자면 이유식 대용으로 키우신 것이다.
철부지 어린것은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을뿐만 아니라,
장남이란 명목하에 전답 팔아가는 형을 못마땅해하는
작은아버님들은 그 화풀이를 어린 조카에게
퍼부었을 것이다.
고집피운다고 구박!
밥늦게 먹는다고 구박!
말안듣는 다고 구박!
부모없는 설움에, 온갖 농사일에
그 어린것은 사는것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공부잘하는 남편을 중학교 담임 선생님께서 청주고에
입학시켜야 한다고 할아버님을 설득하셨다.
하지만 할아버지님은 농사나짓고, 면서기나 하라시며
청주고 입학을 시키지 않으셨다.(그 당시 청주고는 명문고였다.)
1년동안 동네 간판집에서 허드렛일을 도와주고
모은 돈으로, 대전에서 살고 계신 어머니를 찾아
남편은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살게 되었다.
1년동안 모은돈으로, 공고 입학금을 치뤘고
3년동안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녔다.
만약에 남편이 명문 청주고를 입학했다면
충분히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녔을 사람이었는데
그의 운명이 순조롭지 못하니
인문계를 다니지 못한것이다.
인정많고, 유머스럽고, 다정다감한 남편은
순탄치 못한 어린시절을 보내서일까
그는 감당못할만큼 과격한 면이있고,
때때로 지나칠만큼 강한 성격이 날 힘들게 했다.
양가부모님 밑에서,
충분한 애정과 관심을 받고 자랐어야 하는데
남편은 감정조절을 잘하지 못하는면이 있었다.
자기방어를 했어야만
견딜 수 있는 어린시절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인지
자기주장이 강할뿐만 아니라,
본인의 판단과 다른것은 모두 부정하고,
의심하고,비판적이된다.
그도 인생의 피해자다!
마음도 여리고, 인정많고, 다정한 사람이
가끔씩 돌변하는 것은,
그로써도 불가항력적인것을 누구를 탓하리오만
한사람의 불행한 어린시절이
내 두 아들과 나에게,
남편이 겪었던 불행과는 또다른 의미의
불행한 결과를 가져다 주는 슬픈 결과론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