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에서 첫 살림을 시작한 언니.
사람좋은 형부의 배려로 늘 푸근하게 잘 꾸려갔다.
언니가 만든 반찬이라면 무조건 맛나다 맛나다.
곧기로 유명한 새침떼기 언니의 투정을 항상 받아주는 형부
지금도 형부 얼굴 떠올리면 눈물이 피잉 돈다.
이젠 많이 늙으셨을텐데.
정말 좋은 사람...
봄이면 쑥이며 냉이를
여름이면 작은 남새밭에서 따 낸 푸성귀들
가을이면 들판에서 추수한 곡식이며 약초속에서
어린시절 뛰어놀았던 시골 향내가
큰이모손에서 언니에게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가장 사랑받아야할 시간에
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안타까웠던 작은 이몬
언냐가 아일 낳고 힘들어할 때 한집에 살면서
모처럼 식구란 이름으로 가슴데우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청상과부 큰이모와 사십대에 남편을 보낸 엄마
두 엄마사이에서 언니도 한아이의 엄마가 되어갔다.
어느정도 자리가 잡혀갈 즈음
아들이 서울에서 직장을 구하고
아래동생들이 다 서울로 모이기 시작했다.
작은 이모도 아들따라 서울로 가게되고
언니는 예전처럼 또 가족들을 먼발치서 보게되었다.
남편과 그 판박이 아들을 가슴에 안은채로..
몇년의 세월이 흘러 형부가 서울로 발령이 나서
언니도 서울생활이 시작되었지.
그나마 가족들 가까이 가게되어서 좋아라했는데.
어느날
오빠의 전화 한마디가 날 경악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