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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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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일하면 정말 복을 받나요?


BY 일상 속에서 2006-06-16

힘 좋게 생긴 이런 머슴(?)하나 있으면 든든하겠죠? 좋은 하루들 되시어여~

 

우리 집에 도둑이 들기 하루 전의 일이다.

근처에 사시는 손윗동서인 3째 형님에게 전화가 왔다.


“동서, 우리 삼겹살 좀 먹자.”


생뚱맞게 웬 삼겹살? 14년을 하루같이 돈이 없어서 죽겠다고 노래를 부르는 내 형님은 여간 멋쟁이가 아니다.

고 3인 아들과 고 1인 딸, 내 남편과 같은 보일러 설비사인 시숙님과 함께 기거(^^)하는 형님이 사는 집은 우리 집보다 더 심각하게 비좁다.

방구들이 움푹 들어간 안방을 비롯해서 작은 방이 하나인 곳에서 다 큰 자식들과 부대끼며 살고 계신다.


그런 내 형님은 평균 3달에 한번은 미용실에 가셔서 머리를 볶기도 하고 펴기도, 염색도 즐겨 하신다. 늘씬한 키에 커다란 눈망울.

40이 넘은 나이에도 찢어진 청바지와 징이 박힌 과감한 패션 허리띠도 즐기신다.


2~3벌의 옷을 유니폼처럼 입고 다니는 나와는 판이하게 틀리신분이다.

경상도 분이시라 억양이 강하시고 말투도 빠르시다.

연약해 보이는 형님은 O형의 혈액형이 무색할 만큼 차분하고 때론 내성적이기도 하다.

시댁에 내려가면 다들 그런 형님에게,


“넌, 수민아범이 돈을 못 벌어다 줘서 그리 말랐냐?”


하는 걱정을 들곤 하신다.


된장할....반면 나는 그런 소리 한 번도 들어본 역사가 없다.

억울한 내가 그냥 넘어 갈 수 있을까.


“어머님, 왜 저에게는 그런 말씀 안 물어 보시는 거예요?”

하고 우스갯소리를 했더랬다.


“쓰벌...(-_-;;;) 니는 원체 잘 먹잖냐”

“어머머머... 어머니, 제가 뭘 얼마나 먹었다고... 아빈아빠가 워낙 안 갔다가 줘서 이게 못 먹어서 부은거라구요.”


그 말 한마디 했다고 ‘니이미 씨벌’을 엄청 들었던 나... 그래서 시댁에서 만큼은 1대접 이상 밥을 먹지 않는다... 한 사발이 아닌 대접이건만... 다음 날 아침은 왜 그리 안 오던지, 개구리 철도 아니구먼서도 뱃속에서 요란시리 울어대는 녀석들을 달래느라고 애썼던 지난날... 갑자기 안구에 습기가 차려한다.



어쨌든 뱃살 하나 없는 내 형님은 나에게 뒤지지 않는 식성을 갖고 있다.

매일 하루같이 빨라도 밤 12시의 귀가시간을 자랑하며 이곳저곳을 돌면서 식도락을 즐기신다.

궁금하지도 않아서 묻지도 않건만, 형님은 자상하게도 늘 얻어먹고 다닌다고 구차한 설명을 늘어놓으신다.


형님의 ‘낙’은 그런 거려니...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곁에서 14년을 살면서도 형제간에 우애가 상하지 않는 것은 여자들의 입이 신중(?)하기 때문이리라.


형님은 너무 편한 동서에게 남자친구에게 받은 14k 팔찌 이야기도 서슴없이 하신다. 요즘 친구 같은 애인 없는 사람은 바보라니... 그럼 나는 바보 맹충이가 확실하다.

형님이 제일 편안해 하면서도 두려운 존재는 나 일 것이다.

나의 입은 푼수를 떨기도 하지만 때론 뒷걸음치다 쥐꼬리 밟는 식으로 바른말도 툭툭 던지기 때문에 뜨끔하실 것이다.


여자끼리의 의리를 중요시 하는 나지만...

형님 말처럼 동창 친구이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씀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껏 잘 쌓아 온 탑을 오해의 소지를 만들어서 한순간 와르르르 무너트리는 일이 없길 바란다며 직선적으로 던지는 나의 말이나,

말 중간중간 문자를 주고받는 형님의 행동을 보고 은근슬쩍,

더 이상 깊이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로 태클을 걸기도 하니...

형님에게 있어 나는 아군이면서도 적군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내가 본 형님은 형제들에게 만큼은 참으로 짠지다.

우리 집에 들리 실 때 빈손으로 오기 뭐하다며 떡볶이 천원어치나 아니면 초코파이 한 상자를 들고 오시 것만 봐도 그렇다. 그것을 무거워서 어찌 들고 오시는지...

반면, 난...빈손이면 빈손 아니면 쥬스라도 사가는 성격이다.


여우같은 아영이는 제 큰엄마가 오신다면 있는 물건들을 모두 어디다가 감추기에 바빠진다. 형님이 눈독 들이면 성큼 덜어주는 제 엄마 성격을 잘 알기에.

나도 사람이니 그런 형님이 얄미울 때도 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어느 순간 형님도 느끼는 것이 있겠지 싶어서 베풀며 살려고 노력한다.(마리아 수녀라도 된 듯한 착각이...)

저의 글은 어째 이렇게 방향도 없이 흘러 가기만 하는 건지요? ^^

 


형님의 삼겹살 먹자는 제의를 이야기 하다 말고 참 많이도 빠져 들어온 듯하다.



매일같이 돈 때문에 죽겠다는 형님의 삼겹살 먹자는 말씀에,

“형님이 사주시는 거예요?” 하고 계산 정확한(?) 내가 물었다.

“반씩 내고 먹자.”


빤한 것을 입 아프게 뱉어낸 나.

늦은 점심을 먹은 관계로 배가 만땅이었다.

하지만 학원에서 돌아온 아영이를 데리고 길을 나섰다.

그리고 농협 앞에 서서 한참을 갈등 속에서 고민을 했다.

아이들이 치킨이 먹고 싶다고 해도 사주지 못했다는 말씀 앞에서, 같이 가슴 아파 했던 나...  의지를 다지고 농협 문턱을 넘어섰다.


얼마나 비장했던 나였던가.

나 쓰기에도 빠듯한 돈 중에서 거금 10만원을 뺐다. 봉투에 담았다.

그리고 속으로 영화를 그렸다.


‘형님, 이것으로 애들 치킨도 사주고 삼겹살도 몇 근 끊어다가 냉장고에 넣고 드세요. 우리가 매일 이렇게 궁상만 떨면서 살겠어요? 곧 좋은 날 옵니다.’


형님의 손을 부여잡고 동서는 희망으로 불타오르는 눈길을 보낸다.


‘훌쩍....훌쩍....패애앵~(코도 좀 풀고) 동서...훌쩍...고마워. 동서는 무슨 돈이 있다고...아니야... 마음만 받을게... 우리 동서 덩치만 큰게 아니라 마음도 대따 크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형님은 착한 동서의 손을 맞잡고 사랑을 싹틔우며 해피엔딩....


아주 지대로 된 감동영화를 그리며 형님과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주변 사람들이 제발 애들 옷 사 입힐 것으로 본인 옷 좀 사 입으라고 노래를 부르게 하는 변함없는 복장으로 나간 나였다.

2년째 신는 통굽 슬리퍼와 썬캡을 쓰고 나간 나와 비교 되는 내 형님의 스타~일!


빽 청바지에 몸매가 그대로 들어나는 쫄티를 입고 등장하셨다.

그새 또 미장원에 다녀오셨는지 머리 컬이 예술이다.

곱상하게 화장한 얼굴이며... 에휴... 감동영화는 저만치 물 건너 가버렸다.


우리는 2인분의 삼겹살을 시켰다. 소화가 안 된 나는 젓가락을 폼으로 들고 아영이의 입만 챙겼다. 형님은 바쁘게 손과 입을 움직였다.

드시는 중간중간, 돈이 없어서 어찌 살아가야 할지 걱정이라는 것부터 전라도 광주에 사시는 큰 형님은 매일 죽겠다면서 수영장을 다니네 어디를 놀러간다네...등등 불만을 털어놓으셨다.


아... 형님의 입으로 뱉는 말을 나또한 ‘당신의 이야기를 나도 그렇게 떠들고 싶어요.’ 하고 외치고 싶었다.

그리고 영화를 그렸던 내 머리는 또다시 복잡한 계산에 빠져들었다.


‘이 돈 준다고 표시나 나겠어? 나보다 더 잘 지내고 계시 구만... 그래도 준다고 갖고 왔으니 주고 말아?... 아니지...이 돈으로 살림에 보탬이나 하겠어?... 아니야....’


아...내 복잡한 머리...심정...


필시 못 먹어서 부었을 나는 고기 2점이 고작이었고 소화력 좋아서 몸매 죽여주는 내 형님은 2인분에 가까운 양을 쌈박하게 뱃속에 집어넣으셨다.


난 봉투에서 5만원을 빼서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나머지 5만원만 담긴 봉투를 상 아래로 형님에게 건넸다. 형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덥석 받으셨다.

돈을 형님께 건넨 뒤, 계산서를 들고 카운터에서 계산을 했다.

삼겹살 2인분, 공기밥 1개, 사이다 1병. 19,000원.


10만원을 드리려던 생각 때문이었는지, 그래도 31,000원이 남는 손해 보지 않은 장사 같았다.(이런 계산 구조를 갖고 살고 있으니...에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상상했던 영화와 같지는 않더라도 ‘동서, 잘 쓸게’ 한마디는 해줘야 도리가 아니겠냔 말이지.

된장...-_-* 형님은 무덤덤 아무 반응이 없으시다.

거기다 나오다 말고 아는 사람을 만나신 형님은 수다삼매경까지...

아빈이가 돌아 올 시간이 됐으니 난 먼저 간다고 말씀드리고 급하게 집으로 돌아 왔다.


30분쯤 후에 형님이 전화를 하셨다.


“그런데 동서 이 돈 무슨 돈이야?”

“...(빨리도 물어 보시네)... 형님 용돈이에요. 얼마 안 되지만 그것으로 애들 먹을 것 좀 사주세요.”

“동서가 상 밑으로 주길래, 아영이 때문인 줄 알고 받았지. 계산하라고 주는 돈인 줄 알았는데 계산도 동서가 하고.”

“형님 기분 좀 좋으라고 제가 기분 좀 내봤어요....”


형님의 속보이는 얘기들을 들으며 난 나 스스로를 의로 했다.

‘잘한 일이야.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다는 것도 행복이라고...’


이야기 끝에 우린 찜질방에서 만나기로 했다.

남편에게 허락도 받았고...기분 좋게 다녀왔건만...

다음 날 돌아와 보니 도둑이 든 것이다.

착한(?) 일 하고 나서 혼자 뿌듯했던 나였건만... 망치로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 이러할까나?


그 일로 아직도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

오늘 아침 일찍 형님의 전화를 받고 다시금 생생해진 그 날의 일.


잔뜩 심각한 형님은 돈 때문에 힘들단다.

간밤에는 시숙님의 술주정이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단다.

돈이 없다는 분의 호주머니 속에서 35,000원 현금 영수증이 나왔다나.

그것도 ‘한우갈비촌’ 거라서 더 화가 나신단다.

어떻게 기분을 풀어야 할지 모르시겠단다.


“그러게요... 형님의 기분이 어떡하면 풀리실라나요?”

그 말을 뱉어내는 내 입에서 왜 이렇게 쓴내가 나는 것인지...


그래도 오지랖 넓은 나는... 곧 다시 내 무덤을 파는 일을 자처하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