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을 친부모와 동생들 사이에서
섞이듯 못 섞이듯 지내고
고등을졸업하던 해에
이모부께서 지병으로 그만 돌아가시는 바람에
언냐의 진학문제에 걸림돌이 생겼다.
공부도 꽤 잘해서 총명한 언냐 였는데
동생셋을 아래로 쭈욱 둔 언냐에게
4년제 대학은 꿈같은 얘기가 되어버렸다.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빨리 취업을 해야하는 상황
결국 지역대학 임상병리과에 입학했다.
그 당시 지역뉴스에 사진까지 나왔다.
그럴수 밖에.
성적이 남아돌았으니 수석입학은 당연한 일 이었다.
그날이후로
언냐는 이런저런 내색없이 열심히 살아냈다.
가끔 툇마루에 걸터 앉아서 멍하니 먼산을 보는 일을 빼곤.
방학때가 되면 나랑 동갑내기 여동생이랑
셋이서 솜이불 서로 덮어줘가면서
잔잔한 통기타 노래로 밤깊은 줄 몰랐고
설겆이도 옆에 서서
셋이서 하면 금방 끝났었다.
사춘기 소녀에게
대학생의 연애감정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촌뜨기 남학생이 이모집 대문간에 와서
언냐를 목메가면서 기다리는 얘기는
쿡쿡 웃음을 자아냈다.
결국 그 촌뜨긴 제 풀에 지쳐서 나가떨어졌지만.
그 시절엔 연애하는걸 수치로 생각했으니..
곧기로 유명한 세침떼기 언냐가
받아줄리가 없었다.
그렇게 그렇게
언냐의 가슴에 어떤 멍이 있는지도
아무도 모른 채
세월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