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우리집,
대구와 포항가는 직행버스가 30분마다 서는
직행버스정류장 앞 마당넓은 우리집.
그 집 주인의 둘째 딸이었던 나는 그 시절 늘 단 것에 주려있었다.
어떻게 하면 쭈쭈바를 날마다 먹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쫀드기를 날마다 먹을 수 있을까.
그 동네에서 땅부자라고 소문난 우리집 아버지는
타이틀만 좋았지
동네에서 제일 늦게 테레비를 산 양반이었고
동네에서 제일 후줄근한 대문을 10년동안 안바꾼 양반이었다.
그렇다보니
바로 옆집에 모레알 상회라고 구멍가게가 있었지만
자식들은 쭈쭈바 한 번, 복숭아 간즈메 한 번
배불리 먹어본 적이 없었다.
월남갔다 돌아온 막내 삼촌이
바닐라 소프트 아이스크림 \'투게더\'를 사가지고 오는 날이면
우리 사남매는아이스크림 통에 머리를 박듯이 하고는
숟가락이 휘어져라 그 아이스크림을 퍼먹었다.
그때가 그러니까 국민학교 3학년 여름방학때,
어린 난 스스로 험한 인생을 헤쳐나가리라 마음을 먹고
돈을 벌어 쭈쭈바를 실컷 사먹기로 결심했다.
창업 아이템은 만화가게였다.
당시 우리 집엔 공장에 다니면서 자취하던 언니 둘이 있었는데
우리 언니가 국민학교 6학년, 내가 3학년이 되자
엄마는 이 언니들을 내보내고 그 복판방을 우리 공부방으로 만드셨다.
그 복판방에는 공장 다니던 언니들을 위하여
간이로 만들어진 포장마차처럼 생긴 텐트 부엌이 있었다.
우리 공부방만했던 그 텐트 부엌에서 나는
우리 앞집, 형제 시계방 맏딸 박덕선이와
만화가게를 차렸다.
우리는 둘다 사장이었으므로 일도 공평히, 수입도 공평히 나누기로 했다.
박덕선이네 집에는 만화책이 많았으니 만화책 공급을 담당했고
나는 복판방 텐트 부엌을 제공했다.
꺼벙이, 구영탄 을 비롯한 남자 만화,
에덴이여 안녕, 롯데 롯데 롯데 같은 여자 만화.
우리는 사과궤짝 위에 이런 만화책들을 구비해놓고
텐트 부엌 입구에 만화 대여료를 써붙였다.
\'큰 것 30원, 작은 것 20원, 풍선껌 만화 무료\'
우리 집은 만화가게 하기에 터가 더할나위없이 좋았다.
동네 아이들이란 아이들은 죄다 우리 집에 와서 놀다가
밥 때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가게는 문을 열자마자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로터리 양복점집 아들 경호, 쌀집 아들 진근이,
버스정류소 소장 무남독녀 은경이,
달원가축병원 막내딸 혜경이,
모레알 상회 두 아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브라질의 월드컵 축구선수
로날디뇨를 닮은 것 같은
약간 덜떨어진 우리 동네 명물 떠꺼머리 총각까지.
우리는 한나절 장사로 2백5십원인가를 벌었다.
각각 100원짜리 쌍쌍바 하나씩을 사먹고
50원짜리 쭈쭈바를 사서 반 잘라 먹었다.
쭈쭈바는 달콤했고 돈버는 재미는 쏠쏠했다.
그날 저녁,
우리 식구들은 안채 앞 살평상에 앉아
모깃불을 피워놓고 저녁을 먹고 있었다.
엄마는 연탄화덕을 피워 꽁치를 굽고 있었으리라.
밥상엔 쌀밥과 돼지고기국이 올랐으리라.
숟가락이 밥그릇과 국그릇을 바쁘게 오고가고 있을 무렵,
갑자기,
그 후줄근한 나무대문이 끼익 열리더니
흰 남자용 고무신을 신고 부시시한 파마머리를 한
어떤 아줌마가 우리 집에 들어왔다.
아무리 시골이지만 밥때는 남의 집엘 안가는 법인데...
그 아줌마 알고보니
형제 시계방 박덕선이 엄마다.
아줌마 뒤로 대문 밖에서 고기만 삐죽이 내민 박덕선이
훌쩍 훌쩍 울고 있다.
\'이년의 가시나들이 돈을 안줬나 밥을 굶겼나,
응, 오늘 이것들이 이 집에서 애들을 모아다가 돈을 벌었다네.
우리 집 만화책을 가져다가.
응, 얼마나 맞을라꼬!\'
하며 집에 들어오자마자 난리를 친다.
영문을 모르는 우리 엄마 아빠, 무슨 소린지 천천히 말해보라고 한다.
박덕선이의 엄마 말씀을 찬찬히 듣고 있던 우리 아버지,
나를 보며 말씀하신다.
\'사이좋게 나눠봐야지, 친구끼리 돈을 받으면 쓰나.\'
이러시며 얼마 벌었냐고 하신다.
250원 벌었다 하니 주머니에서 250원을 주시면 애들한테 골고루 나눠주라고 한다.
박덕선이가 훌쩍거리고 있으니 나도 훌쩍거리고 싶은 기분이 된다.
나는 밥숟가락을 놓고 훌쩍거리며
아빠한테 받은 250원을 들고
박덕선이와 함께 대문을 나섰다.
그날 저녁 우리는
모레알 상회에서 250원을 10원짜리 25개로 바꾼 다음,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20원이니, 30원이니를
그날 만화를 빌려본 애들에게 돈을 돌려줘야만 했다.
그해 여름,
우리의 만화가게는 \'1일천하\'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