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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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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시달리는 꿈 (2)하나 달고 나오지


BY 천년바위 2006-06-09

난 세째 딸로 태어났다. 두 언니 밑으로 오빠가 하나 태어났지만 사산이었고, 나와 둘째 언니와 나이 차만 벌어졌을 뿐이었다.  하여튼 난 뭘 챙기거나 빠뜨리거나 할 새도 없이 본의 아니게 세상에 떨구어졌는데, 사람들이 나더러 뭘 빠뜨리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 터무니없이 애먼 소리를 그리 여러 번이야 들었겠냐만, 멋모르고 들었던 그 소리를 세월 지나 여자로서의 삶에 눈떠가면서 새록새록 의미심장하게 곱씹어보게 되었다. 젊은 사람들이 들일을 나간 낮시간, 앞집 담장밖으로 휘어져 골목가운데에 그늘을 드리운 개복숭아나무 그늘에 가마니때기를 깔아놓고, 집에 남아 손자들을 돌보며 노인들은 모여앉아 놀았다. 우리 할머니, 앞집 할머니, 그 앞집 순자네 할머니, 순덕이네 할아버지,..  \"에구, 하나 달고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꼬,\" 할머니곁을 맴돌며 놀다 그 소릴 들었던 걸 보면, 내 나이 많아야 네 살의 봄 이전이겠지. 어쨌든 난 무엇인지 중요한 걸 빠뜨리고 세상에 태어났다는 막연한 죄의식까지 품고 되었던 것도 같다. 그래서, 다른 계집아이들 다 입고 다니는 치마 한 번 못 얻어입고, 상고머리에 멜빵바지위에 섶이 긴 남아용 저고리를 입고 다녀도 그저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남장을 시킨 것은 당연히 남동생을 보라는 염원의 표현, 주술적인 의미를 담고 잇었다. 어머니가 배불러 있을 때, 할머니는 나한테 묻곤 하셨다. \'논에다 터 팔고 나왔냐, 밭에다 팔고 나왔냐?\" 난 당연히 논에다 팔고 나왔다고 대답했다. 그래야 예쁨을 받는다는 것쯤 진작 터득했으니까. 할머니는 매우 기뻐하시며, 남동생을 보면 색동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해 주마고 약속했다.

네 살의 늦봄에 남동생이 태어났다. 그 아이가, 내가 빠뜨리고 나와서 사람들 마음을 그토록 허전하게 했던 걸 달고 나왔다!! 경사가 났다. 당사자의 존귀함이야 말할 것도 없고, 미처 챙기지 못해 빠뜨려 놓고 나왔던 나조차도 대우를 극진히 받았다. 밭이 아닌 논에다 터를 팔고 나온 나의 공로를 인정받아, 내 또래의 조무래기들은  보릿고개 오르막의 봄날에 우리 할머니가 지어주시는 흰쌀밥에 미역국을 맛나게 얻어먹었다던가.

그리고 드디어 난, 그해 추석에 인조견 빨간 치마에 색동저고리를 곱게 차려 입었다. 상고머리도 길러서 바가지 씌운듯한 단발머리가 되었다.

그것만도 감지덕지였다. 우리 집은 그 어느때보다 웃음꽃 만발이었고, 아무도 내가 빠뜨리고 나온 물건에 대하여 묻거나 아쉬워하지 않게 되었다. 나 대신 그것을 잘 챙겨갖고 나와준 남동생 덕이었다. 나는 무의식중에 남동을 나보다 훨씬 귀하고 가치있는 존재로 인정했다. 남동생이 쉬할대 오줌깡통 갖다 대령하고 갖다 비워서 부셔다 놓고, 기저귀 심부름, 간식 심부름,.. 사랑보다 차라리 충성심에 가까웠다. 그런 내가, 꿈인들 얼마나 변변하게 꿀 수가 있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