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을 보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여러분들도 그러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 코가 석자건만, 녀석이 토해내는 울분을 들어주랴 넘지 말아야 되는 부모 자식 간의 선을 넘나드는 녀석의 막말을 잘라가며 사람의 도리를 훈계하랴...
1시간이 가깝도록 해답 없는 얘기를 되풀이해야 했다. 벽에다 대고 얘기해도 그렇게 허망하지는 않을 듯 했다.
왜 그러고 사니... 조금만 더 둥글게 살아봐. 옛날 일 자꾸만 가슴에 품고 살아서 뭐하게. 너도 자식 키우면서 입장 바꿔 생각이 안되디? 네 아들놈이 네가 한 행동을 너에게 그대로 했다고 생각해봐라...
욕 사이사이 매일 입 아프게 해댔던 말을 또다시 되풀이 했지만 ‘알았어.’ 하고 말면 그뿐인 녀석.
난 만사가 귀찮다며 그만 얘기하자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2시간쯤 흘렀을까?
녀석에게 또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제 엄마에게 간단다. 며칠 전에 그렇게 안 좋게 하고 왔으면서 이번에는 청첩장을 던져주러 간단다.
말을 해도, 전해주러 가는 것이 아니라 던져 준단다. 아...혈압...
“너, 이 썅 놈의 새끼!!! 나한테 앞으로 전화만 하면 콱~ 죽을 줄 알아.
누나가 그렇게 얘기했는데도 그따위로 밖에 말을 못해? 너 여지껏 나랑 X소리 한 거야? 너란 동생 놈 없으니까 다신 전화 하지마!“
녀석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쩜 그렇게 위아래가 없는지,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 바람에 내 말투며 목소리는 극에 달해 있었다. 내 할 말 다 한 나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녀석이 집으로, 핸드폰으로 연신 전화를 해댔지만 받지 않았다.
30분 후에 문자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징한 녀석...
- 누나, 엄마한테 청첩장 던져주고 가. 사는 게 궁상스럽더라. -
문자를 보니 전처럼 멱살을 잡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답장을 하지 않았다.
5분 후에 또 다른 문자가 왔다.
- 집사람이 엄마 찾아 갈 때, 과일 사가지고 가라고 하던데 어떡하지? -
거친 입과 달리 속이 여린 녀석은 증오한다는 제 엄마에게 연민을 느꼈나 보다. 모자간의 사이가 그렇게 지 말처럼 칼같이 자를 수 있을 라고... 그동안 퍼부어 놓은 것이 있으니 과일 하나 드리기도 멋쩍었던 게다.
- 수박과 참외가 물 좋네. 사다가 던져 줄까봐. -
과일 집 앞에서 떠나지 못하고 갈등하는지 녀석은 내게 제 마음을 중계방송 해댔다. 그동안 했던 것과 전혀 다른 표현이었다. ‘욱’ 하기도 잘하지만 오해가 풀리는 것도 쉬운 나... 녀석의 그런 모습이 기특해 보였지만 꽉 조였던 끈을 갑작스레 느슨하게 풀어 주고 싶지 않았다.
나의 냉대 때문인지, 아니면 그 동안 세상을 잘못 살았다는 것을 몇 시간 사이 느낀 것인지 모르겠지만 저 혼자 생각해야 할 부분이 필요할 것 같아서 전화를 허락하지는 않았다. 단지 몇 번에 걸쳐 날아 온 문자에 대하여 답장은 해주고 싶었다.
- 과일은 던져주면 깨져. 비싼 것 사서 돈지랄(?)하지 말고 시원하게 해서 드시라고 말씀드려. -
하고 몇 자 눌러 보냈다. 그리고 못 다한 말 몇 자를 더 적어 보냈다.
- 세상에는 많은 말보다 무언(無言)이 더 무서울 때가 있는 법이야. 속엣 말 삼키기도 해봐. -
녀석이 10분 후에 전화를 또 했지만 받지 않았다. 또 다시 문자가 왔다.
- 엄마가 나를 보고 울어. 자기가 잘못했대. 화해하고 살자고 하는데 그게 왜 가식 같지? -
- 내가 잘못 됐는지 몰라도 엄마가 그렇게 나오니까 또 화가나. 그래서 결혼식에 오지 말라고 했어. -
참으로 힘든 모자간이다.
청첩장을 줄때는 언제고 화해하자고 끌어안으니 그것이 가식같아서 결혼식을 오지 말라고 했단다. 오라고 해도 올 수 없는 제 엄마를.
답답한 모자들의 이야기... 지겨워서 녀석의 말에 대꾸도 해주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집으로 전화가 왔다. 전날과 달리 녀석의 목소리는 밝았다. 내색은 않지만 제 엄마와의 어설픈 화해가 녀석의 마음의 응어리를 조금은 풀어낸 듯 했다.
“누나, 아직도 속상해?”
“너랑 말하면 더 속상해.”
“어떡하면 풀릴까?”
“너 입 좀 조심하면 조금 풀리고 도둑놈 잡아서 내 물건 찾으면 아주 풀어 질라나?”
“내 입은 잘 모르겠고, 누나 내가 30년 할부로 그것 다 사줄게.”
“한 달에 얼마씩 주려고 30년 후냐? 앓느니 죽겠다.”
“30년 안에 한꺼번에 해 줄게.”
“됐어. 시끄러우니까 전화 끊어. 결혼 준비나 잘 하고.”
“누나, 내가 사랑하는 것 알지?”
“사랑하는 놈이 그렇게 누나 속을 뒤집어?”
“히히히... 그래도 누나는 내 누나니까 다 받아줘야지.”
“징그러 임마.”
“통장에 30만원 붙였다. 그거로 반지 몇 돈해라.”
(언젠가 애들 학원비가 없어서 녀석에게 손을 벌린 적이 있었다. 그것이 꽤 시간이 흘렀는데 녀석은 그동안도 내 계좌번호를 간직하고 있던 듯 했다.)
“쓸데없는 짓 했다. 네 계좌 불러. 다시 보낼 거야.”
“누나가 알아내서 붙여봐.”
“올케한테 묻는다.”
“헉...안돼. 내가 언젠가 마누라가 나 몰래 자기 사촌오빠한테 돈 보낸 것 가지고 지랄했었는데...그럼 앞으로 마누라한테 내가 할 말이 없어지지.”
“그러니까 불러. 아니면 올케한테 말 할 수밖에 없어. 지금 난 너한테 그런 돈 받고 싶지 않아. 내가 거지냐?”
난 요즘 괜한 자격지심까지 일으킨다. 내 그 말에 녀석이 섭섭했나 보다.
“왜 그렇게 생각해? 내가 술 덜먹고 아꼈다가 누나 용돈 주는 건데. 누나는 동생의 마음도 몰라? 나 지금 일해야 해. 하여튼, 누나 우리 마누라한테 그 얘기하면 난 정말 기도 못 피고 산다는 것만 알면 돼. 끊는다.”
정말 바쁜 것인지 아니면 척을 하는 것인지 녀석이 전화를 급하게 끊어 버렸다. 상황이 바뀌었다. 내가 아무리 전화를 해대도 이번에는 녀석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내 남편이 비자금을 갖고 있는 꼴은 못 볼 성질머리가 동생 녀석이 제 마누라 앞에서 비자금 때문에 쩔쩔 매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정말 이유의 전부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녀석에게, 올케에게 묻겠다고 협박했던 것처럼 실행하지 못하고...그렇게 찝찝하게 이틀을 보냈다.
그리고 녀석의 결혼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