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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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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2


BY 은하수 2006-06-01

어느 봄햇살이 눈부신 토요일 오후,

우리는 근 20여년이란 세월의 간격을 훌쩍 넘어

경기도 남쪽 소도시의 조그만 기차역 앞에서 만났다.

그 곳에 멋진 전원주택을 본가로 가지고 있는 한 친구의 초청으로...

 

앞서 말한 그 아이는 우리들의 고향에서 결혼하여 옛터를 지키며 살고 있음에도

아침부터 서둘러 기차를 타고서 친구와의 재회를 위해 부리나케 올라온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모습들, 어릴적의 개성들이 흠뻑 묻어나는 분위기며 말투...

그렇게 변하지 않고 자기 모습을 유지한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 아이도 아직 삭아질 나이는 아닌지 여전히 팔팔한 모습, 키는 더 큰 것 같고,

한층 높아진 목소리톤, 쉴 새 없이 떠벌리는 입술... 다시 어릴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 애가 나타나서 계속 떠드니 우리는 미소를 띠고 듣고만 있어도 재미있고 여튼간에

어디에나 분위기 메이커는 꼭 있게 마련이고 또 있어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통돼지삼겹살과 통감자 바베큐를 맥주와 같이 먹으면서

전원의 아름다운 풍경들, 초록우거진 수목들, 파란 거울같은 작은 저수지,

쾌청한 하늘, 잡지에서 튀어나온 듯한 예쁜 집을 배경으로 삼아

모처럼 그림 속 주인공이 되어보는 호사를 누렸다.

 

다혈질이고 발랄하면서도 눈물이 많았던 그 아이는 어릴적 친구들을 만난 설레임에

들떠서 쉬지도 않고 떠들어댄다. 나에게는 누군가가 -넌 옛날이나 지금이나 목소리도

나지막하고 느릿느릿하고 어쩌면 똑같구나- 그랬다.

 

그 사이 풍문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똑같았던 가족구성원이 달라져 있었다.

걔네는 생활력 강하고 활달하시던 어머니가 뇌일혈로 세상을 달리 하시고

우리네는 장손이자 떠오르는 태양이던 유일한 외아들이 병마 끝에 하늘나라로 갔다.

난 그 애가 최소한 못 되도 천사가 되었으리라 본다. 

세상 티끌이라고는 묻지 않았던 아니 묻힐 기회조차 없었던 그 애.

 

그 애는 만나서 반가운 인사가 끝나자 마자 -얘들아, 죽는데는 순서가 없단다.- 면서

살았을때 서로 잘하자는 요지의 얘기를, 자꾸 애늙은이 같은 소리를 한다.

어머니가 뇌일혈로 쓰러져서 한달반동안 중환자실에서 의식없는채 누워계시다가

돌아가시는 과정을 지켜보고 돌아가신후 삶을 되짚어보니 인생 별거 없더라는 얘기였다.

 

물론 지당한 얘기기는 했지만 듣는 나로서는 한구석에서 피식하고 김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뇌수술후 중환자실에서 머리깎고 누워 계시던 한달반동안 많은걸 느꼈다면

대체 나는 무엇을 느껴야 하나?

내가 중3이던 해부터 만14년동안 학교도 못다니고 시름시름 병석에서 앓으며 죽어가는

동생을 지켜봐야했던, 그 동생과 한몸이 되어 자기 정신이 병들어 가는 것도 모르고 꿈틀

꿈틀 몸부림치던 엄마를 지켜봐야했던 나는 무엇을 느껴야 하나?

 

삼십초반의 1달반동안에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는지 몰라도

꿈많던 사춘기시절의 14년은 생각이 얼어붙고 머릿속 뇌와 신경이 녹아내리는 시간이었다.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엄마의 말없는 희생을 거름 삼아

푸른 나무들같이 우뚝 성장한 자기 남매들의 이야기,

자유롭고 호젓하면서 멋있는 노후를 보내시려 애쓰는 홀로되신 아버지 이야기.

 

나는 그저 마음 비우고 즐겁게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이 잘 안되고

마음 속에 무엇이 자꾸만 차오른다.

 

엄마 돌아가신후 자기 길을 열심히 살아 집안의 튼튼한 기둥이 되고도

어렵다는 고시에 합격후 외국의 명문대학에서 유학중인 그 애 남동생의 이야기에

죽은 남동생의 모습이 자꾸 어른거려 마음이 쌉싸름하게 아린다. 쓸쓸하다.

엄마는 동생들 뒤치닥거리하느라 터진 둑 막으러 뛰어다니느라 아직껏 정신이 없고.

나같은건 안중에도 없는 듯 하다. 어쩌면 전화 한통이 없다.

 

 

죽는데는 순서가 없단다.

아니

순서가 꼭 있어야겠더라.

순서를 지키지 않으면 집안이 어찌 된다는걸 몸소 체험했다.

 

살아가는 동안 여러 별사건들이 다 많다.

살아야 한다면 겪어야 하는 일들이다.

다만

기쁨도 슬픔도 너무 지나치면 마음의 병이 되나니

적당히 적당히 넘어갑시다.

 

나는 그걸 깨달았다.

나는 무엇을 깨달아야 하나 몇일째 고민한 끝에 얻은 결론이다.

삶과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거늘.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기쁘게 살자구요. 기쁘게...

 

죽음을 미리 걱정하는 바보는 되지 맙시다.

걱정 안해도 하느님이 때되면 다 데려가니까요...

 

기쁘게 살지 못한다고 해서 누구도 보상을 해주지 않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