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어머니의 제사였다.
제사 전 날 또 그 전 날에도 큰언니와 오빠에게 전화가 몇번이나 왔었다.
<어머니 제사인거 알고있지. 힘들더라도 와서 얼굴이라도 좀 보자.>할때 나는 그런다고 했다.
내게 전화를 하는 언니와 오빠는 집안에 대소사가 있어 통화를 하게되면
<많이 힘들지? 얼마나 힘들겠니. 좀 왔다 가면 안되겠니. 얼굴이라도 좀 보자.>
하는 어감은 마치 내가 고생하는 것이 당신들 때문인 것 처럼 늘 미안해 했고 조심스러워 듣고 있던 나는 곧잘 민망했다.
오히려 내가 미안해 고개를 들 수 없는데 말이다.
어머니 제삿날은 금요일이였고 그 날은 닷새중 하루 쉬는 날이였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제삿날 가서 어머니 제삿상에 올릴 전을 올케언니와 붙일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만 오늘 새벽 마음이 변해버렸다.
오전에 읍내에 나가 고물상을 찾아다녔다. 몇군데의 고물상을 찾아다니다 쓸만한 자전거를 하나 골랐다.
고물상 아저씨는 돈을 받아들고 자전거를 끌고 돌아서는 나를 불러세웠다.
\"바퀴에 바람 좀 더 채워줄게요.\"했다. 빵빵해지는 자전거 바퀴를 보면서 빨리 패달을 돌리고 싶었다.
그 자리에서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벗어나 군서면 쪽으로 달렸다. 날씨가 쾌청했다.
아카시아 향내가 흘러나와 숨을 깊게 들어마시다가 하마터면 숨이 멈춰질뻔했다.
아카시아향기가 흐르는 길은 짧게 끝나지 않았고 나는 아카시야 향내에 홀린 정신나간 여자처럼 어딘지도 모르는 길을 내쳐 달렸다.
자전거가 몸에 딱 맞는다. 패달도 부드럽게 돌아갔다. 포장된 길도 매끄럽다.
자전거를 참 잘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흡족했다.
길가쪽으로 가지가 뻗힌 아카시아 나무 아래 앉았다.
맞은편 산을 타고 내려 앉은 논에 어린모가 제법 크게자라고 있었다.
이제 유월이면 논의 벼는 밥 잘먹는 어린아이처럼 훌쩍 커 즐거운 합창을 하고 있을거다.
올 장마는 다른해보다 일찍 시작된다고 했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찾아오는 태풍은 논을 쓸고 갈것이고 태풍에 쓸려누운 모는 시름시름 앓게 될것이다.
쓰러진 모를 일으켜세워 다시 제자리를 찾아 주는것은 기계로 할 수가 없어 건장한 젊은이들 몫이였다.
예전에 집을 구하지 못해 시골 빈집에 아이들과 들어가 함께 살때의 일이다.
태풍이 쓸고간 논에 모를 일으켜 세울 젊은 사람의 일손을 구했다.
밭 일품 팔으면 하루 이만 오천원이 일당일때 모 일으켜세우는 일당은 오만원이라고했다.
어떻게 하는거냐고 물어보니 누워있는 모를 일으켜세워 묶기만 하면 된다고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해보지 않았지만 경험이 필요로 하지 않은 일이라면 하겠다고 했다.
허벅지까지 오는 긴장화를 신고 논에 들어가 모를 일으켜세우는 일은 여간 힘들지 않았다.
허리 아파 힘들다고 논에 주저 앉아 쉴 수는 없었다.
넓은 논바닥에는 물이 무릎까지 고여있었고 엉덩이 걸칠 논둑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그리고 높은 일당을 받으면서 쉬는 것은 논주인이 보든 보지않든 눈치보이는 일이였다.
어느 논은 습지라서 발걸음을 옆으로 옮겨야 하는데 발이 빠지지 않아 애를 쓰다보면 그 긴 장화가 그만 훌떡 벗겨지며 발이 빠져나와 논바닥으로 철퍽 주저앉아 온 몸이 흙탕물로 뒤짚어 쓴적도 있었다.
후로는 허리를 깊게 숙여 발목을 양손으로 움켜잡고 발자국을 떼어놓고는 했다.
쓰러져 누워있는 모를 묶고 허리한번펴고 하늘 올려다 보고...
그때는 그래도 하늘 올려다 보는 일이 많았다.
그 무한의 파아란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한 없이 아련했다.
우리 동네 모 일으켜세우는 일이 다 끝나고 이웃동네로 일을 나갔다.
새참을 앞에 두고 어른들이 도시에서 살다 들어와 힘들텐데 일 찾아한다고 기특하다고 했다.
나를 앞에 두고 기특하다고 하실때 나는 밥을 열심히 먹었다.
어른들은 또 밥잘먹는다고 예쁘다하시며 밥한그릇을 더 퍼낸다.
막걸리잔을 돌리면서 내게도 마셔볼테냐고 하셨다.
우리동네 아주머니는 상추쌈을 입에 넣으시다가 큰일난다고 내대신 손을 내저을때 나는 한잔 주십사하고 고개를 돌려 벌컥벌컥 마셨다.
딸같다고 하시며 풋고추를 된장을 찍어 손에 쥐어주셨다.
쓰러진 모를 일으켜세우는 일이 끝나고는 비닐하우스 짓는 일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받은 품삯을 차곡 차곡 모았다.
조금만 더 모으면 어머니를 찾아뵐 생각이였다.
어머니는 부지런하셨다.
나는 살면서 한번도 어머니가 낮잠주무시는 모습을 보지못했다.
평생을 부지런하게 사신 어머니의 노후대책으로 남겨놓은 퇴직금이 나로 인해 사라져버렸다.
내가 객지로 아이들을 데리고 떠돌아다니는 동안 어머니는 대장암이라는 진단을 받으셨고 세번의 수술을 받으셨다.
이 돈으로 어머니에게 약을 사드리고 싶었다.
아이들 손을 잡고 어머니의 집을 찾아갔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오학년인 딸아이보다 더 작아지셨다.
항암치료를 받느라 민둥머리가 되어버린 어머니의 머리에 한여름에 털모자가 씌여있었다.
나는 어머니를 보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아이들도 낯설어진 어머니의 모습에 주저주저하다 나를 올려다 보고는 할머니...하며 따라 울었다.
<울기는... 동네사람들이 흉본다. 어여 들어가자.>
아이들을 보고 그새 많이 컸다고 힘들게 한걸음 옮기시고는 아이들 바라보고 나 한번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하셨다.
어머니는 나와 아이가 굶고 사는 줄 아는지 주방에서 먹을거라고 생긴거는 다 들고 나오셨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그만 앉으시라고 했다.
어머니는 어지러우신지 예전같으면 손을 뿌리치고 일어나셨을건데 깊고 거친숨을 몰아쉬면서 벽에 등을 기대고 앉으셨다.
봉투를 내놓고 약값에 보태쓰라고 하였다.
먹고 살기도 힘들텐데 무슨돈이냐고 물으셨다.
내가 논에가서 일품팔았다고 하니 일도 할 줄 모르는 네가 어떻게 그런 거를 하느냐고 하시면서 동네사람들한테 폐끼치는 거 아니냐고 하셨다.
\'엄마, 동네 아줌마들이 나보고 일 잘한다고 맨날 맨날 데릴러 오는데... 감자도 심고 마늘도 심고 고추도 심고 ...
벽에 기댄 그림자같던 어머니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신이났다.
엄마, 일 별로 안힘들어요. 그냥 하면 되요. 기술도 필요없어. 남들 하는 거보고 똑같이 따라하면 돼.
새벽에 일하니까 별로 안더워. 낮에 더울때는 그늘에 앉아 좀 쉬라고 하거든...
동네에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산다고 좋아해요. 다 얼마나 잘해주는데... 내가 일 잘한다고 다 나한테 와서 해달래...
하고 안한말도 보태서 했다.
아이들도 말없는 어머니를 바라보다 할머니 맞아요. 우리엄마가 일 잘한다고 동네 아줌마들이 일해달라고 찾아와요.
그래도 어머니는 가만히 앉아서 저를 바라보고 계셨어요.
나는 그만 어머니에게 다시는 내 걱정하지 마라고 나는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그런 말하려고 쉬지않고 이야기 한건데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엄마. 기운없어? 누우실래요? 하니
어머니는 손을 내저으시며
<나는 괜찮아... 그래, 그렇게 살면 된다. 그럼 다 살아지는거다. 지금 힘들어도 나중에는 조금 덜 힘들지 않겠니.> 하셨다.
나는 더이상 어머니에게 들려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때 어머니가 처음으로 환하게 웃으셨는데 그웃음은 아마도 내가 결혼하고 난 후에 몇번 보지 않은 커다랗고 환한 웃음이였다.
아마 짐작컨데 대견했고 기특했을것이고 한편으로는 정신놓지않고 살아가는게 다행이다 싶으셨던것 아닐까 싶은 안도의 한숨이셨던것 같았다.
내가 다녀간 이후로 어머니가 아주 기분이 좋아지셨다고 마음이 이제사 놓인다고 언니가 전했다.
그리고는 정말 밭갈고 논일하고 그러니? 했을때 나는 그렇다고 했다.
오빠도 몇번이고 물어왔다.
시골에 들어가 뭘로 먹고 사니,참 내원... 일도 못하면서 할때 나는 밭품팔고 일품 팔아먹고 산다고 했을 때 전화기 건너에서는 아무말도 들리지 않았다.
어머니를 떠나오면서 나는 囚人이라는 이름을 뒤짚어쓰고 살았다.
밭으로 들어가던 늙은 어머니가
둑길에 앉아있던 나를 바라보고는 날바닥에 앉으면 입성버리는데... 하시며 지나가신다.
지금 어머니가 살아계시면 훌쩍 업고 장구경 시켜드릴텐데...
밭을 일구고 있던 늙은어머니가 나를 향했다.
이놈의 아카시아 냄새가 사람 홀리지?
나는 부러 어머니의 제사에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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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한하운
제일 먼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좁은 지역에도 한포기의 꽃을 피웠더냐.
하늘이 부끄러워,
문들레 이른봄이 부끄러워
새로는 돋을 수 없는 밝안 모가지
땅속에서도 옴돋듯 치미는 모가지가 부끄러워.
버들가지 철철 늘어진 초록빛 계절 앞에서
겨울도록 울다 가는 청춘이요, 눈물이요.
그래도 살고 싶은 것은 살고 싶은 것은
한번밖에 없는 자살을 아끼는 것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