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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780

딸 혜진이


BY 혜진엄마 2006-05-29


딸...
내 딸 혜진이

 

지 각시 못생겼음을  첫아들 낳고
바로 깨달아 버린 남편이란 작자

 

쥐어 패고  발로 내 지르고 쌍욕을 해대는  그런 학대는
절대 아니 하는 반면

 

집안에 있어도  얼굴을 쳐다보지 않음을 물론
말도 없고  물어도 답도 없고 

 

소 가 개 보 듯  닭 소 보듯  하더니
어느 날부터는 집을 멀리 하기 시작했다

 

일주일만에 오고
열흘만에 오고


한 달이 한 번이나  
두 달만에 한 번  볼 때도 있고

 

어느 땐가는  석 달째나   종무소식이기에
쌀도 없고 연탄도 없고  우리 모자는 병이 들었다고
남편의 친구 부인에게 하소연했더니


그 밤 야심한 시간에  쌀 서너 말과 몇 푼의 지전을 던져주고 가버린 적도

있었다

 

하루는 몇 달 만인지  새벽에 술에 취해서 들어오더니
취한 위인  눈에  내가 여자로 보였던가 

 

구석에 아이와 웅크리고 자는 나를
깨우지도 않고  덮쳐 제 볼일을  채우는데  그 밤 그 일 끝에 생긴 게
우리 가엽고 서러운 딸  혜진이다

 

또 아이 밴걸 알고 난  남편이란 위인 하는 말
\"애 가졌어?  지워! 애는 자꾸 낳아서 어쩌자는 거야

 

그때 저는 이미 나와 살지 않으리라 작정하였던 가
지나고 생각하니 ..

 

딸 혜진이는 시대적으로도 아주 격동기에  태어났다

그 해 대통령이 총탄에 서거하였고


이듬해 봄엔 광주사태로  온 나라가  전쟁 분위기로 날카롭고 웅성웅성 대던 
때였으니

 

아무려나  

한갓 보잘 것 없는 여인네인 네겐
가정이 깨지고  아이를 업고 거리로  내 몰린  판에


나라가 어떻고  누가 죽었음 어떻고 살았음 어떻고
 어디서  난리가 났던지 말던지 무슨 관심이 있었으랴 만 ...

 

수중에 돈 이만 칠 천 원
몸빼 바지에
풀 슬리퍼 꿰 신고  업고 걸리고  무작정 서울로 갔다

 

80년 그 해 여름   그 길고 긴 장마


내 눈에서 쉴새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보다  더 줄기차게  쏟아지던
그 여름 장마

 

논에 심은 벼가 싹을 튀우지 못하고  썩고 물러져 쓰러져도
그칠 줄 모르던  그 해 장마 ..

 

많은 목숨이 이유 없이 죽어야 했던 그 여름 

그 시대의 눈물이 그토록  많은 비로 변해  내렸나보다

 

새 정권이 들어서고
동시에 나도 두 아이들과  살 곳을 찾아서 들어섰다


노량진에 있는  성로원 영아원 

 

그곳에서  아이 둘을 고아로  올리고
난 백 명 가까운  원생과 보모들의 밥을 짓는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지금도 계시는   김종철 원장님  전옥자 보모장 님

제가  아이 둘 키웠던  3년여의 그곳 생활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늘 고마운 마음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일이 있었고
숱한 눈물이 있었던  성로원 생활


아이들과 내 처지보다  더 절절한  고아들의 숱한 사연들

 

친권을 포기하고 눈물로 나가는 부모
영화배우처럼 차리고 와 아무렇지 않게 아이 입양을 청하는 부모

 

방마다  숨죽여 우는 어린 영혼들의 흐느낌이
종일 밥하고 반찬 하느라 파김치가 되어 누운  내 골방에까지 스며들어
선잠이 들었다 깨었다 하며  

 

먹먹한 가슴으로 다시 잠들고 하길 또 얼마나

세상에 못할 짓이  자식 버리는 일일레라  독한 인간들 같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