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영동장날입니다.
하천 둑변에 새로운 장이 준공되면서 축하연이 열리고 군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장마끝이라 그런지 더위가 숨이 막힐 지경였고 얼마나 햇볕이 뜨거운지 머리가 벗겨질것 같았습니다.
신나는 노래자랑에 장사는 뒷전이고 구경하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발로 박자를 맞추며 흥겨워졌습니다.
술취한 아저씨 몇분이 무대근처에서 춤을 춥니다.
저쪽 천막 안 마늘장사 아주머니는 전을 편 곳에서 일어나 춤을 춥니다.
나는 춤이라고는 당체 ㅡ.ㅡ;;
그래도 구경하는 것은 즐겁습니다.
저 연두빛 티셔츠 입은 유난히 머리가 큰 아저씨, 춤이 아주 느끼한게 사람 잡습니다. ㅎㅎ
이 더위에 아무래도 반 쯤 남은 머리가 홀라당 벗겨질 것 같습니다.
내가 술 한병쯤 마셨다면 술에 힘을 빌어 저 아저씨하고 같이 춤췄을낀데...헤헤 (우웩~)
노래자랑에 나온 아주머니에게 아저씨가 꽃다발을 주고 돌아서자 사회자가 아저씨를 붙들고 물어봅니다.
\"아주머니와는 어떤 사이 십니까?\"
아저씨가 대답합니다.
\"한 이불을 덮고 사는 사람 입니다.\"
사회자가 다시 짖궂게 물어봅니다.
\"첫 키스는 언제 했나요?\"
두사람 다 얼굴이 붉어져 대답을 못하고 돌아섭니다.
나는 기둥옆에 서서 쳐다보다가 기둥 뒤쪽으로 돌아섰습니다.
\"뭐가 그렇게 부끄러우세요. 첫키스는 언제 했나요?\"하고 다시 묻습니다.
아직도 대답이 없습니다.
사회자가 다시 물어봅니다.
그럼 키스한 장소는 어디입니까?
나는 기둥뒤에 서서 마음속으로 대답합니다.
스물다섯살이였을거예요.
충북체육관 앞.
그 날이 아마 토요일이였을거예요.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프라타나스가 가끔 흔들리고 있는게 보였어요.
프라타나스가 그렇찮아요. 잎이 늘어진게 아니고 손바닥처럼 씩씩한게 푸른빛을 꼭 지니고 가지에 매달려 누군가에게
안녕,이라 말하는것 같았습니다.
열을 지어 서 있는 프라타나스가로수 아래 보도를 지나는데 한벌초등학교를 지나고 충북 체육관앞을 지나는데
한 남자가 제 앞을 막습니다.
그리고는 인사를 합니다.
나는 인사를 하는 그 사람이 기억이 나지 않아 누군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저를 아세요? 하는 당황한 눈빛으로 말이지요.
남자는 자기 소개를 합니다.
전에 우리 본 적있지요.
그러고 보니 제 친구에게 소개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였습니다.
아~ 네, 그러네요. 하고 주춤거리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하고 저는 그 남자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습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체육관 앞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배드민턴치는 사람들.
배구를 하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
버스가 다니는 도로를 바라보고 스탠드에 앉아 무릎을 앉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프라타나스잎이 더 없이 힘찬것을 보아하니 아마 칠월이 아니였을까 싶습니다.
남자가 뒤 따라 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요 며칠 그 남자를 언뜻 언뜻 자주 스쳤던 것 같습니다.
\"저...\"
나는 뒤돌아 봅니다.
\"... 왜 그러시는 데요.\"
남자가 나를 바라봅니다.
눈길이 너무도 강렬한 남자가 갑자기 무서워 위급함을 느끼고 뒤돌아 서는데
남자가 저를 돌려 세워 와락 안고 입맞춤을 합니다.
얼마나 힘이 센지 몸이 부서질 것 같습니다.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정신이고 몸이고 온통 세상의 모든것들이 다 함께 깊은 계곡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 남자가 누구였지. 이 남자가 내게 무엇이였는데...
얼마나 오랜동안인지 버둥거리다 다리에 힘이 다 풀렸는데 남자가 나를 놓았을때
주위 사람들이 남자와 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타던 남자가 발을 땅에 딛고 자전거를 세우며 바라보고 있었고
배구공을 던지던 남자가 하얀공을 들고 바라보았고
테니스를 치던 여자가 줄이 팽팽한 테니스 체를 들고 내쪽을 향해 있었고
배드민턴을 치던 남자와 여자. 비누방울 놀이를 하던 꼬마아이 그 누구나 할 것 없이 내쪽을 향해 서 있었는데
참, 스탠드에 앉은 사람들도 말이지요.
세상이 얼마나 고요한지 귀에서는 멍하는 울림만 들려왔는데
그 길로 집으로 뛰어와 세수를 얼마나 많이 했던지요.
비누로 입도 수도없이 닦았고 치솔질도 몇번이나 하고...
그런데 밤에 잠이 안오대요.
사탕만큼 달콤하다는 키스가 뭔 절벽위에서 떨어지는 그 아득함이라니...
아, 이젠 큰일났다. 뽀뽀했으니 시집가야 되는구나. 저는 뽀뽀하면 시집가야 되는 줄 알았어요. 정말이예요.
정말이라니까요.
안 믿는다구요?
그래도 할 수없어요. 저는 진짜로 그런 줄 알았으니까요...
멜렁~!
아, 진짜로 허무하다.
첫 키스 이야기 까지 하다니...
<그 키스한 도둑님. 오래도록 함께한 제 남자였습니다.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