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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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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찌그러진 양은 밴또


BY 불토끼 2006-05-28



1980년대 우리집.
대구와 포항가는 직행버스가 30분마다 서는 버스 정류장 맞은 편 마당넓은 집.
그 집에는 우리집을 비롯, 모레알 상회, 대구약국, 건국 전파상을 경영하는
세 가족이 살고 있었다.
그 넓은 집과 가게의 소유주는 우리 아버지였지만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해 보면...
풍족했다는 기억보단 궁색했던 기억이 더 많다.(하지만 불만은 없다)

그 궁색한 기억의 한가운데 나의 찌그러진 양은 밴또가 있었다.

밴또 얘기를 꺼내기 전에 이해를 돕기 위해 몇가지 부차적으로 설명해야할 것이 있다.

우선 우리집 나무 대문. 도대체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그 대문은 수십 년간 비바람에 찌들어 군데 군데 썩었을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검은색을 띤 다 쓰러져가는 것이었다. 그것이 대문으로서의 구실을 했다기 보다 ‘여기서 부터가 이 집이오’하고 알려주는, 짝대기로 금 그어놓은 것과 다를 바 없는 고물이었다.

학교를 파하고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다 멀찌감치 우리집 대문이 보일라 치면 나는 볼일이 있는 것처럼 시장통으로 꺽어 들어가거나, 대문 바로 옆 모레알 상회를 통하여 집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친구들이 날보고 가난한 집 딸이라고 할까봐 부끄러웠던 것이다.

비단 대문 하나 뿐이 아니다. 우리 아버지는 웬만한 신식문물은 동네에서 제일 늦게, 그것도 자식과 마누라 등쌀에 못견뎌 어쩔 수 없이 사는 양반이었다.

테레비만 해도 그렇다. 세든 다른 가족들이 모두 테레비를 샀을 때도 아버지는 계속 버티다가 1년이나 지나서 사는 바람에 우리 4형제는 각각 모레알 상회, 대구약국, 건국전파상 등지에 흩어져 테레비를 보아야만 했다. 주책없게도 그때 드라마 ‘왜그러지’는 어찌나 재미있었든지 아직도 남의집 방구석에서 본 ‘왜그러지’의 주제곡을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다.

내가 우리 아버지에게 내 꼬장물 흐르는 어린 시절을 하소연 하느라,

‘아부지는 그때 왜 텔레비전도 늦게 사주고 썩어 문드러진 나무대문도 안갈아주고 그랬어요?’

하고 대든다면 우리 아버지 울컥 하시며 이렇게 대답하실 것이다.

‘썩어 문드러진 대문으로 드나드는 것이 그리 부끄럽더냐?
‘그땐 이 아부지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거북선 대신 청자를 피웠느니라!’

이렇게 나오시면 피차 할말이 없겠지만...

꼬장물 흐르는 내 어린시절의 기억중 나는 밴또에 특히나 쌓인게 많은 사람이다.
찌그러진 은색 양은 밴또.
그것을 언니에게 물려받아 꽤 오랫동안 들고 다녔었다.
크기는 ‘국어’교과서 반 잘라논 것 정도 되는 밴또로 위에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긴 하나 군데 군데 찌그러지고 색이 벗겨져 애초에 무슨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지 상상이 안가는 양은 밴또.

밴또...

‘밴또’, ‘밴또’ 한다고 꾸짖지 마시라. 그 이유가 다 있다. 당시에는 일본어 안쓰기 운동이 범국민적으로 불타오를 때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도시락을 밴또로 부를 때였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밴또’라고 하면 찌그러진 질 낮은 양은 밴또가, ‘도시락’이라고 하면 예쁜 캐릭터가 그려진 깔끔한 플라스틱 도시락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나는 일본어든 영어든 사투리든 가릴 것 없이 상황과 장소에 어울리는 단어가 진짜 살아움직이는 단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문학이다.)

아무튼,
그 밴또에 어머니는 미역 줄거지, 고구마 줄거지, 마늘쫑, 멸치볶음 등 ‘거무튀튀’한 것들을 넣어 싸주셨다. 하긴 밴또가 그 모양이다 보니 어머니가 아무리 분홍 쏘세지나 계란말이를 싸준다고 해도 내용물이 후져보이는 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학교가 파하고 불토끼처럼 뛰어(나는 좀처럼 걸어다니지 않고 늘 뛰어다녔다) 집으로 올라치면 든 것 없는 내 책가방에서는 늘 짤그랑 하며 양은 밴또에 스덴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가 났었다.

학년이 바뀌어 신학기가 되면
찌그러진 그 밴또 뚜껑을 누가 보기라도 할까봐
몰래 책상안에서 뚜껑을 벗기고 후다닥 밴또를 책상위에 올려놓곤 했던 가슴 아픈 추억.
그 추억을 뒤로 하고 나도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국민학교 5학년땐가 보온도시락을 사게 되었다.
그 보온도시락엔 분명 밥과 반찬, 그리고 숭늉이나 국물을 넣었을 병이 들어있었을 텐데
 도시락이 검정색이었다는 것 외에 자세한 생김새가 생각나지 않는다.
거기다 무슨 반찬을 싸다녔는지도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이상도 하지.
그 보온도시락을 학창시절이 끝날때까지 들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도시락’하면 떠오르는 것은 그 ‘찌그러진 양은 밴또’ 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