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놀이방 2년, 어린이 집 2년 수료한 나의 딸.
작게 태어나서 무럭무럭 자라주는 것이 고맙다는 생각은 잠시였다. 분유를 떼고도 생우유를 낮에 1000L, 밤에 1000L를 마셔 되는 아영이는 그만큼 컸고 무거워졌고 뚱뚱해 졌다.
남편은 아들이 안경잡이가 된 것은 엄마의 유전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라고 은근히 나를 구박 했는데 딸마저 엄마의 피를 이어받아 육중한 몸매가 됐다고 한다면 난 정말 ‘워메 기죽어’ 할 판이었으니 그 당시 내가 받은 스트레스는 만만치 않았다.
아영이와 달리 큰 애는 돌이 넘도록 다른 것은 입에 대지 않고 맹물과 같다는 모유만 먹고 컸다. 그래서 철분결핍성 빈혈까지 생기는 바람에 6개월 동안 약을 먹어야 했다.
물만 먹어도 젖이 펑펑 돌던 큰애 때와 달리 딸은 모유가 돌지 않는 엄마 때문에 분유와 이유식을 먹고 자랐다. 8개월 때부터 이유식과 함께 밥을 먹으려던 아영이. 그 식성은 날로 대단해졌다. 우량아 선발대회에 나갔다면 분명 대상을 타고도 남았을 것이다.
불어나는 몸뿐 아니라 아영이는 머리숱도 없었다. 그래서 늘 모자를 씌우고 다녔고 계집임을 강조하고 싶어서 늘 치마만 입히고 다녔는데도 사람들은 무심하게도,
“아들이 우람하게도 생겼네요.” 하며 내 가슴에 대못 질을 해대곤 했다.
눈은 또 어떻고... 쌍꺼풀 없는 눈이 요즘은 인기라지만 눈두덩이가 두꺼워서 그렇지 않아도 작은 눈이 더 작아 보인다.
아~ 이런 딸이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일학년 때만 하더라도 몸보다 가방이 더 커서, ‘아, 저것이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제는 학생티(?)가 난다. 젖살도 빠지고 먹는 것도 자제할 줄 안다.
문제는 학습능력. 몇 시간을 끼고 가르치면 뭐하냔 말이지. 기껏 받아 오는 점수가 40점에서 65점.
2년 전 어린이 집 다닐 때의 일이다. 예비초등학생은 입학대비반에서 매일 받아쓰기를 받아 오는데 늘 빵점을 받아오는 거다. 10문제 중에 하나도 제대로 쓴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이 집이 끝나고 돌아오는 아영이가 현관문 앞에서 신발도 벗기 전에 한다는 말이,
“엄마, 나 오늘은 5개 틀렸다.” 하는 거다.
그 말이 얼마나 기쁘던지,
“어머, 그럼 아영이 5개는 맞게 썼어?” 했더니,
“아니, 오늘은 선생님이 바쁘다고 5개만 봤어.”
“........”
아빈이는 그런 적이 없었다. 받아쓰기 한 개만 틀려도, 수학문제 1개만 틀려도 남편과 나는 ‘돌머리’를 운운하며 쥐잡듯 애를 잡았는데, 아영이는 어찌된 일인지 잡아도 먹혀들지 않으니 내가 미치지 않는 것이 용타.
국어는 그런대로 지가 노력한 만큼 점수를 받아오는데 요놈의 수학은 어떻게 안 되는 건지.
수학 4단원 평가를 시험보던 아영이 담임선생님께서 얼마나 반 아이들의 점수가 안 나왔으면 재시험을 보겠단다. 장한 내 딸은 4단원 첫 시험을 65점 받았다.
재시험을 본다니 다시 열심히 가리켰다. 일주일 후, 그러니까 어제인 화요일에 다시 시험을 봤다. 시험은 딸이 보는데 어째 집에 있는 내가 더 떨리는지,
(벌써 이러니 다가 올 수능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아영아, 실수하지 말고 잘 풀어.” 하며 다독거려 보냈다. 그리고 아영이가 올 때만 기다렸다.
오후 1시 30분 쯤. 아영이가 돌아왔다. 쉬가 마렵다며 가방을 문 앞에 팽개치던 딸은 부리나케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더니 나왔다. 그리고 한다는 말이,
“엄마, 이 치마에는 이 조끼가 안 어울려. 그래서 하얀 색 조끼를 입고 가려고.” 하는 생뚱맞은 소리를 하는 거다.
“... 오늘 시험은 어떻게 봤니?”
아영이의 말을 자르고 난 나의 궁금증을 물었다. 그런 내 물음에 아영이는 문 앞에서 몸을 배배 꼬는 거다. 그리고는,
“엄마~ 아잉~ 묻지마~” 한다.
그동안 시험을 아무리 못 봐도,
‘너, 그렇게 받고도 창피하지 않던?’하고 대충 잔소리하고 넘어갔건만, 한번 봤던 시험문제, 그 비슷한 내용들을 보고도 반응이 여간 껄쩍지근할 수가 없다. 그래도 설마하니 재시험인데 70점은 받았겠지 싶어서,
“솔직하게 말해봐. 엄마가 가방 뒤져서 꺼내기 전에!” 했다.
그런데 아영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52점 받았어요.” 하는 거다.
“뭐?!!!!!!”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것 같은 나의 소리는 건물을 뒤흔들 정도였을 것이다. 왜 그렇게 화가 나던지. 화가 나서 방방 뜨는 내 앞에서 아영이는 조금은 기죽었지만 아직도 할 말이 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엄마... 다른 애는 빵점 받은 애도 있구요, 30점 받은 애도 있어요.”.
아... 애나 어른이나 어려울 땐 지가 살자고 다른 사람을 붙잡고 들어가는 습성이 있나보다.
혼내는 것을 일절만 하고 아영이에게 피아노 학원에 다녀오라고 했다. 다녀 온 아영이를 보니 이틀 후에 받아쓰기가 있는데도 걱정 없이 인형만 갖고 논다. 일절만 하고 넘어가려 했건만. 공부도 못하는 것이 노력마저 않는 것이 얼마나 화가 나던지, 회초리를 가져다가 손바닥을 때렸다.
“커서 뭐가 될래? 옷만 예쁘게 입고 다니면 되는 거야? 지금은 엄마가 사준다지만 나중에 커서는 네가 사서 입어야 하잖아. 그럼 뭐해서 옷 사서 입을래? 공장 다닐 거야? 정리 정돈하는 것도 힘들다는 것이 공장에서 일할 수 있겠어?!”
하고 끓어오르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을 때 아빈이가 들어왔다. 그 시간이면 학원에 도착해서 있어야 할 시간인데 집으로 왔다는 것도 화가 났지만 준비물을 챙겨놓고도 매번 빠트리고 가는 것까지, 며칠 동안 아들에게도 쌓인 것이 많았던 나. 이래저래 터질 거리들만 즐비했다.
“넌 또 뭐야? 엄마는 매일 밑 빠지 독에 물만 붓고 사는 거야?! 너희 공부하는 학생 맞아?! 너희는 엄마가 몇 명이야? 엄마가 몇 명이길래 이렇게 속을 썩여? 엄마가 화병으로 쓰러지는 것을 봐야만 속이 좋겠어?!!! 아빈이 넌, 오늘부터 학원이고 뭐고 다 때려쳐!!!”
아빈에게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댔다. 내가 소리를 지르는데 아빈이가 자꾸 문 쪽을 힐끔거리며 바라보았다. 그리곤,
“잘못 했어요. 엄마... ” 하더니 무릎을 꿇는 거다. 눈물까지 찔끔거리면서.
하루 이틀 엄마를 겪은 녀석이 아니었기에 그래도 컸다고 눈치만 빤한 녀석이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뭘 잘못해?”
이제 화살 시위가 아빈이에게 돌려졌다.
“오늘도 준비물 싸놓고 안 가져 간 거랑, 컴퓨터 끝나면 학원으로 곧장 가라고 했는데 집에 온 거요.”
아빈이가 자신의 잘못을 또박또박 지적했다.
“알긴 잘 안다!!! 그런 녀석이 다시 또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니 문제지. 학원 관둬. 나도 이제 그 돈으로 엄마 하고 싶은 것 할 거야.”
“엄마... 밖에 친구가 기다리니까 혼자 학원가라고 할게요.”
내 불같은 화를 받던 녀석이 눈망울엔 눈물이 가득해서 겨우 입을 열었다. 친구를 데려왔다니... 이건 또 무슨 망신인지...
에휴... 정말이지 맥이 않이 빠질 수 없었다. 나의 찌그러진 깡통 속에 젓가락 수십게 집어넣고 흔드는 것 같은 요란한 고음의 목소리를 아들의 친구가 밖에서 모두 듣고 있었다니 막막했다. 그리고 잠깐 동안 만감이 교차했다.
‘학원을 보내? 말어? 이왕 벌인 일, 확실하게 하고 넘어가야 정신을 차리지... 친구녀석 먼저 보내고 학원 하루 빠트려???....’
몇 초 동안 입을 봉하고 있던 나, 아들 향해 도끼 눈을 하고 입을 열었다.
“다음에는 네 입으로 말한 그 잘못들로 혼나는 일 없어야 해. 얼른 늦었으니까 자전거 타고 학원 다녀와.”
“... 네...엄마 다녀오겠습니다.”
<여자는 약하다, 허나 어머니는 강하다.> 이말 도 맞지만 어머니는 자식 앞에 약한 존재다.
아빈이가 학원으로 가고 집엔 다시 눈물을 질질 짜고 있던 아영이와 나만 남았다. 아영이가 입고 있는 예쁜 드레스가 눈물로 군데군데 얼룩져있었다.
“오늘부터 열심히 노력할 거지?”
“네...”
한결 부드러워진 내 목소리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아영이는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아휴... 가엽은 것, 이 어린 것을 학교에 보내 놓고 뭘 기대하는 거지...?’
좀 전에 했던 나의 모든 언행이 후회되었다. 울고 있는 아영이를 보듬어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참았다. 그리고 받아쓰기 볼 책을 꺼내서 읽고 써보라고 했다.
“난, 절대로 엄마처럼 내 아이들에게 공부해라 하고 닦달하지 않을 거야.”
한창 사춘기때 내가 엄마에게 했던 말이다. 늘, 공부해라, 공부해라... 노래를 부르는 엄마가 얼마나 싫던지.
그랬던 내가 나의 엄마보다 더 많은 공부를 내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녀석들도 속으로 서서히 엄마에게 반감이 생기겠지. ‘공부가 세상에 전부냐’ 하고...
그런 녀석들이 훗날 제 자식들에게 공부에 대해서 훈계하겠지. 시집살이 호되게 당한 며느리의 시집살이가 더 무섭다고...
엄마의 건망증을 닮은 건지. 녀석들은 나에게 혼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잊어버린다. 그리고 다시, “엄마~~~” 하고 달겨든다. 이래서 식군가보다.
오늘 학교에서 돌아 온 아영이가 가방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 놓았다.
“엄마, 내가 학교에서 스파게티 싸웠다? 가위바위보해서 내가 이겼어.”
“뭐? 그걸 왜 싸와?”
“급식 당번들은 맛있는 것 있으면 싸갈 수 있는데 친구들도 싸가겠다고 하니까 선생님이 가위바위보하라고 했어. 근데 내가 이겼어.”
신나서 얘기하는 아영이가 위생봉투 두 뭉치를 꺼내 들었다. 소스와 스파게티 면이었다. 수줍어서 말도 잘 못하는 것이 그것을 갖고 오려고 얼마나 용기를 냈을지...왜 그런 용기를 냈을지... 궁금 + 궁금...
“점심 적게 먹었어? 그래서 더 먹고 싶어서 싸온 거야?”
도무지 생각지도 못한 시츄레이션 앞에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나 많이 먹었어. 엄마도 스파게티 좋아하잖아. 엄마 줄려고 싸왔지.”
자랑스럽게 말하던 아영이가 식탁 위에 그것을 올려놓고 피아노 학원에 다녀오겠다며 다시 신발을 신었다. 그리고 문 앞에서,
“엄마, 전자렌지에다 뜨겁게 해서 먹어. 아니, 드세요. 히히~”
하고 밖으로 나갔다.
엄마를 먹이겠다고 욕심으로 아영이는 분명 대단한 용기를 냈을 것이다.
전날의 일이 더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못한다고 구박하는 엄마가 뭐가 좋다고...
아하~ 나는 왜, “공부는 못해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하는 너그러운 엄마가 못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