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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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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BY 일상 속에서 2006-05-23

소원 성취부적이라네요. 모두들 소원들 빌고 제대로 이루어 보자구요. ^^

 

“할머니, 옛날 얘기 해줘.”


외할머니와 함께 살 때의 일이 생각난다. 난 무척 옛날 얘기를 좋아했었다. 그래서 설거지 하는 할머니의 곁에서, 또는 빨래를 하실 때, 이불 호청에 풀을 먹일 때, 밭에서 김을 매실 때면 졸졸졸 따라 다시며 옛날 얘기 타령을 해대곤 했다. 귀찮게 졸라대는 손녀딸에게 할머니는 오죽했으면,


“이년아, 옛날 얘기 좋아하면 지지리도 못 산다더라.” 하셨다.


내가 지금 못살고 있는 것이 그때 할머니 말씀대로 옛날 얘기를 너무 좋아해서는 아닌지... 이왕 엎어진 물, 어쩔 수 없지...


할머니께 들었던 옛 이야기는 참으로 많다. 할머니의 집안에는 어째 그리 귀신과 도깨비가 출몰을 많이 했는지 모른다.

할머니의 얘기는 늘 실화가 바탕이라 하셨으니,


“할머니, 그 얘기 정말 이야?” 할 적시면,


“믿기 싫음 관두고, 믿거나 말거나여.” 하시며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는 손녀딸의 곁에서 자리를 뜨시던 할머니.


많은 얘기들 중에 지금까지 제일 기억에 남는 얘기가 있다. [업]이야기 인데,


할머니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경험하신 일이란다.


어느 날, 읍내에서 일을 마치고 고개를 넘어가는데 뒤가 이상하더란다. 누군가가 따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나? 그래서 뒤 돌아 보셨단다. 그 곳에 뱀 한 마리가 따라오고 있었단다. 사람의 마음이 뱀을 보면 섬뜩할 터인데, 할아버지는 그런 마음이 없으셨단다.


‘고놈, 참...’


귀엽다 생각하시며 가시던 길을 가고 있는데 뱀이 계속 따라 오더란 말씀.

이상해서 가다서고 가다서기를 반복할라치면 묘하게시리 뱀도 따라오던 것을 멈춰서 있더란 거다.


할머니의 말씀을 빌려 쓰자면, 그 할아버지께서 워낙 영리하고 배운 것이 많으신 깨친 분이라 ‘ 올타꾸나, 이것이 그 업이란 것이로구나~’ 하시며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향하셨다는 말씀.


집에 다 도착해서는,


“이리 오너라~” 하고 대문 앞에서 식구들을 불러 모으셨단다. 대문이 활짝 열린 문 안으로 할아버지께서 들어오셔서는,


“업님이 들어오시니, 어여 곳간 문을 활짝 열어놓거라.” 하셨고 집안 큰 어른 말씀대로 누구하나 토다는 사람도 없이 곳간 문을 열어 놓으니 신기하게도 뱀이 그 안으로 스르르르... 들어가더란다.


그 때부터 집안의 재산이 불같이 일어나서 마을 제일의 갑부가 되었다는데, 그 할아버지의 명이 다하여 돌아가셔서 묘자리를 만들어 놓고 첫 번째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올라가보니 묘 옆에 뱀 한 마리가 죽어 있는데 그 뱀의 모양새가 희한한 것이 두 귀가 쫑긋 서 있더란 말씀이지... 할머니 말씀으론 그 업은 용이 되기 전의 이무기였단다.


말씀을 다 하신 할머니는 어느 이야기를 막론하고 착한 사람은 그래서 복을 받고 죄를 지은 사람은 그래서 벌을 받았다는 인과응보의 지침서를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내가 아는 최고의 언변술사였다. 똑같은 얘기도 재방송 할 때마다 매번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래서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그 얘기 속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얘기 속 주인공처럼 복 받을 짓을 많이 하고 싶었고 벌 받은 사람처럼 살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


그렇게 순진무구하던 내가 중학 물을 먹고부터 ‘결코, 난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라, 이 나라를 짊어지고 갈 자랑스런 대한의 청소년이란 말입니다.’하고 부르짖기 시작할 때부터 할머니의 얘기가 내겐 너무도 시시껄렁한 이야기로 전락되고 말았다.


거짓말하면 지옥에 떨어지고 입을 바늘로 꿰멘다더라, 나쁜 짓을 하면 기름 가마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게 되지, 하는 할머니의 말이 여간 유치한 것이 아니었다.


‘지옥이 어디 있어?’

‘호랑이가 어떻게 담배를 피워? 거짓말도 그렇게 유치할 수가...’

‘요즘은 착하면 바보라더라.’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지만 더 이상 할머니의 얘기는 신빙성이 없었다.


벌써 오래 전 일이지만 눈 감고 잠이 들면 가끔 할머니와 살던 집이 떠오른다. 통나무로 깎아 만든 커다란 마루며 두 명은 족히 잘 수 있는 다락방, 구수한 누룽지, 마당 한 가운데 아담하게 만든 화단, 노란 국화꽃, 뒤뜰에 텃밭, 나를 매번 경악케 했던 푸세식 화장실, 뒤뜰과 붙어있는 동산... 도토리나무, 도토리묵, 산나물...


그러고 보니 어느 날은 정말 집 마당으로 뱀이 들어오더니 부엌 문틀 바닥에 뚫린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연두색 뱀... 그 섬찟한 것을  보고 무섭다고 난리치는 나를 붙잡고,


‘할미가 했던 말 있잖어. 업님, 업님이 들어오신거여. 전라도로 내려가서 고기잡는 니 에비 돈 많이 벌라나 보다.’


하고 다독거리셨다.


그 말에 위안을 삼았던 순진한 손녀딸이었건만...

세상에 무서운 것 없이 날뛰던 시절이 지나가고 이제 나도 어느덧 중년의 문턱과 가까워졌다.


내 할머니께 들었던 옛날이야기를 나 또한 내 아들과 딸에게 이야기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의 아이들은 만화를 봐도 로봇이나 요술을 부리는 예쁘장한 주인공들이 나오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내 얘기가 별로 먹혀들지 않는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아주 어릴 적 외에 믿지 않았던 지옥과 저승과 귀신의 실체가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있을지도 모른 다른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내가 다시 순진무구한 깨끗한 마음으로 정화 되었나?


아무튼,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라는 말이 흘려 들리지는 않는다는 거다.


“너희들, 지옥은 정말 있는 거야. 거짓말 시키면 지옥에 떨어져서 바늘로 입을 꿰맨데.”


엄마 눈치 살살보며 잔머리 굴리려는 아이들 앞에서 내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말한 적이 있었다.


“엄마, 누가? 누가 꿰맨데?”


내 그 말에 아영이가 반문 한 적이 있다.


난 할머니께서 그 말씀을 하실 때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건만... 요즘 아이들 정말 영특하다. 어쨌든 받은 질문에 답을 찾아서 대충,


“저승사자가...” 했다. 여기서 끝나면 좋으련만.


“저승사자는 사자야? 사자가 거기선 바늘로 꼬매?”

“...저승사자는 사람이야. 옛날 선비들이 쓰는 갓이란 모자도 쓰고 검은 색 저고리도 입고...”

“엄마, 검은 색 저고리는 이쁘게 생겼겠다. 그런데 그 아저씨가 입을 잡고 꼬매?”

“시끄러워~!!!!!!! 아무튼, 거짓말은 나쁜거야.”


점점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난 점점 본전도 못 찾을 때가 많다.


할머니가 살아계셨다면 물어 봤을 텐데...


“할머니 거짓말하면 저승사자가 입 꿰매는 것 맞지?” 하고...


할머니 하늘나라에서 이 손녀딸 살아가고 있는 것 잘 보고 있지?

보고 싶어. 동생들 꿈에는 가끔 나타난다면서 이 못난 손녀딸은 보기 싫어서 나타나지 않나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