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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리꽃 닮은 세째 이모


BY 도영 2006-05-21

내게는 다섯분의 이모가 있었는데

그 다섯분들중 엄마를 비롯한 큰 이모와 셋째 이모는

몇해전에 고인이 되셨다.

다섯분의 이모들은 한결같이 대단한 미를 타고 나셔서

이모부들이 결혼식날 싱글벙글 표정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했다

다섯분의 이모중 고인이 되신 세째 이모와 지금 서울에 사시는 네째 이모가

자타가 인정 하는 절세 미인이였다.

지금 살아 계시면 60대 중반이 되셨을 세째 이모는 고전적인 미인이셨고

올해 꼭 육십이라는 네째 이모는 그당시 현대적인 미인이셨다.

오늘은  몇해전 고인이 되신 고전적 미인인 세째이모 이야기를 할까한다.

세째 이모의 분위기는

쌀 뜬물 같은 뽀얀 피부가 달빛에 비치는 배꽃를 닮았으며

갸름한 얼굴에 상가플은 없지만 얇고 선한 눈매가 상대를 편안하게 해 주었고

귀티나는 오똑한  코는 마치 상아뿔 같았으며 이모가 우리집에 와서

언니인 내 엄마한테 뭐라뭐라 할때마다 이모의 의 입술은

바람에 흔들리는 진달래 꽃잎 같았다.

당시로서는 작은 키가 아닌 164정도의 늘씬한 키에

몸매 또한 뼈대가 가늘면서 적당히 살이붙어 거적을 입혀놓아도

그것조차도 화려한 의상이 될만큼 아름다운 이모는

외모에 못지않게 마음씨는 고운 명주실을 만지는듯 보드랍고 고왔었다

내게...

세째 이모는 암울했던 내 유년시절에 유일한 칼라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가난 했기에 궁핍 하고 궁핍 해서 집안 분위기가

늘 칙칙했던 내 유년 시절은 블랙 커튼을 친듯이 어두웠었다

그 블랙 커튼을 젓치고 들어오던 주홍점이  바로 세째 이모였는데

그 이모의 등장은 엄마의 입가에 엷은 미소를 번지게하는 파워가 있었다

이모가 다녀간 뒤에 이모가 가져온 보따리 안에는 먹을거며 세련된 옷들이

들어 있었는데 나는 그 보따리가 마치  동화책 보물선에 나오는 보물상자 같았다

몇년전 등산을 하다가 하산길에 보았던 참나리꽃을 보고

\"어서 보았더라 저 이미지..아 그렇지 이쁜 세째 이모를 닮았네...\"

그리고는 하산길에 멈춰서서  유년시절 잊혀졌던 주홍점을 잠시 떠올렸다.

주홍색의 추억을 선사받던 그날 우리집 분위기는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채

내 엄마는 아버지의 무능력으로 신경성 만성 위장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런 엄마에게 변또 속도 이보다는 편할거라며 엄마의 가슴을

후벼파고는 휑하니  나간뒤 거칠게 닫기는 대문소리에

나는 입을 앙 다물고 불안감을 감추고 있었다

그때 주홍점 하나가 블랙 커튼을 젖히고 들어온 기억..

\"언니...나왔어.\"정스런 목소리에  나가보니

결이 곱고 천상 여자인 이모가 양손에 먹을거리들을  잔뜩 들고 서계셨다.

그날 이모는 윤기나는 까만 머리를 우아하게 틀어올리고

주홍색 바탕에 까만점이 촘촘히 박힌 촉 쳐지는 저지 원피스를 입고

길고 흰목에는 주홍색 원피스와 같은 스카프를 두르고 오셨었다

주홍 스카프의 향내인지 분향 인지는 모르지만  이모의 내음은.

은은한 풀향 같기도 했고 섹시한 장미향 같기도 했다

세째 이모는 같은 원주에서 살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원체 정이 많은 여인네라

어렵게 사는 우리집은 이모의 도움을 너무도 많이 받고 살았었다.

이모의 베품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끝이 없었으며  어린 마음에

나는 내 또래의 이종사촌들이 그렇게 부러울수가 없었다

군인에 아내로서 적은 봉급으로 세 아이를 키우는것도

넉넉지가 않았을텐데..이모는 우리가 절망을 느낄때마다 블랙 커튼을 젖히고

우아한 모습으로 조용히 오셔서 칼라의 추억을 심어준 분이였다 아주 오래도록...

그런 고운 이모가 어느날 이모부의 조기 퇴직으로 서울로 이사를 가게되었다며

우리집에 오셔서 나직한 목소리로 내 엄마에게 설명을 하는데

진달래 꽃잎 같은 이모의 입술은 그날따라 처연해 보일수가 없었다

\"언니.어찌된건지...퇴직금이 거의 없데요..그 퇴직금을 어디다 썼는지 몰라..\"

하루는 엄마와 이모가 나누던 대화를 어렴풋이 들었는데..

엄마는 이모부의 금적적 문제가 여자 문제가 아니냐며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이모의 성품의 걸맞게 이모부 또한 덕을 갗춘 양반이라서

살다보니 주위에 어려운 사람한테 어쩔수 없이 돈을 떼였을거라며

엄마는 이모를 위로했었고 심성 고운 이모 답게 엄마의 위로를 받아들였다

세째 이모는 이모부의 조기 퇴직으로 빈손으로 서울로 이사를 가시고

그리고 얼마후 이모는 시장에서 순대와 떡볶이 장사를 한다고 했다

이종사촌들도 나처럼 어렸기에 이모부가 취직을 했어도

서울 생활이 유지가 안됐는지 이모는 생전 해보지 않은 장사를 한다했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런 처제를 보며.

\"그 인물에 시장통에서 순대를 팔고 떡볶기를 판단말야..허.참.\"

아버지는 마음씨 고운 처제의 안스러움을 그렇게 표현 하셨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솜씨 좋은 이모는 시장통에서 한식당으로 자리를 옮겨서

솔찮은  돈을 버셔서 넓은 아파트도 사고

이모부의 사업자금도 대었지만 그때마다 이모부는 금적적인 투명성이 없다 했다.

이모의 식당을 찾는 손님들은 이모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내고는 했는데

내가 이모의 가게에서 카운터를 보름 남짓 볼때

\"김지미를 능가하는 미모를 여기서 보다니요..\"

\"고전적이고 정숙한 이미지가 정갈한 음식에 베어있군요..\"

오는 사람마다 계산을 하며 정중하게 이모의 외모를 평하였는데

나는 고생의 찌들어 우울한 내 엄마보다 이모의 딸이기를 바랬었다.

그런 이모가 몆년전 혈액암으로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저녁장을 보고 나오다가 마트 주차장에서

저녁장 본 봉투를 툭 떨어 트렸다.

주홍색의 추억을 심어주었던 그 고마운 이모의 죽음 앞에서.눈만 껌뻑이며

발걸음이 떼어지지를 않았다

주차장에서 이모의 별세소식은 차가운 물이 들어있는

분무기로 내가슴을  향해 뿌려대는듯 서늘한 슬픔으로 다가와서

가슴 언저리에 잊고 있엇던 이모의 기억들이 상념의 늪속에서 꾸물럭 대고 있었다

상념인지 회상인지 그 늪으로  빠져들어가면서  어린시절 이모가 심어 주었던

고운 추억들의 파편들이 조각조각 모아지기 시작 했다.

\"엄마가 힘들어할때 이모가 엄마 곁에 있어서 얼마나 든든했는지 몰라요\"

\"칙칙했던 유년시절에 이모가 있어 칼라의 화려한 추억도 있었지요\"

\"흰 곱창 블라우스와 쑥색 주름치마 얼마나 잘 입었는지 모르시지요.\"

\"이모가 갔다주신 콩기름에 지진 노란 두부의 고소함이 아직도 남아있어요\"

왜 진작 감사하다는 표현을 안했는지 ..

이모의 죽음앞에서 뒤늦은 후회로 주차장은 뿌옇게 안개가 끼여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세째 이모 이야기는 종종 우리 형제들 입에 올랐는데

지난번 친정 갔을적에 아버지한테 이모부의 안부를 물었다.

\"이모부는 이모 없이 혼자 어떻게 사신데요?\"

나의 물음의 아버지는 특유의 강원도 톤으로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으셨다.

\"허어`~혼자살긴..여자하고 살아.. 여자..\"

\"그럼 ..재혼요?\"

\"재혼은..여자가 있었데..아주 오래전에..같은 회사 사무실에 아가씨랑 살림 차려서 중3짜리 애도 낳고 살았데..니 이모 세상 뜨기전에 병문안 갔더니 니 이모가 그러더라..그 망할..험..\"

\"형부 사실 저사람 그랬어요...그동안 사업 자금이다 뭐다 가져간 이유가 두집 살림 하느라 그랬던거 같아요..지금 사는 60평 아파트도 그쪽으로 간거 같아요..

아버지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였다.

세월을 짚고 거슬러 올라가보니 이모가 시장통에서

순대를 팔며 떡뽁기를 팔며 벌어 모을때 이모부는 젊은 여자하고

이모가 고생하며 번돈으로

사랑을?하며 새 아들을 키우면서 살았다는 결론이였다.

이모는 그 가슴 아프다 못해 쓰라린 사실을 혼자 간직한채 사시다가

큰 형부인 내 친정 아버지한테 유언 처럼 밝히고 가셨다 했다.

그리고 며칠전 세째 이모와 미모를 나란히 했던 네째 이모를

서울 도봉산 입구에서 해후를 했다

이런 기막힌 사실을  나보다 늦게 알았던 이모는 나는 그런 사실을 모르는줄 알고 

나를보자마자 얼마전 이모부의 사생활을 듣고는 기함을 했다했다

이모가 모르고 세상을 뜨셔서 다행이라며 그 심성좋은 이모가 사실을 알았으며

눈을 제대로 감았겠냐며 모르게 간게 다행이라 하는 말끝에 나는 이모부의 인격을

깔아 뭉개고 싶은 나머지 아버지한테 들은 말을 고대로 전했다

\"이모..세째 이모 다 알고 있었데요..\"

\"뭐?이모가 죽기전에 알았다구.?\"

\"네..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며칠전 병문안 가셨더니 고백 하시더래요..\"

네째 이모는 내말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그래서 그 형부가 니그 이모 6개월 선고 받고 투병할때 귀찮아했구나...의무적이라도아픈 이모는 지켜야하고 마음은 딴데가 있으니 귀찮은 표정이 역력 하더라구 ..형부중에 그래도 제일 덕망 있는줄 알았는데 이렇게 뒷통수를 치다니..\"

속 깊은 언니가 ...결 고운 언니가..혼자 가슴앓이를 했다며 원통 절통해 하셨다.

나는 뒷 통수친 이모부를 만나서 묻고 싶다.

왜 그랬냐고?

이모가 시장통에서 부터 시작 하여 일군 재산을 지능적으로 빼내어 가셔서

행복 하시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