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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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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버지


BY 아리영 2006-05-16

어느새 잔인한 4월

마지막날도 저녁이 다가온다.

 

내일 모레가 친정아버지 기일이다.

가족들이 모여 산소에 다녀왔다.

벌써 20년이 넘었네.

아버지가 운명을 달리한 날이.

세월은 이렇게 속절없이 흘러가고.

 

나는 어느덧 과거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가는데.

급작스런 아버지의 죽음.

대학 2학년

아카시아 향기가 천지에 가득하던 그날.

5월의 신록 아래서

난 대학생활을 맘껏 누리며

행복해 하고 있었다.

당시 아버지는 시내 동성로에서 가게를 하고 계셨는데

더러 일이 많으신 날은 집에 오시지 않으셨다.

그전날 저녁.

나는 아버지께 가서 함께 아이스크림, 빵빠레를 사먹고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 지금까지 난 단한번도

아버지 생각 때문에

그 아이스크림을 먹은 적이 없다.

참 우습게도.

그러나 그 아이스크림만 보면 그날의 기억 때문에

가슴이 너무 시렸다.

아무런 느낌 없이 집에 왔고

다음날 아무 생각 없이 학교로 갔었다.

나는 당시

대학 신문사 기자로서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신문사로 수업이 끝나고 갔더니

친구가 빨리 아버지에게 가보라고 했다.

다른 말은 전혀 없이.

얼굴에서 심상치 않음을 봤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은 추호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불길한 생각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차가운 시신으로 누워있는 아버지 옆에서

엄마는 오열을 터뜨리고 계셨고

나도 쓰러지고 말았다.

정말 너무 아무런 준비 없이 맞는 죽음이었다.

아..죽음이란 정말 준비가 필요한데.

그래서 지금도 난 병상에서 돌아가시는 분이 제일 부럽다

가족이 준비할 시간이 있지 않은가.

난 두분다 준비없이 보내고 말았던 것을.

 

맏딸이 고작 대학생이고

막내동생은 중학생.

주부였던 엄마.

지금 생각해도 참 막막했던 형편이었다.

다행히 아버지는 우리가 먹고 살 정도의 재산은 두고 가셨는데

제산이란 것도 참 부질없었다.

아빠의 친구란 분에 의해서

우리는 고스란히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때 내가 좀 더 세상을 알았더라면

그렇게까지 되지 않았을텐데.

아빠, 엄마의 착한 딸로

아무런 불편없이 어려움 없이 자란 나는

너무 아무것도 몰랐다.

 

그 나이에 무엇을 알았을것인가.

 

그렇게 아버지를 아카시아 향기 속으로 보내고

난 해마다 5월의 신록이 겁난다.

꽃향기가 무섭다.

난 향수를 즐기지 않는다.

향이 사라지듯이

사랑도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사랑도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다.

아버지는

우리를 정말 사랑해주셨다.

이세상 모든 아버지가 다 그러하겠지만

나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정말 남다르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만큼은

내가 요리를 처음 배운 것도 아버지다, 엄마가 아니고.

함께 영화를 처음 본 것도.

함께 술을 처음 한잔 마신 것도.

아버지와 나는 연인처럼, 친구처럼,

별난 부녀지간으로 사랑했다.

한때 엄마는 나의 연적이었고

그래서 나의 사춘기는 엄마와의 갈등으로 점철되었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나를, 가족을 너무나 사랑하셨고

따뜻한 그 사랑이 한계에 이르러

마침내 더 줄 사랑이 없어 가신 것 같았다.

그럼 이 세상에 영원한 게 없다는 건가.

아무튼 아버지의 사랑은 그렇게

빠르게 날 떠나고

우리를 멀리한 채 가버렸다.

 

몇년후 만나게 된, 지금의 남편에게서 아버지를 발견하고

나는 결혼을 결심했던 것이다.

 

아버지.

지금은 누워서 말없는 아버지 산소 앞에서

콧등이 시큰해지고

눈시울만 뜨거워지는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가슴이 시리기만 한데.

부모란 그런 건가.

 

나도 내 아이들에게 그런 부모가 될 것인가.

 

사랑은 내리사랑이란다.

내 부모님이 날 사랑했듯이

나도 내 자식을 사랑하고

효도받기 보다는

내 아들의 아이들에게

내 아이가 사랑을 쏟는 것으로 만족하고

흐뭇해 해야하는.

 

사랑의 한계.

아껴가며 나눠줘야

우리 아이들이 또 다른 아이의 부모가 될 때까지

나도 이 세상에 있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