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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경이의 풋풋한 아름다움


BY 능소니 2006-05-15

우리집 앞 마당에는 한평 남짓한 텃밭이 있다.

작년에도 고추며, 상추, 파등을 심어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다.

올해에는 이상기온으로 추위도 늦게까지 있었고,

또 우리집 형편이 씨앗 하나 살 수 없는 지경까지 와서

5월이 훨씬 지난 여태까지 아무것도 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주말에 큰 맘을 먹고 밭을 갈고 풀을 뽑고는

한쪽에 시골에서 가져온 상추를 모종하고 새 씨앗을 뿌렸다.

풀을 뽑고 있는데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6살난 딸이,

\"엄마, 이건 뭐야?\"

하며 질경이 풀을 가리킨다.

\"응, 그건 질경이 풀이라고 해. 왜?\"

내 물음에 아이는 질경이 잎을 한참을 들여다본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열심히 보더니,

\"엄마, 이건 무슨 씨앗을 뿌려서 이렇게 난거야?

초록색이 너무 이쁘다. 나 이거 물 줘서 키울래.\"

\".........\"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혀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밭을 손보며 뽑아 버리려 했던 질경이 풀을,

우리 딸은 너무 예쁘다며 자신이 키우겠다고 한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아이의 마음으로 다시 풀을 바라봤다.

햇빛과 물을 흠뻑 먹고 연초록색으로 자라고 있는 질경이 풀은,

정말 내가 보기에도 쓰잘데기 없는 풀이라고 하기엔 너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연할때는 뜯어서 나물이라도 해 먹지만,

이제는 쇠서 나물도 못 해 먹고 그야말로 잡초일 뿐인데,

밭 한쪽에 소담스럽게 모여 피어있는 잎들이

마치 나를 보고 손짓하는 듯 했다.

아이는 질경이 풀에 이어 또 옆에 있는 냉이 꽃을 보고 소리를 지른다.

\"엄마, 이 꽃 무슨 꽃이야? 이쁘다. 우리 이것도 키우자.\"

또 민들레 꽃이 홀씨로 변한 것은 입으로 불면서 신기해 했다.

나는 그런 아이에게 차마,

\"이것들은 밭에 있으면 작물의 생장을 방해하니까 뽑아버려야 돼.\"

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3살짜리 막둥이도 언니 옆에 앉아서

제 언니가 하는대로 질경이를 쓰다듬고 냉이꽃을 만지고

민들레 홀씨를 불었다.

나는 마당 한구석에 굴러 다니고 있는 화분을 가져다가

조심스럽게 질경이와 냉이를 떠서 옮겨 심었다.

이 잡초들이 나에게는 한낱 쓸모없는 것일지라도,

우리 아이의 감성과 함께 커나갈걸 생각해서 그냥 뽑아 버릴수 없었다.

화분에 옮겨 심은 풀들을 보며,

\"이제 이건 우리 딸 거니까 열심히 물 줘서 키워야 해. 알았지?\"

하고 자기 소유라는 걸 알려줬더니 아이는 너무 기뻐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그제야 나는

호미로 남은 밭을 신나게 맬 수 있었다.

잡초 하나조차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여유를,

내 아이에게서 배우고 나니, 길 가다가 마주치게 되는

들꽃들이 그렇게 예쁘고 경이로울수가 없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언제나 그 자리에 피어나고 자라나는 들풀들처럼,

내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하고

언제나 이 자리에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런 마음을 잃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