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부터 난리가 났다. 옆집에서... 여자의 발악 소리뿐, 남자의 소리는 없다.
아침 9시도 채 안된 시간.
요즘, 손님들이 다녀가고 친구들과의 만남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집안을 들락거린 나.
어제 집에 들어가려는 내게 옆집 아줌마가 차 좀 마시러 오란다. 그래서 가방만 집에 들여놓고 옆집으로 들어갔다.
“미안해요. 먼저 빌려준 30,000만원 줘야 하는데...아직 지갑에서 쓰지도 않고 넣어둔 체로 있어요. 하지만 돈이 한 푼도 없으면 안 되니까 갖고 있어요.”
아줌마가 음료 녹차를 컵에 따라 놓기가 무섭게 자신의 지갑까지 들어내 보여주며 말했다. 사실 난 돌려받을 마음도 없다. 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하고 싶어도 아줌마의 자존심이 상할까봐 그러지도 못했다.
“천천히 주세요. 너무 그러니까 내가 더 불편하네요. 요즘 날씨 너무 덥죠?”
말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어서 꺼낸 말이다. 아줌마는 졸려서 찡얼대는 10개월이 코앞인 막내딸을 포대기로 업더니 다시 앞으로 돌려 안았다. 그리곤 한쪽 젖가슴을 내놓고 아기에게 물렸다.
“저 그만 가봐야겠네요. 힘들 텐데 침대에 누워서 젖 물려요. 그리고 함께 좀 주무세요.”
나는 서서 아이에게 젖 물리고 있는 그 모습이 안쓰러워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니요. 얘는 누워서 안자요. 재울 때마다 이러고 재우는 걸요. 가지마세요.”
뭔가 할 말이 더 있는 듯 나를 잡아 세웠다. 그 집의 두 딸과 나의 딸이 시끌벅쩍 지들끼리 뭐하고들 노는지 난리도 아니었다.
그 시간, 학교에서 일찍 돌아온 아들은 학원 갈 시간이 좀 남아서 컴퓨터를 켜놓고 숙제를 한다고 했는데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난 아줌마의 말에 다시 자리에 앉고 말았다.
나처럼 짬짬이 밖으로 나돌지도 못하고 집에서 매일 아이들과 씨름하는 아줌마에게 잠시 말동무가 되어 주고 싶은 마음에...
정리되지 않고 어수선한 집안은 아줌마의 마음이려니...나 또한 마음이 시끄러우면 코딱지보다 조금 더 큰, 작은 집안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을 때가 많으니까... 이해한다.
한 깔끔 떠는 척하는 나.
아줌마가 내민 컵에 아이들의 손자국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그리고 내용물에는 하얀 무언가가 떠다녔다. 그것을 받아 마셨다. 그런 내게 한 잔을 더 준다시길래 배가 부르다고 사양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친구들과 부대찌개로 배를 잔뜩 채우고도 차까지 후식으로 마시고 바로 왔으니...
아줌마가 외출복 차림으로 앉아 있는 나를 보고(검은 롱 바지의 옆 부분에 구멍이 솔솔 뚫린 은빛망사로 덧댄다.) 섹시하다고 말했다,
“제가 또 한 섹시하잖아요. 누가 뭐라던 말든...조만간에 미니스커트라도 입을까 하는데 다들 눈이 피곤하겠죠? 하하하하....”
“깔깔깔... 젊으니까 그런 것 입을 용기도 있는 거예요.”
나의 푼수에 장단 맞춰 주던 아줌마가 자신의 큰 딸을 턱으로 가리켰다.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았던 건데... 제, 지아빠랑 성이 틀리잖아요. 내가 두 번 째 결혼을 했어요. 전남편은 알콜 중독으로 세상을 떠나고 지금 만난 남편하고는 6년 전에 재혼했어요. 남편은 총각이었고... 나를 얼마나 따라다니던지... 쉽지 않은 결혼이었어요.”
“아... 그렇군요. 몰랐어요. 아저씨랑 아이랑 닮았던데...”
“다들 닮았다고 해요. 다행이죠.”
전기세며 가스비 같은 공과금이 3달치가 밀렸다는 아줌마는 당장 돈을 내지 않으면 모든 것이 오늘 중으로 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과금이 70만원이 넘는단다. 아.............
아저씨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는 아줌마의 얘기는 참으로 길고도 길었다. 암담한 얘기들...
“어떡해요. 전기가 끊어지면...”
“촛불 켜고 살아야지요. 후라쉬도 있고...”
“그럼 밥은요?”
“가스렌즈에 해먹죠.”
“가스도 끊어진다면서요.”
“아...맞다...... 휴대용 버너에 해 먹어야겠네요.”
“그럼 되겠네요... 다행이에요. 그렇게 마음을 비울 수가 있어서.”
사람의 간사한 마음을 알지만... 그래서 참을 수 있을 것 같던 것들이 갑자기 숨 막히게 내 목을 조여 오는 것 같아서 미치기 직전의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어쨌든 당장의 마음은 자포자기의 심정일 지라도 느긋해져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졌다.
무거운 발걸음이 되어 나는 나의 터로 돌아왔다. 부디 옆집 아저씨가 돈을 약속대로 갖다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조차 편하지 못한 마음이었다.
저녁 7시쯤 되었을까? 옆집 아저씨가 들어왔다가 나가는지 옆집 아줌마가 따라 나오며 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 자리에 왜 자기가 돈을 갖고 가느냐고~!”
“내가 계약자야.”
내 집 화장실 바로 앞에서 하는 얘기라 나는 볼 일도 조심스럽게 봐야만 했다. 나오려던 오줌이 다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쫄쫄쫄쫄.... 찝찝했다. 하지만, 둘의 내용 속에 돈 얘기가 오간 것을 보면 한시름을 놓아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하루 밤을 보낸 아침이었건만... 난리가 난 것이다.
사생활 침해자기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크게 들리는 아줌마의 말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열어 놓았던 창문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하지만...역부족이었다.
화통한 그 목소리, 한산도 대첩에 이순신 장군의 “돌격하라~!”의 목소리도 무릎을 열 두 번은 더 꿇어야 할 것이다.
“너 그년이랑 살아라... 네가 꼴에 바람을 펴?....엉? 엉?... 이 날 이때껏 니가 나한테 해준 것이 뭐가 있어?!!!.......망신?... 동네 창피해?......”
발악하는 아줌마의 소리는 중간중간 절규가 되어 버렸다.
시끄러웠다. 짜증도 난다... 하지만... 진심으로 아줌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걱정 된다.
아저씨가 바람을 핀 것이 아니라 오해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원인 제공은 분명 했을 터이니, 바람이 사실이건 오해이건, 옆집 아줌마의 마음은 지금 삶이 지옥을 것이다. 가제는 분명 게 편이다....
1시간가량 떠들어 대던 아줌마의 목소리가 잠잠해졌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떤 심정이 되어 있을까? 가서 말벗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마저 들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도 필요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귀찮을 것이다.
이틀 전, 나 역시 술 한 병을 마시고 남편에게 전화로 객기를 부린 터였다.
남동생이 다녀간다고 해도 전화 한통 없던 것이 화가 나서... 면목이 없어서 일거라는 생각으로 이해 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나 역시 참을 수 있는 단계는 벗어 난지 오래였으니까.
그래서 저녁 8시가 넘은 시간 방문+창문을 꼭꼭 닫아 놓고 최대한 밖으로 내 목소리가 나갈 것을 미연에 방지를 했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서 난리를 쳤다.
옆에 사람들이 있다는 말에도 체면이 밥 먹여 주냐며 난리를 쳐댔다. 전화를 끊어 버리는 남편에게 여러 번 전화를 해서 왜 끊느냐고 지랄을 해댔다. 그리고는 내가 전화를 끊어 버렸다.
10분도 안돼서 남편이 들어왔다. 깜깜한 어둠 속, 거실바닥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남편이,
“많이 취했구나.”
하더니 화장실로 들어갔다. 소주 한 병에 취할 내가 아니었다. 술기운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간에 살짝 기별이 간 정도일 뿐이다.
매일 술 취해 들어오던 남편이 맨 정신에 들어와서 오랜 만에 술을 마신 마누라 때문에 겁(?)을 먹고 들어온 남편을 보니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 상을 차려놓고 아들 방으로 들어가서 누워 이내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설거지는 담겨져 있고 상도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나는 남편이 늦지 않게 아침상을 차려놓고 깨웠다. 그런데 닦고 나온 남편이 옷을 입더니 “밥 안 먹어.” 하고 나가 버렸다.
에휴... 조금만, 아주 조금만 찔렸다.
그날 낮,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통장으로 돈이 들어 왔을 테니 인터넷 뱅킹으로 확인하고 200만원만 찾아서 당장 급한 것만 막으란다. 나머지는 며칠 있다가 해준다고...
작년 12월에 몇 개월 만에 300만원 준 것이 마지막 생활비였다. 그리고 5개월 만에 200만원을 준단다. 한 달에 한번 주는 생활비도 아니고... 200만원, 사막 한가운데 물 한바가지 붇는 격이다. 흔적도 남지 않을 작은 금액이다. 며칠이 정말 며칠이 될지, 아니면 또 다시 몇 달이 될지 모르지만, 남편 말대로 나는 6백40만원 중에 200만원만 찾았다.
그리고 문자를 날렸다.
‘돈 고마워. 잘 쓸게.’
하나도 없던 돈인데 그 정도만으로도 감사하기로 했다. 봄의 탓인지, 고갈된 돈 탓인지... 짜증이 났던 나의 마음에 다시금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옆집 아줌마나, 앞집 아줌마나, 아래층, 위층, 건너 집이나...모두 들 나처럼 이러고 살 것이다. 모든 것이 용서가 되는 날이 있다가도 밴댕이 속알딱지처럼 좁은 소견이 되어 아무것도 용서 되지 않을 때가 또 있을 것이다.
참으로 간사한 인간들... 사는 것이 전쟁이 아닐 수 없다. 처절하고도 치열하다. 하지만 오늘 나에 삶의 전쟁은 잠시 휴전상태로... 탈 없이 이상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