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살고부터 남편과 나는 함께 조깅을 한다. 부부간의 \'친목도모\'가 침실에서만 이루어지는 시기는 이미 지나고 보니 뭔가 함께 할 수 있는, 허나 돈드는 일이 아닌 일이 필요해서이다.
조깅에 운동화 한켤레 딱 필요하다. 조깅길에 따라나선 첫날 난 한국서 산 용도가 모호한 흰색 운동화를 신고 나갔었다. 솔직히
나로서는 정말 그 운동화가 \'운동화\'라는 것만 알뿐 무슨 종목에 신는 운동화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걸 신고 등산도 가고
뜀박질도 하고 수퍼도 가고 밑바닥을 씻어서 에어로빅 학원에서 신기도 했었다.
근데 조깅을 시작한 후 남편이 내 운동화를 보더니 조깅을 하려면 그런 걸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테니스를 할땐 테니스화, 농구를
할땐 농구화, 에어로빅을 할땐 에어로빅화, 그런고로 조깅을 할땐 조깅화. 신발은 용도에 맞게, 그렇지 않으면 척추와 무릎뿐
아니라 뇌에까지 충격을 줄 수가 있다나.
나원 참, 조깅이든 테니스든 농구든 뜀박질은 다 뜀박질인데 가려서 신을 게 뭐냐고, 우리 아버지는 10살때부터 까만고무신 신고
사시사철 하루 20리길을 뛰어서 학교다녔어도 66평생 이날이때까지 잔병치레조차 없는데. 포시랍기는...
남편은 이런 나의 의견을 묵살하고 10만원에 육박하는 메이커 조깅화를 내게 사다신겼다.
용도에 맞게 신발을 사야한다면 도대체 현대인이 사야하는 신발의 종류는 몇켤레일까. 신발은 그렇다 치자. 그외에도 우리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물건들이 생활필수품이라는 이름하에 없어서는 안될 물건으로 자리잡았는지를 보면 놀랄만하다. 특히
\'문명화\'되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유럽에서는 더더군다나. .
독일사람들은 아무리 작은 평수 아파트에 살더라도 지하실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다. 엄청나게 많이 사다 모든 생활필수품들, 그러나
딱 생활에 필요하지는 않는 물건들을 사다가 재놓기 위해서이다. 그런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다음편인 꽃접시 이야기에서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