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갔다하면 꼭, 술 한잔 걸치고 들어오는 남편에게 6시는 벌건 대낮 격이다. 그중 토요일은 휴일인 일요일을 앞 둔 날이기에 술자리를 아주 끝장을 내고야 들어오니 일찍 들어와야 밤 12시다.
매일 먹는 술. 150,000원하는 집세도 내지 못하고 지난 지가 며칠이건만, 그 놈의 술은 매일 어디서 그렇게 얻어먹고 오는 건지. 한 번도 자기 돈으로 술 먹은 적이 없단다.
그 말을 믿어야 할지... 안 믿으면 혈압이 수직상승할테니 믿어 준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더라도 나 자신을 위해서 믿어준다.
“아빈 아빠, 내 카드 값 못 낸 것이 한 달이 지났어...공과금은 어떡해... 애들 교육비 나올 때 됐는데... 주인아주머니 눈치 보이더라...”
매일 얘기하면 먹혀들지 않을 테니 한 번에 모았다가 뱉어 대는 말들 앞에서 남편은,
“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봐, 내일 모레 줄게... 5일 날, 25일날... ”
이렇게 둘러대며 날 빚쟁이 취급한다. 양보 반, 포기 반, 배려 반으로 하루하루 조용히 넘어가려 하지만...결코 쉽지 않다. 주부 사표 하루 이틀 내고 싶은 것이 아니다.
지난 토요일,
6시 조금 넘은 시간에, 반찬을 뭐해서 먹어야 잘해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에 연구를 하고 있을때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 돈까스 먹을래? ”
인심 쓰듯 하는 남편의 말에,
‘ 이놈의 돈까스... 그것 사줄 돈 있으면 반찬 사게 돈으로나 주지.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 하고 치받고 싶었지만...
누가 그랬다. 남편이 뭐 먹자고 하면, 마냥 좋아서 따라 다녀야지, 그렇지 않고 돈이 어쩌고저쩌고 하다보면 그나마도 다음부터 없다나?
그래서 참았다.
“응, 돈까스 먹고 싶어. 애들도 좋아 하겠다.”
“그럼, 거기로 나와.”
간단한 대화다.
애들에게 아빠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아들의 반응은 시큰둥...
“엄마, 아빠는 왜 모처럼 외식을 시켜주면 돈까스에요? 갈비도 있고, 감자탕도 있고, 햄버거도 있고....”
“길다... 그럼 집에서 김치에다 밥 먹던가...”
\"엄마는... 그냥 해보는 소리죠. 제가 돈까스 얼마나 좋아하는데... 우리 먼저 가서 있어도 되죠?“
엄마에게 말해봐야 본전도 못 찾는 다는 것을 함께 산지 13년 된 녀석은 꿰뚫고야 말았다.
내가 연애시절 제일 좋아 하던 음식이 양식이었다.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칼질하는 모습이 멋스러워서... 그러고 보면 내게도 낭만적이던 때가 있던 것 같다. 그 시절이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연애시절, 남편은 나를 만나고 칼질이란 것을 처음 해본다고 부끄러운 듯, 얘기했었다. 우리의 연애담은 참으로 파란만장하다. 후에 나올 말들이기도 하다...
처음 레스토랑이란 곳을 함께 가던 날, 김치찌개, 돌솥비빔밥... 이런 것들만 좋아하던 남편은 비싼 돈 주고 시킨 음식이 달랑 걸죽한 국물 하나 나왔다고,
“뭡니까...이게... 이 국물이 그렇게 비싸요?”
“-_-;;; (눈에 콩깍지가 꼈기에 용서했지...아니면...) 그냥 먹으면 다음 것 나와요.”
다음이란 말에 미심쩍은 눈빛을 거두고 국물이라 불린 크림스프를 후루룩... 마시더니 느글거린다며 단무지 한 접시 그 자리서 뚝딱이었다.
이내 나온, 정식... 밥 조금, 돈까스 한 조각, 함박스테이크 한 조각, 새우튀김 한 마리, 김밥 두 조각, 빵 몇 개와 잼... 등이 담긴 그릇들을 한번보고 내 얼굴 한번보고... 몇 번 번갈아보더니 날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거다.
한국 사람이 밥과 김치를 먹어야지... 튀김 쪼가리 몇 개로 어떻게 배를 채우느냐는 무언의 불만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애인이 먹겠다는데 별 수 있나... 무시하고 맛나게 먹는 나를 보더니, 자신의 음식이 담긴 접시에 반찬으로 나온 김치 조금과 김치 국물을 쏟더니 케찹까지 뿌려서 쓱싹쓱싹... 비벼대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쪽 여러 번 팔리고도 남을 광경이었다. 다행이 칸막이가 있었기에... 한창 물오른 키스를 방해 받고 싶지 않아서 찾아 들어간 자리가 따른 용도로 명당이 되었다.
이랬던 남자다. 양식 먹고 나온 후면 꼭 소화 안되서 가스 활명수 찾아 약국을 누벼야 했던 남자가... 가뭄에 콩 나듯 외식 시켜 준다고 하면 꼭 돈까스다.
그것도 레스토랑이 아닌 기사식당에서...
언젠가 [체험! 삶의 현장 속으로]란 프로그램에서 서 재웅이 다녀갔다는 큰 기사식당은 돈까스가 5천원이다. 가격도 저렴하지만 양도 어머어마하게 많다. 하나 시키면 딸과 나 둘이서 먹으며 딱 좋다. 그리고 밥은 무제한 리필이 가능하다.
<그것이 알고 싶다.
기사 식당으로 돈까스 먹으러 가자는 남편의 속내가... 예전에 양식 좋아하던 마누라가 매일 된장국과 김치찌개에 물려 죽을까봐 간간히 기름칠 시켜주는 것인지, 아니면 값싸고 양 대따 많은 그 음식으로 배가 째지게 먹여 주려고 하는 것인지... 그것을 아시는 분은 **-***-****으로 제보 전화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남편의 “ 거기로 나와. ” 한마디에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간 식당. 문 앞에서 표정 제대로 관리하고 들어갔기에 내 입은 귀에 걸릴 듯 째진 채다. 지금이라도 탤런트를 해볼까 싶다...
“와~ 얼마나 돈까스가 고프던지... 역시 신랑 밖에 없어. 얘들아, 아빠 밖에 없지?”
말 끝남과 동시에 아들에게 협박성 짙은 눈길을 주었다.
“그... 그럼요... 역시... 우리 아빠 최고... 그치? 아영아?”
아들은 동생에게 눈을 돌리며 물었다. 하지만...
“난, 돈까스 정말 싫어. 아빠는 왜 매일 이것만 사줘?” 하는 거다.
아뿔싸... 딸을 붙잡고 협박하는 것을 잊다니... 말없이 따라주는 어린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오산이었다.
“으~음... 아영아, 그럼 넌 뭐가 먹고 싶은데? ”
뻘쭘해진 남편이 헛기침을 하더니 딸에게 물었다.
제발제발... 빌었다. 속으로...
“엄마 돈 좀 많이 갖다 주면 엄마가 알아서 사주지. 매일 김치에다가 콩나물하고 두부 먹는 것 싫단 말이야.”
제발하며 빌었던 간절한 나의 소망은 물 건너 가버렸다. 딸이 아니라 웬수가 되는 순간이었다. 아니, 나의 입이 방정이 되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이 매일 같이 듣는 말이라고는...
“네 아빠가 돈을 안 갖다 주는데 엄마한테 반찬 투정하면 되겠어?... , 매일 돈도 없다면서 무슨 술이야... 돈 돈 돈...”
하고 노래를 했으니... 아직 세상 때 묻지 않은 어린 딸이, 좀 컸다고 부모 눈치 보는 아들 녀석과 같을 순 없는 건데...
이런 딸 앞에서 엄마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매일 아빠 뒤에서 흉보기였으니, 무리도 아니다.
당황스러운 것은 아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얼른 아영이의 머리를 쥐어박는 거다.
“ 너 바보지? ”
“ 왜 때려...씨이...”
머쓱해진 남편이 다 낡은 지갑을 꺼내더니 만원짜리 지폐를 세기 시작했다. 그리고 150,000원을 내미는 거다.
“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봐. 이거로 방세 내고... 현장에서 틈틈이 고물 주워 다가 모은 것을 오늘 팔았더니 좀 나오더라. 그래서 가게에 기름이 떨어져서 보일러에 기름 좀 넣고 그랬어. ”
(가게에는 방이 하나있다. 거기서 40이 넘도록 장가가지 않고 혼자 사는 기사가 묵고 있다.)
묻지 않은 말까지 꺼내며 돈을 건네주는 남편의 모습이 왜 그렇게 초라해 보이던지...
이제 40대 초반일 뿐인데, 먼 놈의 흰머리는 그렇게도 많이 생겼던지...
탄탄하게 넓게만 보이던 어깨선도 한 없이 움츠려있었다.
철부지 마누라 때문에, 버거운 세상사 때문에, 커가는 아이들의 뒷바라지 무게 때문에... 남편은 그렇게 나보다 더 빨리 세월을 먹나보다.
아등바등 사는 것이 힘들어서 남편이 미울 때가 많다. 매일 술 냄새 풍기며 들어와서 자는 식구들에게 까칠한 턱 수염을 비벼대며 깨울 때가 짜증난다. 14년 된 부부생활, 내가 터득한 것이 있다면 남편은 웬수이며, 또 하나의 아들이며, 신경전 끊임없이 이어 갈 평생의 적이며, 그럼에도 평생 함께할 동반자이며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나의 울타리란 것...
웬수같던 내 남편이 그때 나의 눈에 한없이 측은해 보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장담하건데 나의 바가지는 앞으로도 쭈~욱 이어질 것이다.
남편이 어렵게 장만했을 그 돈으로 난 늦은 방세를 냈다. 신용하나 자신 있는 나였는데... 벌써 다음 달이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