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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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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2%만 부족한 거야. 98%가 아니고...


BY 일상 속에서 2006-04-24

 

내겐 소중한 사람이 참으로 많다.

그 중 오늘 내가 말하고픈 사람은 애인 같은 친구.

애인 같은 친구...


이성애자인 내가 동성인 친구를 애인 같다고 표현 한다는 것이 좀 뭣 하지만... 내겐 그 친구가 그 만큼 소중하다. 또 한 가지 불가사의 한 일은 그 친구와 난 인터넷 상, 한 채팅방에서 만났다는 것. 벌써 6년 지기 친구다.


한때 난 CJ(사이버 DJ)를 하며 채팅방을 운영하기도 했었다. 그때 나의 대명은 ‘떵이’(워낙 주접대는 남자들이 많아서 건들면 뭣같이 더러워진다는 깊은(?) 뜻이 담겼음)였다. 방제가 아마 [떵이의 일상 탈출 방]이었던 것 같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라서 학교 임원까지 맡았기에 한 없이 바쁠 때였다. 그래서 길게 해봤자 2~3시간.


친구의 대명은 ‘딸기 셋’(딸이 셋이 있다는 말씀).

‘채팅’ 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그때나 지금이나 곱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고지식한 남편의 시선 또한 째진 가자미눈이 되곤 했다. 주눅 들 정도로 다그치기까지 했다. 그런 남편의 결사적인 반대 때문에 몰래 하기도 여러 번, 들키기도 여러 번...


<건전>하면 홍 영미라고 세상 사람들이 다 알건만(^^;;;) 우리 신랑만 모르는 것 같았다.


아무튼, 우리는 그때 만났다. 삶이 비슷한 처지의 그 친구와 처음부터 잘 맞았다. 서로에 대한 비밀도 없었다. 아주 오랜 친구처럼 우린 그렇게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딸기셋은(친구 또한 이 글을 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 얘기를 썼다고 날 잡아 먹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이름까지 밝히고 싶은데 목숨은 부지하고 싶기에 참는다.)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 태어났단다. 없는 살림 때문에 못 배운 한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남들과의 대화 속에서 곧잘 움츠려들었다.


그런 모습이 안쓰러운 마음에,


“ 네가 어때서 그래? 나보다 세상사 더 많이 알고 있구만. 그런 것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그 정도면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아. 그리고 모르는 것 있으면 당당하게 말해.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니까 다시 설명해 달라고... ”


할라치면,


“ 넌 몰라 기집애야. 처음에는 몰라도 나랑 말 몇 마디 하고나면 날 보는 눈부터 달라진다고... 무시하는 것 같아... ”


하고 푸념을 한다.


이런 식의 얘기를 주고받을라치면 난, 또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는 살림이 어려워서라기보다 공부가 싫어서 중학교를 다니지 않으셨다고 했다. 50년도 말쯤인데도 할머니의 높은 교육열은 자식들에게 과외선생님까지 붙여 주실 정도였단다. 사업한답시고 있는 전답 팔아가며 돌아다니시는 외할아버지의 무관심한 가정사에 할머니는 열심히 일하셨고 모든 신경을 자식들에게 쏟으셨던것 같다.


하지만 농사 중에 자식 농사가 제일 힘들다는 옛말처럼, 할머니의 교육열과 커다란 기대감을 저버리고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자식이라고는 2남4녀중 3명뿐이었단다. 막내였던 엄마 역시 공부가 죽어라고 싫었단다. 그것이 한없이 후회 된 듯, 엄마는 입버릇처럼 “ 가르칠때 열심히 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하고 말씀하셨다.


나의 엄마 또한 교육열이 남달랐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해도 그다지 학원이 활성화 되지 않았을 때였다. 바다 일에, 장사에 눈 코 뜰 사이 없이 바빴을 텐데도 엄마는 일일 시험지를 시키셨고 주산 학원까지 보내셨다. 피아노 학원에 속독법까지 배워야 한다는 말씀에 난 여러 가지 변명을 둘러대며 겨우 주산학원 하나로 버텨내기도 벅찰 정도였으니...


방학숙제로 내주는 만들기나 그림 그리기는 모두 엄마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과제상은 늘 도맡아 탈 정도였으니까. 그 시절, 난 엄마를 못하는 것이 없는 척척박사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엄마가 어느 순간부턴가 우리들의 질문에 바쁘다는 핑계를 대시기 시작했다.

처음엔 몰랐다. 엄마의 자격지심을...


고등학교 다닐 때였을까?

어렴풋이 생각나는 것이 있다. 어느 날 외래어 하나를 조심스럽게 물으시는 거다. 난 당연히 대답을 해드렸다. 대답을 듣는 엄마의 표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 미묘했다. 그래도 굳이 표현을 빌자면, 초등학생이 바지에 실수를 하고 부끄러워 몸둘바를 모른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나의 눈을 심하게 피하셨다.


“ 기껏 가리켜 놨더니 이것들이 엄마를 무시해? ”

하고 곧잘 큰소리치던 그 말뜻이 무엇인지 그때 알았다. 커가는 자식들 앞에서 한껏 주눅 들어 있었다는 것을....


그 후 나는 엄마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졌다.

“ 엄마! 이 고기 산란철은 언제야? ”

“ 엄마, 게가 1kg에 6천 5백원 씩하면 15.5kg은 금액이 얼마 쯤 나와? 그런 것이 계산이 되? ”

“ 바다에도 길이 있다는데 엄마는 아빠대신 배 운전을 어떻게 할 수 있지? 그거 머리 나쁘면 못하겠다. 그치? ”


이런 나의 엉뚱한 질문에 엄마는 성의껏 대답해 주셨다.


“ 봐봐... 엄마는 우리보다 아는 게 얼마나 많은데. 대학 나온 사람보다도 더 지식이 많아. 영어 모르면 어때? 한문 그깟 것 몰라도 이렇게 돈 잘 벌잖아. 계산도 빠르고. 그러니까 기죽지마. 엄마는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사람보다 더 똑똑해. 지금 이만큼 사는 것도 우리 엄마니까 가능한 거야. 그러니까, 당당해. 사람은 늙어 죽을 때까지 배우는 거라고 엄마가 말했잖아. 그러니까 모르는 거 있으면 우리한테 물어봐. 엄마, 아빠 아니면 우리가 엄마 말대로 이렇게 잘났다고 떠들겠어? 그치, 엄마? ”


그러고 보면 나의 잔소리는 천성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엄마는 나의 말에 편해진 얼굴이 되셨고 뿌듯한 표정이 되셨다. 그리고 점점 당당하게 우리에게 질문도 하셨다.

하지만... “ 이것들이 좀 배웠다고... ”라는 식의 엄포는 여전히 지금까지 쭉 쓰고 계신다.


내가 알고 있는 딸기는 말을 참 잘한다. 아는 것도 많다. 정도 넘친다. 그것이 나와 있을 때만 가능하다니 안타깝다.

자격지심은 때와 장소를 가려서 나타나나보다.


하긴, 나 역시 자격지심이 일 때가 종종, 아니 시시때때로 있다. 그 놈의 사춘기를 제대로 앓아서 대학을 가지 않았다.(절대 머리 나빠서 못 갔다고 말할 수 없다. 절대로...) 대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엄마처럼 나 역시 지금 그것이 후회가 된다. 문장이나 언변이 딸릴 때, 한 없이 후회막급이다. 그래서 형편이 좀 나아지면 방송통신대학이라도 다녀 볼 생각으로 있다. 옛날보다 더 딸리는 머리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대학원까지 나온 사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건, 능청스럽기 때문이다. ^^;;

한없이 부족한 지식을 표 나지 않으려고, 목소리만 크면 이긴다는 무식한 발상으로, 목청껏 떠들어 댄다. 목소리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나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서 모르면 아는 척 고개만 끄덕이고 말없이 있곤 한다. 그럼 다들 내가 제대로 알아듣고 심오한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아는 것 같다.


딸기에게도 그 방법을 알려 줬건만 속까지 순수한 것은 나의 사기성 짓을 행각을 결코 따라하려고 들지 않는다. 자신 없단다.


그러면 난,

“그래 너 티끌 하나 없이 착한 것 다 안다. 넌 온실 속에 화초, 난 길바닥에 잡초처럼 살련다... ”하고 떠들다가,


마지막 한마디로 쐬기를 박는다.


바...보...(라 봐도 고 싶은 친구)라고...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면서도 거리가 있는 터라 우리는 한 달에 한번 정도 만나고 있다. 아이들까지 데리고서. 매일매일 전화 통화하는 대도 우리는 만나면 찜질방 같은 곳에서 밤이 새도록 수다를 떤다.


우리들의 큰 아이들끼리도 동갑이다. 막내 딸 끼리도 동갑친구다. 엄마끼리 만나는 날은 큰애들 데이트 날이기도 한다. 견우와 직녀처럼 한 번씩 만날 때마다 서로 좋아하는 모습이라니... 엄마들은 안중에도 없다. 어린 것들이 벌써부터...에휴...


아이들은 우리를 학교 동창으로 알고 있다. 남편들 역시...

우리 또한 채팅으로 만나서 이렇게 각별한 사이가 될 줄 몰랐으니까...


소심한 그것에게 다시한번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완벽한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니?

영화, 드라마, 소설 속에 등장해서 대부분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 주인공들 역시 2% 부족하잖아. 우리도 2%만 부족한 거다. 절대, 98%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고 자부하자. 그리고 지금처럼 부족한 서로의 2%를 채워주고 가꾸며 살자꾸나.>


이런 대사 아무 때나 나오는 거 아닌데... 오늘 필 좀 받는다.


내겐 3가지 신조가 있다.


첫째; 남에게 피해주지 말자. 될 수 있으면 손해도 보지 말자.


두 번째; 내 밥 먹고 내가 사는 거니까 기죽지 말자. (물론 밥만 먹고 살고 싶지는 않다. 때론 분식도 먹고, 양식도 먹고 한 정식도 먹으며 살고프다. 이야기의 흐름이 역시나 삼천포로 빠지고 있군...)


셋째; 남의 아픔은 곧 내게도 올 수 있는 것. 방관하지 말자.


오늘 글, 참 난해 하다. 요지가 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아무튼, 난 [지란지교를 꿈꾸며]에 나오는 말처럼,


고무신을 신고 나가도 부끄럽지 않을 친구가 있어서 행복하단 말씀.

간간히 걸려오는 동창 기집애들보다 몇 천배, 몇 만배. 사랑한다는 거다. 혹, 이글을 그것들이 본다면... 곧 죽음이다.


딸기야, 간간히 내 우울한 목소리에 열심히 다니고 있는 영어 학원을 결석하면서까지 찾아오게 하지만, 네가 세상을 향해서 한 발 내딛는 것이 난 참 보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