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혼 소송을 하고 있는 중 배우자의 동의 없이 시험관 시술로 아이를 임신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709

거짓말


BY 일상 속에서 2006-04-18

 

난 결혼하기 전까지도 인형과 동물을 참으로 좋아 했다. 그래서일까 아들은 동물을 좋아하고 딸은 인형을 좋아한다.


내가 몇 살 때였을까... 초등학교 저학년쯤인 것 같다. 심부름으로 구멍가게를 다녀오는 길에 볏단을 쌓아 놓고 비닐로 씌워 놓은 곳에서 무언가가 부시럭 거리 것이 보였다. 쥐가 아닐까 겁도 났지만 용기 내어 본 곳에는 참새 한 마리가 옴짝달싹 못하고 갇혀서 퍼득거리고 있었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리도 가까이서 보고 싶던 참새가 손만 뻗으면 잡힐 곳에 있다는 것에... 난 망설임도 없이 그것을 잡아서 신나게 집으로 달려갔다. 다리에 실을 묶어서 키워야 되겠다는 나의 마음은 인상이 험악하게 일그러진 엄마의 표정에서 모두 사라져 버렸다.

“ 얼른 내다 버리지 못해? 털 날리고 몸에 이도 있을 텐데. 얼른!!! ”

“ 엄마...내가 목욕 시켜서 데리고 있을게. 털도 안 날리게 할 거야. ”

엄마의 화난 목소리 앞에 내 말소리는 잦아들어만 갔다. 내 곁에 있던 남동생도 나와 같은 마음인듯 엄마를 간절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난 눈물을 머금고 참새를 날려 보내주고야 말았다. 내 엄마는 분명 계모일거란 의혹까지 품고서...


어린 나이에 그런 상처들 때문일까? 난 내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동물들을 웬만하면 사줬다. 첫 번째는 퍼그라는 강아지...며칠 만에 홍역으로 딴 세상으로 보내야 했지만... 그리고 애완용 토끼, 깔끔 떤다고 목욕시켜서 역시나 딴 세상으로 보냈다. 그래서 사준 것이 앵무새, 이것은 다행이도 6년째 우리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강아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아들을 보고 내 막내 남동생이 거금 백만원을 카드로 긁어 가면서 코카스파니엘 강아지를 집부터 목욕 용품에 이르기까지 개를 키우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사주었다.


남편은 우리 부모님이 그러셨듯 동물을 무진장 싫어한다. 때문에 짐승이 들어 올때마다 나와 신경전을 벌였다. 코카스파니엘을 1년 쯤 키웠을까... 녀석의 머리가 둔한 것인지 나의 교육이 모자란 것인지 배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해서 나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털은 또 어찌나 빠지던지. 햇볕에 보이는 털들이 내 아이들 몸 안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할 때마다 애물단지로 느껴졌다. 아이들 키우랴 개의 시중아닌 시중 들랴... 나는 점점 개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결혼 전에 마르티스같이 털이 긴 것을 어떻게 키웠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살던 집보다 좀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는 바람에... 핑계겠지만 아이들을 억지로 설득시키고 다니던 동물 병원에 데려가서 동물을 사랑해서 잘 키울 수 있는 사람에게 보내달라는 부탁을 하고 뒤돌아서야 했다. 그 다음부터 난 개에게서 정이 완전히 떨어져 버렸다. 개를 키울 자격이 못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아이들의 섭섭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산 것이 햄스터였다. 흰색 햄스터...1년을 잘 키운 것 같다. 암컷은 딸 것으로 이름이 톡순이(토끼를 닮아서)였고 숫컷은 건달(톡순이를 너무 괴롭혀서)이라고 이름 지어서 아이들이 먹이를 주며 돌보게 했다. 집 청소처럼 난해한 것은 내가 대신해야 했지만... 그런대로 귀찮아도 내가 받았던 상처를 아이들이 받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자부 했었는데...


어느 날이었다.

야행성인 햄스터가 밤이면 부스럭거리며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데 웬일로 간밤엔 조용했다.

‘저것들이 이제 철 좀 들었나 보군...’

별 생각 없이 집안을 치우는데 요 놈들이 언제나 아침처럼 죽은 듯 누워 있는 거였다. 간밤에 조용했던 것이 이뻐서 햄스터 집을 톡 건드리며...

“밤에 웬일로 이렇게 조용했어?”

했는데 미동도 없었다. 깜짝 놀라야 할 녀석들이 말이다.


순간 소름이 쫙...

설마설마 하며 들여다 본 곳... 그곳에 두 마리가 한꺼번에 죽어 있었다. 둘이 싸웠는지 한 녀석의 입이 찢겨지고 하얀 이가 보일 정도로 흉한 모습이었다. 부들부들 몸이 떨렸다. 치워야 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서 아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흉한 것을 계속 방안에 두기가 찝찝해서 용기를 내어 치웠다.


딸은 학교에서 끝나면 피아노 학원으로 들려서 오는 반면 아들은 집에 들러서 보습학원으로 가기 때문에 아들이 먼저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 온 녀석은 오자마자 햄스터 집이 어디 갔냐고 물었다. 녀석에게는 모든 것을 얘기 했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동물 같은 것을 사서 죽이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부탁 비슷한 통보를 했다. 그리고 마음 약한 유나에게는 비밀로 하자고 약속했다.


딸이 학원에서 돌아왔다.

“어? 엄마, 톡순이 어디 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싶었다. 머릿속으로 째내어도 신통치 않았던 변명들이 모두 두죽박죽 엉켜 버렸다.

“ 어... ”

말을 잇지 못하는 나에게 딸이 바짝 다가와서 얼굴을 들이 밀었다.


“ 있잖아...유나야... 집 주변에 유모차 끌고 다니면서 폐품 줍는 할머니들 봤지? ”

“응...”

“ 어떤 할머니께서 옷도 다 뜯어진 것 입고 힘들게 보여서 엄마가 폐품 줍는것 거들어 들이면서 물어 봤거든? ”

“뭐라고?”

“왜 힘들게 이런 것 하세요? 하고...”

“ 그랬더니? ”

“ 할머니는 아무도 함께 안 산대. 혼자서 외롭대. 불도 안 들어오고 tv도 없대”

딸의 호기심 받은 얼굴을 보니 먹혀드는 것 같았다. 제대로 필 받은 듯 나의 입에서 거짓말이 계속해서 술술 흘러 나왔다.

“그래서?”

“그래서 햄스터를 드렸어. 키우기 쉽잖아. 먹이도 아무거나 줘도 잘 먹고 말이야. 유나 올 때 물어 보고 주려고 했는데 할머니가 그때까지 있으시기는 것이 힘들어 보였어. 어디 아프신 것 같더라. 그래서 그냥 유모차에 실려서 보내드렸어. 할머니가 너무나 기뻐하시더라.”

“그럼...이제 톡순이 못 보는 거야? 그 할머니 집 어딘데? 왜 혼자 살어?”

“할머니는 아주 멀리 사나 봐. 같이 살 사람이 없대.”


난처한 질문에 난 또 거짓말을 뱉어 냈다. 거짓말이 입에 밴 사람처럼...

“ 그런데 멀리서 여기까지 왜 왔대?”

“ 음... 폐품들을 모두 주워가서 없어서 계속 걷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셨나 보더라. ”

얼떨결에... 억지 춘향으로 그렇게 넘어가나 보다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갔나 보다. 어느 날 딸과 함께 시장을 다녀오는데 딸이 나의 팔을 잡아 흔들면서


“ 엄마... 저 할머니한테 톡순이 준거야? ”

하는 거다.

내가 말했던 것과 비슷한 차림새의 할머니가 저만치서 유모차에 폐품을 싣고서 오는 것이 아닌가.

남루한 옷에 힘겹게 걷는 걸음까지...나의 설명과 너무나 흡사한 모습이었다. 그 할머니의 모습보다 딸이 나의 그 말을 여지껏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얼마나 톡순이가 보고 싶었으면...


“응... 그런데 유나야...쉿!!! 할머니들은 기억력이 없어서 엄마를 기억 못할 수 있거든. 그리고 우리 햄스터 잘 갖고 있냐고 물어 보면 할머니가 많이 창피 할 수도 있잖아. 유나에게도 누군가가 불쌍해서 뭘 줬다고 해봐. 그것을 가지고 길거리에서 물어보면 창피하겠지? ”

“응...”

“ 그러니까 우리 그냥 못 본 척 그냥 가는 거다. 네 친구들한테도 비밀이고...할머니를 위하면 그렇게 하는 거야. 불쌍하시잖아... 그치? ”

“ 응... ”


나의 몸에는 사기꾼의 기질이 크게 자리 잡고 있음에 틀림없다. 어쩌면 그런 거짓말이 술술술 잘도 나오는지...

사람들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인데도 나의 눈에 가끔 그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졸지에 나에게 햄스터를 받아 가신 분이 된 그분...어쩌면 자식들과 오순도순 잘 살고 있으면서도 알뜰하고 부지런해서 그 연세에도 쉬지 않고 움직이시는 분일 수도 있는데 외톨박이에 아주 가난한 할머니로 만들어 버린 나의 마음이 영 편치만은 않다.


그래서 박스나 전단지, 신문같은 폐품을 모아 두웠다가 할머니께서 가져가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항상 집 밖에 가지런히 놓아둔다. 조금이라도 죄를 사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