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 세 번째 찾는 길이다. 지난 봄, 지난 달, 그리고 채 한 달이 안 된 지금 다시 이 길을 걷는다. 어제 저녁 부산 집에 갈 양으로 인천을 출발한 것이 저녁 5시, 이곳 주암호 인근의 민박집에 도착한 것은 밤늦은 시각인 10시 쯤 되었던 것 같다. 주룩주룩 내리는 빗속을 헤치며 먼 길 떠나온 나그네를 주인 내외가 반가이 맞아주었다. 차에서 내려 처마 밑 까지, 짧은 거리지만 행여 비라도 맞을세라 우산을 받쳐주는 주인아저씨의 고운 마음씨에 따사로운 인정이 스며있다. 이미 나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마루에 앉아, 주인집에서 내어 놓은 듯한 참외 한 조각 씩 들고는 정감 어린 담소를 즐기고 있는 중이였었나 보다. 그들에게 일일이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나도 땀 좀 씻고 오겠다는 말을 하고는, 주인여자의 안내를 받아 내가 묵을 방으로 가서 짐부터 풀어놓고, 허긴 짐이래봐야 자그마한 배낭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곧 바로 욕실로 들어가 시원한 지하수 물에 샤워를 하고는 간편한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마루로 나갔다. 아마 이야기꽃이 활짝 피었는지 즐겁게 웃고 떠드는 품이 불청객인 나도 절로 흥에 겹게 만든다. 부산에서 왔다는 중년의 두 내외와 광주에서 온 젊은 부부 그리고 주인 내외까지 합세하여 한가로운 여름밤의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늦은 시간에 저녁이나 드시고 오셨나요\" 묻는 주인여자의 물음에 건성으로 웃으며 \"예\" 라고 대답하였는데, 내 대답은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참! 저녁 때 김밥 싸 놓은 것이 남았는데 그거라도 들어 보세요\" 하며 만류 할 겨를도 없이 얼른 자리를 뜨더니 곧 쟁반에 김밥과 감자 삶은 것을 담아 오는 것이 아닌가... 배고픈 김에 한개, 두개 김밥과 감자를 번갈아 먹어가며, 그 대화에 충실해져 가고 있는 나를 발견 할 수 있었음은 집을 떠나온 이방인들의 공통된 감정이 통 했음 일런지도 모르겠다. \"새벽예불을 보시려면 일찍 주무셔야지요\" 하는 주인의 말에 \"아니요 10시 예불을 보고자 합니다\" 답하고 이럭저럭 12시가 다 된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창문 밖 낙숫물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해 보지만, 잠을 못 이루고 있다. 이 생각 저 생각에 몸을 뒤척이고, 내가 여기에 왜 와 있을까 하는 스스로의 물음에 답조차 구하지 못한 채, 어느 샌가 잠이 들었었나 보다. 나는 소위 말하는 불교신자는 아니다. 어디에도 신도로 등록된 절이 없으니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무엇이 나를 이곳으로 발길을 돌리게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세 가지 보물이 있는데 바로 불(佛), 법(法), 승(僧)을 일컬음이다. 이 세 가지 보물을 모셔놓은 대표적인 사찰을 3대 종찰(宗刹)이라 이른다. 불(佛)이란 부처님 그 자체를 의미하며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셔놓은 양산의 영취산 통도사가 불보종찰(佛寶宗刹)인 것이다. 법(法)이란 부처님의 말씀을 옮겨놓은 경전을 의미하며 팔만대장경이 있는 합천의 가야산 해인사가 법보종찰(法寶宗刹)인 것이다. 승(僧)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우치고자 수도를 하는 스님을 의미하며 승주의 조계산 송광사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스님들의 수도도량으로 승보종찰(僧寶宗刹)인 것이다. 매년 3대 종찰을 다녀보지만 그 중에서도 이 송광사만은 다른 두 곳의 종찰에 비해 너무나 나에게 있어 매혹적인 마력으로 다가선다. 그래서인지 이미 통도사나 해인사도 올해 한 번씩 다녀왔지만 유독 송광사만은 이번이 세 번째 참배길이다. 매년 몇 번씩 왔었지만 언제나 나에게 신선한 의미로 다가서는 이 절에 무슨 신비함이 있어 오늘도 이곳 잠자리에 들었는가 하는 생각에 잠을 설치다가 아침 7시에 기상을 하였다. 이미 비는 그치고 주암호의 물안개가 뭉글뭉글 피어오르니 이 어찌 신선이 사는 세상이라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상쾌한 아침공기를 맘껏 들이마시며 마당에 내려서서 늘어져라 기지개를 켜 본다. 벌써 부산에서 온 부부는 마당에 나와 주암호의 물안개를 바라보며 서로 탄성을 자아내고 있는 중이였다. \"절에 가 보셔야지요?\" 묻는 말에 \"10시예불이니 천천히 움직여도 되겠지요.\" 라고 대답하며 아침 이슬을 잔뜩 머금은 솔잎을 한줌 따서 냄새도 맡고 입에 넣어 잘근잘근 씹어보기도 하였다. 입안에 확 퍼지는 솔향기가 온 몸이 상쾌함의 극치를 내 달리는 감각 이였다. 주인 내외의 정성이 어린 아침상을 물리고는 옷가지와 배낭을 대충 정리한 후 차에 올랐다. 이 정취어린 곳과는 너무나 동 떨어진 부르릉 시동을 거는 소리에 살짝 몸서리를 쳐보지만 이마저 없으면 이 먼 곳을 어떻게 일 년이면 몇 번씩 찾아 볼 수 있으랴 싶어 그냥 묻어두기로 마음을 다 잡아본다. 민박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송광사 이정표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정감 있는 모습으로 내 눈에 다가온다. 여기에서 좌회전... 길가에 늘어선 벚나무는 변함이 없건만 지난 봄 하얗게 나를 반겨주던 벚꽃은 이미 지고 초록의 싱싱함만을 자랑하듯 반겨준다. 절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드디어 일주문을 들어서니 이 문을 사이에 두고 양쪽 세상이 이렇게 다르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인지... 마치 피안(彼岸)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피안(彼岸)의 세계(世界)... 완전에 도달한다는 바라밀의 경지(境地). 실로 바라밀(波羅蜜)의 경계는 실상경계(實相境界) 이지 않는가. 반야(般若)의 가르침을 좇아 대해탈(大解脫), 대자유(大自由), 무한능력(無限能力)의 세계, 이미 마음은 그 경계를 넘어서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존재(存在)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걷다보면, 어느새 계곡을 가로지르는 돌다리를 건너게 되고, 이 다리를 돌아서면 수백 년은 묵었음직한 고목들이 나무숲 터널을 만들어 우리가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산사(山寺) 가는 길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길의 폭은 6m도 채 안되지만 그 옛날부터 수많은 고승들이 거닐었을 이 길은 언제나 무한정 넓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햇볕이 쨍한 맑은 날에도 길가 구석구석에는 젖은 이끼들이, 마치 수천 년간 햇볕을 보지 못한 듯 하나, 스스로 빛을 발하는 발광체와도 같이 새파란 색조를 한 자락씩 깔고 있다. 포장이 안 된 길에는 지난 가을 떨어진 낙엽이 썩은 채로 군데군데 이 길을 찾는 구도자(求道者)들의 발길에 밟혀 마치 길 위에 모자이크를 한 양으로 나를 맞이한다. 지난 봄에는 겨우내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린 다람쥐들이 참배객들이 흘린 먹이라도 먹을 양 인기척도 두려워 않은 채. 두 세 마리 씩 길을 가로 지르고 내 달리고, 이 나무 저 나무 오르락내리락 하더니만, 이제는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으로 배고픔을 면했는지, 간혹 나무위에 뛰어다니는 앙증맞은 모습만 눈에 뜨일 뿐이다. 아마도 저 나무 위 높은 곳에서 또 하나의 불쌍한 중생이 부처님의 자비를 구하고자 가는구나 하고 바라보고 있으리라. 조금 걸어 올라갈라 치면 왼쪽으로 측백나무 군락지가 그 큰 키의 위용을 자랑이나 하려는 듯 성큼 모습을 드러낸다. 아마도 400년 이상은 됐음직한 나무들이리라... 측백나무 숲을 뒤로하고 왼쪽으로는, 지난밤 내린 비로 인해 콸콸 용솟음치듯 돌 틈 사이를 헤집고 흐르는 계곡물을 옆에 끼고 걷노라면, 저 흐르는 물에 속세의 인연과 번민을 다 씻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오른쪽에 위치한 송광사 부도탑 곁을 지나노라면, 이곳에서 배출된 수많은 고승들의 발자취를 더욱 느낄 수 있어, 나도 모르게 숙연해짐을 알 수 있다. 내가 방금 걸어온 그 길이 바로 이 부도의 주인공들이 걷던 그 길이 아니었던가 싶으면. 새삼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옴을 어쩌랴... 왼쪽으로 새로이 단장된 전통찻집을 뒤로 하며 \'나오는 길에, 차나 한잔 해야겠구나’ 속으로 되 뇌이면서 드디어 산사(山寺)의 문(門)을 들어선다. 몇 발자국 앞에 사천왕문이 그 문을 활짝 열어젖힌 채 \'이곳에 들어오는 모든 죄진 중생들아 내 앞에서 속세의 묵은 때와 잡귀들을 말끔히 씻고 들어 오거라\' 하며 예의 그 험상궂은 얼굴로 중생들을 맞이한다. 경건한 마음으로 합장을 하고, 머리 숙여 절을 한 후에 대웅전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부처님 前에 합장예불을 올려본다. 적어도 절에 와서 예불을 드릴 때나 독경을 할 때만은 마음과 입으로 짓는 죄악이 없다는 것 만으로도 우리네 중생들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리라... 시간은 흘러 벌써 10시가 다 되어 가는지 이 법당 저 법당으로 다니시는 스님들의 종종 걸음이 마냥 바쁘기만 하다. 돌계단을 올라 대웅전 정면에서 다시 한 번 석가모니 불 前에 합장예불을 올리고 대웅전 건물을 끼고 측면 출입구로 가서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고는 대법당 안으로 들어가 적은 돈이나마 불전함에 시주를 하고, 신도용 보료를 갖다놓고 오체투지의 정성을 다 하여 부처님에게 삼배를 올린다. 오체투지의 정돈된 몸가짐이 되었을까 속으로 반문하며 한번, 두 번, 세 번... 다시 몸을 일으켜 좌우에 계신 보살님들에게 다시 각각 삼배를 하고나니, 우측 지장보살 殿에 영정이 놓여있고 喪中에 있는 유족들이 무릎 꿇고 앉아 돌아가신 영가의 명복을 비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49제를 올리는 모양이다. 지난 2월 아버님의 49제 영가천도제가 머리에 떠오르며 새삼 아버님의 명복을 빌어본다... 나무관세음보살... 아버님 돌아가신 후 아직까지 꿈에 한번 못 뵈었으니 틀림없이 구천을 헤매시는 일 없이 좋은 곳으로 가셨으리라 다짐도 해보면서... 이윽고 10시 예불을 알리는 범종 소리가 들리고 스님들의 천수경을 외우는 독경소리...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사바하\" 의 가장 죄를 많이 짓는 입을 깨끗이 하자는 진언이 울려 퍼진다. 얼른 천수경전을 펼쳐들고 따라서 독경을 해 보지만 자꾸만 안으로 기어드는 목소리란... 한 시간이 넘게 흘렀을까, 반야심경을 마지막으로 예불을 마치고 법당문을 나서며 시계를 보니 11시30분을 지나고 있다 시장기도 들고 오랜만에 절밥을 먹고 싶다는 마음에 얼른 발길을 공양간으로 돌린다. 벌써 한 무리의 신도들이 점심공양을 하고 있는 중 이였다. 갖가지 채소로만 구성된 반찬들... 스님들이 직접 재배하여 식탁에 올리는 것이라 어딘가 정갈한 맛이 더 하는 것 같다. 하얀 백김치, 무짠지, 미나리, 도토리묵 고사리, 두부 등등 가짓수가 많기도 하다. 스님들과 같이 바루공양은 아니더라도 흔히 보는 식판에 먹음직스런 갖가지 나물을 담고, 시원한 콩나물국에,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니 식판공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원한 약수 물에 입을 헹구고 마치 소화라도 시킬 양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지장전을 향한다. 돌아가신 영가님들을 관장한다는 지장보살님 앞에 삼배를 하고는 홀로 독경중인 스님을 따라 열심히 지장보살 경을 외워대니 스님이 가만히 독경을 멈추며 나 혼자 독경을 하게끔 하신다. 그 자상한 배려에 얼마나 고마움이 이는지... 나오면서 깍듯이 스님에게 합장을 하고 절을 한 바퀴 돌고 난 후, 2시쯤 절문을 나섰다. 아까 들어갈 때 다짐을 했던, 찻집으로 가서 작설차를 시켜 놓고는 계곡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 작설차의 향과 맛을 음미해본다. 맘씨 좋은 찻집 아낙의 인절미 서비스까지 받아가며 몇잔의 차를 우려내어 마시고나니 이번 참배길이 일상탈피(日常脫皮)라는 단순함에 그치지 않고 역시 보람된 것임을 새삼 만끽하게 된다. 숲속 오솔길을 걸어 내려오며 가을 단풍들 때에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을 먹어본다. 피안의 세계에서 다시 속세로 돌아오는 길을 걸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을 밀린 업무가 벌써 어깨를 짓눌리는 중압감을 느끼게 한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역시 속세의 인연을 떨쳐 버리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인간이구나... 하는 마음에 쓴 웃음만 나올 뿐이다. 한시라도 빨리 나의 보금자리로 가고 싶다는 생각에 절로 발걸음이 빨라진다. 이다음 나이 들어 이런 곳에서 눈에, 마음의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 그 느낌을 글로 쓰며 여생을 편히 보낼 처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뒤로 한 채...... PS : 지난 늦여름 다시 찾은 송광사에 대해 적어 놓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