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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BY 은하수 2006-04-14

지난 일요일 돌아오는 기차안에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드렸다.

일방적인 훈시가 베풀 수 있는 애정표현의 전부인 아빠지만...

한때 다정한 대화가 쌍방으로 이루어지는 그런 부녀관계를 소원했었지만...

언제부턴가 완전 포기가 되어 버릴정도로 꽉 막힌 아빠지만...

엄마가 너무 오래 집을 비우다보니 좀 걱정이 된다.

노인들은 식사가 중요한데...

가까이 사는 동생이 있긴 하지만 그애만 믿을 수도 없고

또 4개월이 짧은 시간은 아닌데 계속 잘 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엄마 언제 오냐는 내 질문에 아버진 ㅎㅎ 하시며 네 엄마에게 물어봐라 하신다.

덧붙여 동생이 익숙해질 때까지 돌봐주어야 하지 않겠냐며 

모범답안같은 말씀만 하신다. 답답해...

두분 다 내게는 모질게 하시면서도 이 동생한테만큼은 계속 쏟아 붓는다.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같은 안타까운 마음에서겠지만

그만큼 동생이 성숙할 기회를 미루고 있음을 정녕 모르실까?

이제는 다 할 수 있는 나이임을... 누구의 도움으로 살 나이는 아닌데... 내 생각인가?

둘째에게 전화해봐도 자기도 잘 돌봐드리지 못한다며 엄마가 빨리 왔음 한다.

 

오늘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거긴 늦은 시각일텐데 아직 안 주무시고 있다.

내 목소리를 듣고 반가와하시는 것 같긴 하다. 아버지 생신전까지는 들어오셔야

않겠냐는 내 말에 생신이 언제지 하시며 약간 감동하는 것 같다.

뒤이어 동생의 답답한 처지를 내게 하소연하시며

\"내가 여기 살믄 진짜 사는 거냐. 나두 어쩔 수가 없어서 있는 거다. 중간시험 보는

것까지 보고 오려고 이런다.\" 하신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지.\" 내가 그랬다. 그러지 말걸.

\"네 둘째는 학교 갔지? 잘 다니니?\"

\"우리 걱정은 하지 마세요.\" 내가 잘랐다. 그러지 말걸.

\"전들 미치겠지. 떼어논 아이들 생각하면 팔짝 뛰겠지.\"

\"그건 지가 멘 십자가니 어쩌겠어요. (그래두 할머니가 봐주시잖어.)\"

모진 난 동생이 너무 포시랍다는 생각이 든다.

\"자꾸 좋은 생각을 해야지. 나쁜데 비교를 하구.\"

나두 아빠같은 모범답안만을 내놓는다. 닮았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이혼녀의 생활은 녹녹치 않음을 말씀하신다.

난 하인즈 워드 엄마를 본받으라구 그랬지만 엄마는 뭐라구?하며 못 알아듣는다.

한국은 다들 난린데 미국은 조용한가 보다.

혼자서 막힌 생활을 하다보니 기차화통같이 폭발한다고 동생을 걱정하신다.

\"걔가 한국에 나가면 너흰들 편할 줄 아느냐? 너희 생각해서도 여기 살라구 내가 그런다.\"

거의 협박이다. 슬슬 기분이 또 나빠진다.

그게 왜 또 우리 때문이냐구? 어디에서 살든 난 상관 없어요. 저 살고 싶은데서 살면 되지.

\"엄마, 아 다르고 어 다른데, 엄마랑 얘기하면 자꾸 기분 나빠.\"

\"너희나 잘 먹구 잘 살아라. 여기 걱정 말고.\"

전화를 뚝 끊으신다.

항상 좋게 시작해서 나쁘게 끝난다.

함께 대화함으로써 서로 위로받고 기분이 상승되고 해야 하는데... 힘이 빠진다.

전화한게 후회될 정도지만 언젠가 난 또 전화할 것이다.

좋게 끝내야 잊고 지낼텐데 찜찜한 기분으로 끝내니 신경이 온통 그쪽으로 쏠린다.

신경쓰게 만드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엄마와 나의 대화는 팽팽한 고무줄 같다.

서로 당기기만 하다가 줄이 끊어진다.

엄마와 나는 항상 줄다리기를 하는 것 같다.

내가 당기면 엄마가 져 주는척 넘어오면 좋겠다.

엄마는 조금도 딸인 날 하나두 안 봐준다.

좋은 대적상대라 여기고 있는 힘껏 당긴다.

나두 넘어가지 않으려고 기를 쓴다. 힘을 뺏긴다. 그래서 신경이 더 쓰인다.

 

엄마의 대화법이 맘에 안든다.

매사가 비관적이고 적극적이지 않다. 항상 수동태였다.

주변이 이래서 내가 이럴 수 밖에 없다...

같은 문제도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아직도 모르신단 말인가.

생각하는대로 운명이 바뀔 수도 있음을.

 

엄마는 남들보다 조금 힘들게 사시기는 했다.

(맏며느리로서도 평탄하지 않았고, 오래 아프던 아들을 잃기도 했다.)

그래도 좋은 여건도 또한 갖추고 있지 않은가. 남들에겐 없을 수 있는.

(노후를 함께 할 남편도 있고, 비교적 건강하고, ...)

엄마도 밝은 면을 볼 줄 알리라고 믿는다. 믿는 종교가 있으므로.

하지만 내 앞에서는 항상 앓는 소리만 한다.

나두 같이 답답해진다.

 

대화란 피가 흐르는 것과도 같은데...

서로의 생각의 차이만 확인하고는 끊긴다. 골이 깊어지는 느낌...

어딘가 꽉 막혀 있는 느낌... 단절감...

 

친구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말을 흔히 한다.

친구도 두 종류가 있다.

사사껀껀 시비걸고 넘어지는 라이벌같은 친구.

내 편이 되어 내 얘기를 들어주고 도와주는 친구.

친구같은 엄마...

 

엄마를 비평할 능력이 내게 있지만,

엄마의 운명을 내가 과연 비켜갈 수 있을지 두렵다.

난 내 자식들에게 이런 느낌을 맛보게 하고 싶지 않아.

 

 

아, 신이시여.

저를 도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