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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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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일기(개업하던 날)


BY 개망초꽃 2006-04-10

바로 바톤터치를 했다.

그러니까 문 닫는 날 없이 개업식을 하고 바로 장사를 시작했다.

개업하던 날은 밤장사만 하고,

내가 본격적으로 하는 낮장사는 월요일부터 시작하기로 하고

오늘은 오전부터 나가 대청소를 했다.


몇 년 묶은 때가 황사처럼 일어났다.

밖은 황사로 인해 안개 낀 것 같다더니

창문에 먼지가 잔뜩 끼어 있어 창안에서 본 밖이 새벽안개처럼 뿌옇다.


살림을 잘 못하는 친구는 일꾼을 세 명이나 데리고 왔다. 아는 언니와 친구들이었다.

한 명은 주방에 붙고, 두 명은 홀에 붙고, 나는 바깥 화단과 창문에 붙기로 했다.

며칠 전에 심어 놓은 화초를 꽃에 관심 많은 누군가 뽑아 가기도 했고,

관심 없는 누군가가 짓이겨 놓기도 했다.

여유 화초가 몇 개 있어서 보수공사를 하고, 창문에 매달렸다.

창에 달려 있는 화초를 볼 수 있어서 그런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카페 안에 음악을 구석구석 흐르게 만들어서는,

음악에 두 귀를 맡기고, 두 눈은 화초에 맡기고, 두 손은 창문에 맡겼다.

하얀 격자무늬 창이라서 먼지가 닦여 가는 것이

검정색 도화지에 흰색 물감을 칠하는 것 같아 실감난다.

누런 먼지가 쌓이고 쌓이다보면 검정 도화지가 되나보다.


점심은 쟁반자장면에 탕수육이었다.

카페 칵테일 바에서 먹는 자장면은 멋스럽고, 나름대로의 매력이 넘쳤다.

앞으로 점심은 이런 식으로 매력이 있을 것이다.

라면을 끓여 먹어도 멋스러울려나…….


개업식이라도 손님이 많은 것이 아니고,

일 해 줄 사람만 많아서 별로 힘들지 않았다.

낯선 손님에게 술 내 갈 일이 당연하게 걱정스러웠고,

개업 하는 날이라서 밤까지 일을 안 도와 줄 수가 없었다.

손님이 오면 친구가 먼저 인사하고, 친구는 카페 사장님이니까 당연한 것이다.

나는 주방으로 얼른 뛰어가 고사떡을가위로 자르고,

삶은 고기만 일회용 접시에 담았다. 이게 속편하기 때문이다.

 

남자 두 명이 들어왔다.

친구는 다른 테이블에 있어서, 내가 인사하고 주문을 받아야 했다.

“어? 주인이 바뀌었어요?”

“네에…….오늘 개업식이예요.”

“그랬구나! 먼저 주인도 좋았는데…….”
나는 히죽 웃었다.

“맥주 세 병 주세요.”

잽싸게 냉장고로 달려갔다.

뭔 맥주가 이리 종류가 많으냐…….

노란색, 보라색, 빨간색…….아니, 맥주도 봄이라 꽃을 피워 물었네…….

눈에 익은 갈색병 카스를 집었다.

기본 마른안주를 가지고 손님 앞에 섰다.

이거 뚜껑을 따 줘야 하나, 그냥 내려만 주고 와야 하나,

맥주를 어느 쪽에 놔 줘야 하는 거지…….안주는?

몇 초 동안에 마구마구 고민이 스친다.

“화이트 없어요?”

아! 글치 화이트란 맥주가 있었지. 마자! 카스는 써서 나도 싫어하지. 화이트가 낫지…….

“아…….네…….화이트요…….” 당황스러워서 말꼬리를 올리지 못하고 말꼬리가 내려간다.

카스를 들고  냉장고 있는 쪽으로 간다.

카스가 쟁반에서 미끄럼을 타려고 한다. 이러다 깨겠다.

다시 손님 탁자로 가서 카스를 내려놓고 냉장고로 달려간다.

아무리 찾아봐도 화이트의 ‘H\' 자도 없다.

친구를  끌어 잡아 냉장고 앞에 세워놓고 빨리 화이트 찾아내라고 했다.

결국 손님은 카스를 마셔야 했다.

냉장고엔 화이트가 없었던 거였다. 오늘은 화이트가 애당초 없었던 날이었다.

내가 못 찾은 게 아니란 말이다.

꿩대신 닭이라더니 화이트 대신 카스를 먹던 손님이 나를 부른다.

달려갔다. 걸어가야 하는데 촌스럽게 달려갔다.

“재떨이 주세요.”

“네!” 대답을 부드럽게 해야 하는데 나무젓가락 부러지듯 뻣뻣하다.

재떨이 재떨이 재떨이…….

어럽지도 않은 물건을 주방까지 가다가 잊어버릴까봐 되새김질을 했다.

냅킨 한 장을 재떨이에 올려놓고 물을 반모금만 줘야한다.

한 모금을 주면 냅킨과 물이 섞이지 못하고 겉돌 것 같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나는 안다.

하나를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둘을 아는 나…….히히히


여린 주황불이 홀 안에 가득 번진다.

밤이 짙어 갈수록 불빛도 짙어진다.

선반위에 새로 사다 올려놓은 얼룩무늬 마삭 줄과,

초록잎 화초가 따끈한 할로겐 불빛을 손바닥을 쫙 펴 쬐고 있다.

종일 서 있었더니 발바닥이 아프다고 보챈다.

집에 가고 싶어요, 집에 가고 싶어요.

열시쯤 친구에게 살며시...... 나 가면 안 될까? 했더니 얼른 가라고 한다.

친구를 도와 밤에 일할 여자 분도 계시고,

그리고 내 담당은 화초들이고 청소였으니까.

아들 주려고 개업식 음식을 싸 가지고,

이 가로등에서 저 가로등 밑으로 씩씩하게 걸어간다.

저 멀리 버스 정류장이 어슴푸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