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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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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찾아온 손님2


BY 백목련 2006-04-09

 

               밤에 찾아온 손님 (2)


    “저벅 저벅”  “덜컥 덜컥”

새벽 두시다. 불규칙한 저 발자국 소리에 나는 속수무책이다. 남편이 지방으로 일하러 간 것을 저 도둑은 어찌 아는지 하필 우리 집을 털려는 것인가? 혹시 흉기를 들지는 않았는지 아이들을 깨우면 우는 소리에 더 흥분할 것 같아 그저 불규칙한 소리만 듣고 있다.

 오늘 따라 차 소리도 들리지 않고 늦게 귀가하는 이의 늘어지는 노랫소리도 없는 밤이다.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하염없이 내리는 눈은 지금 내게 아무런 위안도 되지 않는다. 문이 마음대로 열리지 않는지 쇠 부딪히는 소리와 놈의 씩씩대는 소리가 고요를 깬다. 아무것도 모르고 재깍대는 시계는 곧 멈출 것 같은데 아이들 얼굴을 보니 이대로 있을 순 없다.

 남편이 돌아와 도둑이 휘두른 흉기에 다쳐 우리가 병원에 누워 있는 것을 보면, 아니 9시 뉴스 ‘사건 사고’에서 우리의 끔찍한 소식을 본다면 얼마나 가슴 아파 할까?  머리맡의 전화기를 들었지만  연말연시 도둑을 조심하자며 1층 현관에 붙여놓은 안내장에 적힌 파출소 전화번호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밖에 있는 놈은 누군가에게 전화로 얘기를 하는 듯 하다. 그건 분명 망을 보는 또 다른 공범이 있는 것이다. 급한 대로 119를 눌렀다. 소방서가 바로 집 앞이니 그의 공범 보단 구급차가 먼저 도착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작은 목소리라서 장난전화인줄 알면 나는 큰 낭패다.  게다가 몇 호인지 제대로 말은 한 것인가?  밖이 조용한 것을 보니 아직 공범은 오지 않았나 보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우리 집에 값나가는 물건은 가을에 큰애가 전국 글짓기대회에서 대상상품으로 받은 컴퓨터와 낮에 시장을 보고 남은 천원 권 몇 장이 고작이다. 그것이 저들을 더 자극할 것 같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남겨준 닷 돈짜리 금반지는 내가 다치더라도 절대로 내놓지 않을 것이다.

 밖이 갑자기 소란해 진다. 나는 이제 무릎을 꿇고 아이들을 봐서라도 그냥 아까운 컴퓨터만 가지고 가달라고 빌어야 한다. 둔탁한 쇳소리와 몇 명의 남자들 음성. 공범은 꽤 여러 명인가 보다. 무언가 얘기를 나누는 듯 하더니 곧이어 시끄럽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구급차가 도착했다는 또렷한 음성.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안도감에  거실로 나가 불을 켜고 현관문을 열었다. 환한 불빛 사이로 눈에 들어오는 건 제복을 입은 구급대원과 만능 열쇠꾸러미를 들고 있는 열쇠가게 주인,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낯익은 옆 통로 아저씨. 이렇게 대면한 우리 사이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교육열이 남달랐던 아내가 무남독녀 딸을 데리고 호주로 떠나 홀로 지내는 아저씨는 취중에도 우리들 눈초리를 의식 했는지 ‘이놈의 여편네’라는 말만 연신 해대며 발길을 돌린다.

 늘 함께 했던 이의 빈자리가 이렇게 크다는 걸 나도 전에 없이 크게 느끼는 밤이다. 그 자리를 메우려는 듯 소리 없이 내리는 눈발이 점점 굵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