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깊이 사귀면서
무의식적으로 잘난 것이든 못난 것이든
자기 방식이나 자기 사고 혹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상대에게 원하는 경우를 경험할 때가 종 종 있다
우리는 보는 만큼만 느끼고 느끼는 만큼만 이해한다고들 하지 않는가
내가 12층의 눈으로 볼때 아무리 25층에 대한 설명을 해도
상상일 뿐 구체적인 설정이 곤란하다
요즘 상담을 공부하는 한 지인을 알면서 분석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어쩌면 그것은 사실일 지도 모르며
또한 사실임을 굳이 부인할 수도 없다
내용인즉
내가 늘 자주 만나는 한 친구에 대한 분석인데
그녀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늘 따스함이 넘쳐난다
나는 그녀의 속을 뒤집어 보고 싶다는 글을 썼을지경이니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석녀의 입을 통한 섬머리는 나의 등을 시리게 한다
분석녀의 표현으로는
그녀는 착한 행동으로 남을 조정하려는 특유의 왕비병을 가지고 있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하자면
그녀의 이타적인 행동이 사람에게는
보다 큰 울타리이자 --그녀의 주위를 맴돌게 하고픈 욕구로 가득찬
쇠사슬의 본능일지도 모른다는 ....
결국 착함 자체를 순수하게 설정하지 않고 있었다
더구나 착한 것은 좋으나 언제나 남을 정죄하려는 속성 마저 있다고
강력한 비난?을 내어 놓는다
그러나 ..나의 솔직한 심정은
저의와는 상관없이 착한 사람이 좋다
기가 쎄고 분석을 하고
언제나 자기 중심적으로 행동하며
주위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몰경우는 당연히 노우다
더구나 모든 상담가들의 자기 중심적 주입식 교육이나
상대의 어떤 행동이나 사고의 위치에 충분히 서 있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충고를 내어놓아서는 안된다는 소극적 사고가
나를 짓누른다 ...
자기 자신을 합리화할 뿐이지
정작 자신의 사고나 행동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할 만한 가치가 그렇게 있었던 가
하는 의구심이 바로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 본 나의 이미지는 너무나도 당당하다는 것이다
--별로 잘난 것도 없으면서 ㅋㅋ--
이 상황에서 직장을 다니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심이 생긴다
만약 내가 어떤 사람이 지독하게 싫거나
만나고 싶지 않다면 나는 어떤 이유로든 그를 피하거나
만나지 않는 것은 가능하다
왜냐 나의 반경이나 만남을 내가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집단에도 소속되어 있지 못하므로 ^^;;;
그러나 직장을 다니는 많은 사람이나
특히 남편들은 이런 흡사한 상황에서 단순히 피하거나 멀리하는 문제가 아닌
가장 싫어하는? 사람과도 손을 잡고 일을 마쳐야 한다는 일이다
결국 선택의 폭이 없는 곳에서 끊임없이 끊을 수 없는 사슬을 만들어 대고 있다는 점
바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남편에게 너그러워 져야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분석은 누구나 자기 방식대로
자기 임의대로 자기가 보이는 만큼 자기가 이해하는 만큼 해버리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 또한 남의 도마위에 올라가 춤을 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멋대로 기껄이지 못하고 오그라뜨렸다가
작은 포장으로 내어 놓는 소심한 문자놀이에 지나지 않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글은 자기 자신을 여러번 죽이는 잔인한 소도구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꾸 ...수다를 떨고
자꾸 글을 쓰고 싶어 견디지 못하는 상황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