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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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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거야.


BY 모퉁이 2006-04-03

마음 먹은대로라면 지금쯤 주말농장을 분양받아

개장일을 기다려야 했다.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작년에 같이 했던 4층 댁이

올해는 이사를 가려나 어쩌나 하길래

우리끼리라도 해야겠다 싶어 농장에 전화를 걸어보니

어쩌나...한 발 늦었나 보다.

작년보다 일찍 분양신청을 시작했고 일찌기 마감이 되었다며

내년 분양을 기다리라고 한다.

다른 곳은 너무 멀고,해서 올해는 농사를 짓지 못하게 생겼다.

작년에는 김장까지 할 수 있어서 뿌듯했었는데 아쉽다.

 

작년에 뿌리고 남은 씨앗 몇 종류를 어디에 쓴담.

몇 해를 두고 뿌릴 씨앗은 아닌 것 같아

어디에라도 뿌려 싹을 보고 싶은 마음에 호미를 들었다.

일층 입구에 키 큰 단풍나무의 가지를 작년에 베어낸 탓에

그늘이 많이 줄어든 공간이 있다.

가꾸지 않아서 돌도 많고 비옥한 땅은 아니지만

작년에는 그곳에 봉숭아도 심고 나팔꽃도 심고 분꽃도 심어

코스모스와 함께 꽃밭으로 손색이 없었던 공간이기도 하다.

3층 아줌마가 내놓은 몇 개의 화분이 분위기를 살려주었고

스티로폼에 심겨진 상추와 고추가 재미있게 자라 주었던 곳이기도 하다.

 

떨어진 단풍잎을 호미로 긁어 모아 한 쪽으로 치웠다.

잘 썩으면 좋은 거름이 되지 않을까 싶다.

호미 끝에 아그작 거리는 소리가 조용한 동네에 울려 퍼진다.

무슨 큰 공사를 벌이는 줄 알겠다.

돌을 골라내고 작년에 쓰고 남은 거름 봉지를 뜯어서 뿌렸다.

엊그제 내려준 비에 촉촉히 젖은 땅이 푸석푸석 감촉이 좋다.

 

죽은 듯이 무심한 공간에 파란 싹이 삐죽이 나와 있었다.

가만..작년에 심었던 쪽파다.

꼬마 녀석들의 발부리에 치여 풀처럼 나지막히 숨 죽이던 쪽파가

겨우내 웅크리고 있다가 계절을 어기지 않고 찾아 와 주었다.

실패였거니 하고 잊어버렸는데 거참..

입 속의 웅얼거림이 미소로 번졌다.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 한 해 농사로는 어렵다.

농장에서야 자문을 얻기도 하고 컨닝을 하기도 했는데

작년 농사 일지를 봐도 알송달송이다.

 

거름을 섞은 땅에 열심히 호미질 하여 제법 밭 흉내는 내었다.

고랑을 타고 상추와 쑥갓과 청경채와 몇 가지 쌈채소 씨앗을 뿌리고

조심스럽게 흙을 덮었다.

가장자리에는 골라낸 돌로 경계 담을 만들어

이곳에 무엇인가 숨어 있음을 표시했다.

 

작년 경험으로 보아 이번 주에는 주말농장도 개장을 할 듯하다.

씨 뿌리는 시기에 맞춰 개장을 하는 것으로 봐서

오늘 씨뿌리기는 적당하였지 싶긴 한데

준비 작업이 야무지지 못해서 제대로 자라 줄 지가 의문이다.

 

또 하나의 기다림이 생겼다.

작고 가벼운 씨앗이 온 기운을 다해 하품을 하며 세상으로

튀어 나올 날을 기다리는 설레임을 가지게 생겼다.

오며가며 눈길 주고 뽀로롱 싹트는 노래를 듣기 위해

귀 쫑긋 세우고 지켜봐야겠다.

부디 내 바람이 헛되지 않기를 주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