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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신부님


BY 은웅택 2006-03-22

크리마스를 맞이하여 딸아이가 집에와 있을 이다.

이곳에서는 대학만 들어가면 모두 기숙사나 학교근처 아파트 등으로 가기 때문에

고등학교만 지나면 집을 떠나 있는것이 보편적이다.

우리아이도 집에서 3시간정도 떨어진 주립대학의 기숙사에서고 있다.

모처럼 집에 아이니까 얼마나 먹고 싶은것이 많겠는가?

아이와 같이 슈퍼마?에를 갔다.

장을 보고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저쪽에 우리성당의 신부님께서 계시는것이 아닌가?.

인사를 하려고 하니 딸아이가 하지 말자고 한다.

그런데 왠걸……..

신부님께서 딸아이를 보고 우리쪽으로 오셔서 딸아이에게 말을 거는것이 아닌가?

무안해진 우리 딸아이, 신부님과 한참 얘기를 하고 나더니

하는 말이 걸작이다.

어떻게 나에 대해 저렇게 다알고 있지?

보통때는 아는척도 안했는데…………. 다시 생각 해야 겠네.’

그러니까 항상 인사를 잘하고겸손하게 굴어라. 보는것 같아도 본단다.’

신부님 께서는 딸아이에게 학교생활에 대해 물어 보시고

당신아들도  딸아이가 다니는 대학교를 나왔다고 하셨단다.

그리고 아이가 전공 하려는것 등을 많이물어 보셨단다.

물론 우리 딸아이는 미술쪽으로 전공하련다는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안다.

한해도 거르지않고 미술쪽에서는 1등상을 받았으니까….

아이의 작품이 이동네 지역신문에 2 번이나 크게 나왔을 정도니까…..

 

내가 다니는 이곳 성당의 신부님은 증손자까지 있는 할아버지이다.

현재 83 이시다.

이근처의 매우 유명한 사립대학을나오시고

이근처에 있는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오래 일하셨단다.

부인이 파킨슨씨병에 걸려 병간호를 위해 회사를 그만두시고

오랜기간을 병간호를 지극정성으로 하셨단다.

부인이 돌아 가시기전에 물어 보셨단다.

내가 죽으면 당신은 무엇을 하실거유?’

신부가 될거야.’

고마워요.여보.’

그러고 얼마 있다가 부인은 돌아가시고

다음해에 신부님은 신학대학을 가셨단다.

그때 그분의 나이는 73살이셨다고 한다.

남들은 인생 살았다고 정리 하려고 하는그때

그분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고 새로운 도전을 하신것 이다.

참고로 한국은 사제들이 결혼을 했던 사람은 자격이 안되지만

이곳 미국은 사별일 경우는 가능하다. 이혼했으면 된단다.

성공적으로 신학교를 마치시고 우리 동네 성당에 부임하신것 이다.

어려서부터 사시던 곳이니 신자들이

처음에는 신부님이라고 부를때 어색하였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신부님은 젊은사제 못지않게 사목활동을 왕성하게 하시고 계시다.

결혼생활도경험 보시고 하셨기에 안정감과 이해심도 있으시다.

지역사회에서는 봉사활동을 많이하셔서 봉사상도 받으시고

지금도 먼나라로 의료인들을 이끌고 봉사활동을 해마다 가신다.

 

그럼 이신부님이 우리 딸아이에게 우리를 무시한다고 보였겠는가?

한국도 그렇지만 이곳도 미사가 끝난후에는

신부님들이 문앞에서서 신자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눈다.

그런데 유독 우리 딸과 나한테는 고개만 까딱하시고

악수를 하시는것이 아닌가?

심술맞은 아줌마가 어떨때는 일부러 신부님 손을 먼저 잡고 악수하기도하였으나

몇번 해보고는 시들해져서는그만두었는데 그 이유를 최근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신부님은 혼혈 이셨던 것이다.

아버님은 레바논에서 오신분 이시고 어머니는 영국에서 오신분 이셨던것이다.

중동계통이었으니 우리를 보고 조심스러워서 악수도 못하신것을

우리는 오해를 하였던 것이다.

서로의 문화에 대한 오해는 간혹 그사람을 인종차별자로 몰고 가기도

 

이신부님은 우리 두아들에게 첫 영성체 의식을 집전 해 주셨고,

지금은 우리 두아들이 이신부님이 미사를 집전 하실때

복사로서 미사집전을 도와 드리고 있다.

한국사람은 우리가족 말고는 한가정도 없는이곳 성당에서

우리 두아들이 제단위에서 신부님 옆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바보같은 이엄마는 목에 힘이 들어가기도 한답니다.^^

신부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