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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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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늙음의 미추.


BY 중원 2006-03-17

 

 

오랜만에 볼 일이 있어

목적지에 가기 위해 전철을 탔다.
전철입구에 들어 서니

지하 승차장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가
꽤나 길게 밑으로 늘어져 운행되고 있었다.
혼자만 서서 내려 갈 수 있게 만든 좁은 에스컬레이터다.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의지한 채 서서히 내려오는데
뒤에서 꾹꾹 등을 찌르며 빨리 내려 가라며
재촉하는 이가 있어 뒤돌아 보니
얼굴이 뻘건게 낮 술 거나하게 한 잔 걸친
70대 되는 늙은 노인이다.

 

아니 넓은 에스컬레이터도 아니고
한사람씩 서서 내려 오는 외줄인데 왠 성화냐 싶어
그냥 참고 있는데
이제는 내 앞에 서있는 사람들 한테
빨리 내려 가라고 소리를 버럭지르니
그들과 투닥 툭닥 입다툼을 시작한다.

 

안전을 위해서는 모두가 제자리에 서서
기계에 몸을 의지 한 채 내려 가는 것인데
통로처럼 빨리 뛰어 가라니 말이 되느냐고...

참다 못해 내가 한마디 한다.
\"할아버지 여기에서는 안전이 최고 입니다.
뛸 수도 없는 곳에서 빨리 가라니
그저 서서히 내려 가면 될텐데 서두르지 마세요.
사고날 수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제서야 뒤에 있던 늙은 영감은 잠잠해진다.

 

이거 원...
늙음이 무슨 특권이라고
노인네가 뭐가 그리 급해서 대낮부터
술마신 뻘건 얼굴로
앞 뒤 구분도 못하고 그리 성화를 내는지...

늙으면 저렇게 아집도 세지는건지...

 

새삼 오늘은 늙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늙는다는 것은 뭘까?

쭈끌 쭈끌 늙어 가는 굵은 주름만큼 저렇듯 독선과 아집이 세지는 거?

 

나이들면 나이든 만큼 마음이 넓고 깊어
세상사 어지간한 일들은 포용으로 감싸지는 줄 알았다.

 

두 종류의 늙음을 본다.
하나는 연륜을 바탕으로
오히려 자기 성장과 사회에 자양분이 되어
새로워지는  아름답고 건강한  늙음과
정반대로

늙어 가는 주름만큼
마음도 굳어지고 절망적으로 변해 가는 낡고 추한 늙음.

그 늙음의 미추를 갈라 놓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관용. 인자함. 미소. 포용. 용서. 인내.
그 사랑의 요소들이 사라질 때
영혼에 주름진 낡고 추한 늙음은 오는 것이리라.

 

세월의 거센 바람에 마음이 늘어 지고 낡아 지지 않게
마음의 나사를 늘 단단히 조이며 닦아가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최소한 존경은 못 받더래도
추한 모습들은 보이지 않게
세월에 몸실려 가는

온화한 노인의 모습으로만

늙어 가면 좋으련만,
그게 어디 쉬워야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