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의 호출로 다 된 저녁에 아이들을 끌고 사무실에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 내려 향긋한 공기에 여유를 술술 풀어가며 유유자적 시골길을 걷는다.
사무실 입구에서부터 컹컹~ 짖어대며 반겨주는 견공들...
아무 이유나 바램없이 무조건 반가워해주는 유일한 존재들...
그러나 견공들보다 더 신이 나서 반겨주는 존재가 있었으니.. 시아버지셨다.
아버님이 요구하신대로 컴퓨터 작업을 시작했다.
작업이 끝나는 대로 식사준비를 하려고 했더니 아랫층 주방에서 뚝딱뚝딱 칼질소리 요란하다.
내려가보니 아버님이 한참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계신다.
일끝나고 제가 하겠다고 말려도 한사코 본인이 준비하시겠단다.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얼굴가득 미소를 머금은 아버님께서 큰아들이 좋아하는 돼지김치찌개를 맛나게 끓여서 한상 가득 맛나게 차려 들어오신다.
\"와~~~!!!\"
\"먹고 해라, 먹고 해.\"
신이 나신 아버지와 아들들 틈에서 김치찌개 한숫가락 입에 가득 넣으니 그 맛이 너무나 달다... 맛난다....
이것저것 요리법을 물어보시더니 이제 제법 요리솜씨가 좋으시다.
식사도 끝나고 일도 끝나서 집에 가려고 하니 아이들이 할아버지한테 보챈다.
같이 가요.. 같이 가서 우리집에서 자요...
마지 못해 아버님이 따라 나서신다.
버스를 타고 할아버지 곁에 앉아 룰루 랄라 신나는 아이들...
마트에 들러서 아버님이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먹거리들을 감사히 받아들었다.
\"자고 가요~ 집에 가서 자고 가요~~~\"
\"할아버지 일해야 한다. 다음에, 알았지?\"
입이 궁금하실 때 마다 드시려고 사신 멸치를 한손에 들고 사무실로 가시는 아버님...
맘이 짠하다... 아리다...
다음날 오후, 깜빡 졸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아버님이시다.
\"어제 선호때문에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 녀석 자고 가라고 그리 붙잡는데 자고 갈껄... 그냥 뒤돌아서 가다 보니 어찌나 마음이 처량하던지... 나 가고 나서 뭐라고 하던?\"
\"할아버지 자고 가시면 좋겠다고 그러지요.\"
사실, 아버님과 나는 결혼 후 부터 쭉 함께 살았다.
별난 어머님과 사이가 안 좋으신 아버지는 모자란 며느리이지만 아버님과 나는 서로 의지하고 아이들을 의지하며 재미나게 살았었다.
그런데 애 아빠 일이 그렇게 계속 터지고 결국 그런 꼴을 보기 싫으시다고 사무실로 거처를 옮기셨다. 들어오시라고 말씀을 드려도 언제나 늘 완고하게 그런 말 말라셔서 그저 왔다갔다 정리해드리고 돌봐드리는 것 외에 더 이상 말도 못 꺼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버지, 이제 잠이라도 집에서 주무셔요. 그랬으면 좋겠어요...그리고 애아빠도 이제 정리하고 들어오면 잘 할거에요.. 정리한다고 했으니 기다려봐야지요...\"
\"나쁜 놈... 마누라 처량하게 하고 지 아비 처량맞게 했으면 그만이지 어째 자식들 마저 저리 처량하게 만드누.... 선호가 처량해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 녀석이 자고 가라고 하면 자고 가야겠다...\"
\"그냥 오늘부터 들어와 주무세요.\"
\"오늘은 일이 늦게까지 있어서 안되겠고.. 다음에 녀석이 자고 가라고 하면 그때 자고 가마. 알았다...\"
쓸쓸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사라진다...
처량한 신세...
우리가 왜 이렇게 됐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