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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BY 봄눈 2006-03-14

 


                    나의 아버지

                                           


 새끼와 함께 너 댓 마리의 소가 있던 축사는 텅 비어 있다. 살붙이 같던 소를 윗마을 건실한 청년에게 넘긴 건 서울 큰 병원으로 가기 하루 전이었다. 자식 집에 다니러 와도 소를 핑계 삼아 급히 내려가시는 것을 보면 다 자라 뻣뻣해진 우리들 보단 어린송아지를 더 애살스럽게 여기는 듯 했다. 지난 가을, 갈무리 할 무렵부터 찾아온 그 복통 만 아니었다면 지금은 보드라운 새끼가 한마리쯤 더 노닐고 있을 터이다.

 소풍 가는 아이처럼 흥분 되었던 마음이 곧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비장함으로 바뀐 것은 몇 해 전부터 연락이 닿은 어릴 적 동무들과 벼르고 벼른 금강산 여행을 몇 일 말미를 두고였다.  여름부터 속이 좋지 않아 읍내에서 위내시경 검사를  한 후 죽과 약만 의지 한 채 홀로 삭였던 고통이 말기 암이라는 믿기지 않는 통보로 되돌아 왔다. 수술 날짜를 잡아놓고 집안 일 이며 농협대출금까지 모두 정리 하신 후 광에서 내오신 것은 보험 증서였다. 막내 까지 모두 출가 시킨 후 송아지를 팔아 푼푼히 부었던 모양이다.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본적이 없었던 아버지는 작은 가방 하나만 챙기셨다. 그리고는 겨울에 몸을 풀 소를 돌보지 못함을 추측 하시는지 곧바로 소를 팔았다.

 젖도 채 떼기 전에 어머니를 잃고 두 살 위의 형님과 대장부 같다던 할머니 손에서 자라서 인지 다정스러움은 언제나 무뚝뚝함 으로 내 보이셨다. 그래도 가끔 술에 취해서 끄억끄억 울부짖었던 것은 어린 마음에도 엄마가 그리워서 일거라고 생각했다. 얼핏 본 아버지의 일기장엔 첫 살림을 내고도 몇 해가 지나 장만한 송아지와 쇠죽솥을 들이는 날, 첫 잎담배 농사로 돈을 손에 쥐어본 날이 설레임으로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 후로도 아버지의 일기장을 훔쳐보며 깊은 그리움과 사랑이 무뚝뚝함 이었다는 것을 느끼곤 했다.

 수술을 위해 입원 하던 첫날밤은 결혼 하고 처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하던 밤이었다. 술에 취한 노랫가락도 없고 넋두리도 없이 새벽녘에 찾아온 덩어리의 요동은 젊은 날 울부짖었던 소리보다 조용했지만 더 가슴을 타들게 했다.  어머니의 정을 서럽게 삭이다가 이제야 내뱉는 듯 산통 같다는 아픔은 내게도 선명히 전해져 왔다.  탯줄 놓고 자궁을 빠져나온 아이 같이 고향을 저리 두고 온 아픔이 더 했는지도 모른다.

  분주한 의료진의 손길을 어머니처럼 의지하고 온갖 쓴 화학 물질을 젖줄처럼 받아 들이 듯 아버지는 몸을 맡기셨다. 덩어리를 뚝 떼어 내고 훨훨 나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하루 종일 길었던 잠은 겨우내 낙엽 같은 몸으로 지내게 했다. 자장가 대신 곤한 콧소리와 젖무덤을 내주었을 어머니 같은 고향에 서둘러 내려온 아버지는 아이처럼 푸근히 안기는 듯 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육신과 가슴에 맺혔던 덩어리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날 부터 머나먼 타향에 떼어놓고 온 것처럼 봄빛 드는 들과 소 우리를 전에 없이 오간다.  본래 무일물!(本來無一物)의 마음을 아버지는 어찌 아시는 걸까?

 지열이 끓던 들판에서 청춘을 불태우며 감자알 같던 자식들 머리 굵히느라  영근 통증으로 찾아온 아버지의 그리움. 이렇게 자식 두엇 두고 어릴 적 고향 추억을  돌이키며 사람 보다 더 그리웁다고 내뱉는 나의 언어들은 흙길에 깔린 자갈돌 같다.

  봄이 다 가기 전에  윗마을 청년에게 넘겼던 어미 소가 낳은 송아지를 새로 들일 모양이다.  외지인 에게 인삼밭으로 넘긴 밭가에서 오늘도 한참을 서성인다.

            외면은 무뚝뚝하지만 여린 속내를 가진 아버지.

            육신에 병이 돋는 줄도 모르고 한세월 바삐 사신 아버지.

            엄한 얼굴을 하면서도 자식한테 지는 아버지.


            갈무리 하지 못하는 정을 지닌 나의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