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가 노오랗게 익을 때 네가 태어났지, 할머닌 나만 보시면 녹음기처럼 한여름에 내가 태어났음을 강조하신다. 샛노란 참외를 먹으며 참외의 단 힘으로 엄마는 날 낳으셨다. 산 고개를 넘어 와 큰길가에 우리 밭이 하나 있었다. 거기가 참외밭이었다. 원두막도 짓고, 참외 철이 되면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참외를 팔았다. 지나가는 행인이 드물었던 산골에 더운 바람만 참외위에 앉았다가 그 농익은 참외는 식구끼리 동네사람들끼리 먹어치우곤 했다. 덜 익은 참외는 외 장아찌를 담았는데 내가 먹어본 장아찌 중에 으뜸이다.
참외밭 맞은편이 내가 태어나고 엄마가 태어나신 고향집이다. 엄마도 안방에서 태어나고 나도 안방에서 태어났다. 엄마도 참외가 익던 한여름에 태어나서 친정엄마 생신상 받는 날 나도 같이 생일 축하인사를 받게 된다. 팔 다리가 길은 게 얼마나 빽빽거리고 울던지, 그래도 난 네가 업어보고 싶어서 백일도 안 된 널 땡깡을 부려가며 업어봤는데, 얼마나 다리가 긴지 포대기 아래로 나온 다리가 황새다리 같았어. 막내이모는 일곱 살 때 날 업어봤던 기억은 황새다리였다.
친정엄마가 태어나고 이모들이 태어난 외갓집은 밭가운데 움푹 들어간 마당에 납죽 엎드려 있었다. 길쭉한 안방과 안방사이에 마루가 있고 마루를 사이로 기억자형으로 놓인 건넌방에서 이모들이 살았다. 모양새 없는 길쭉한 안방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와 내가 살았다고 한다. 가끔은 엄마가 같이 자고 군식구가 오면 같은 공기를 서로 푸푸 내 뿜으며 잠을 잤다. 내가 태어난 뒤부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엄마는 날 외갓집에 맡겨 놓고 아버지랑 둘이 사셨다고 한다. 내가 큰딸이고 첫 번째 낳은 자식인데 왜 그랬는지 이모들도 그 이유를 지금도 엄마에게 묻고 싶다고 한다.
다행이 외갓집 식구들이 나를 자식처럼 친동생처럼 살갑게 대해주셔서 허름한 산골 집에서 행복했다고 한다. 물론 난 기억에 없다. 다 외갓집 식구들을 통해 들었고, 태어난 모습과 자란 모습은 옛이야기 속에 전해져서 얼마큼이 진짜인지 얼마큼이 보태진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지금도 내 다리가 긴 걸보면 태어났을 때의 내 모습을 내가 안 봤어도 사실이긴 한 것 같다.
외갓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엔 미루나무 한그루가 내 다리처럼 길었다. 마루에 앉아있으면 미루나무는 반짝반짝 노래 따라 무용을 하듯이 하루 종일 손바닥 춤을 춘다. 집 주변으론 온통 비탈진 밭이다. 주로 감자나 옥수수나 콩을 심던 분분히 마른 흙이 날리는 척박 밭이다. 밭가장자리엔 밤나무가 빙 둘러 있었고, 밤나무 송충이가 털을 곧추세우고 밤나무 이파리에 척척 걸터앉아 볼 터지게 살이 찌우고 있었다. 외갓집 밭 뒤로는 동네에서 하나밖에 없던 과수원이 있었다. 봄이면 사과꽃향기와 아카시꽃향기가 온 동네를 향기동네로 만들었다. 하얀 앵두꽃과 덩달아 온 동네를 몽글몽글 뭉게구름으로 만들었다.
외갓집은 강원도 횡성 쪽에 있다. 횡성에서 한 시간가량 들어가면 산을 하나 넘어야하는데, 비포장 길엔 버스가 달려가면 분처럼 흙먼지가 일었다. 길가 잡초는 초록색이 아니고 언제나 분을 덕지덕지 바른 동네 촌티 나는 아줌마들을 닮았다. 산을 넘자마자 첫 번째 집이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납죽한 스레트집이다. 태어날 당시엔 초가집이었겠지만 내가 기억하기 시작한 유년엔 희끄무레한 스레트집이었다. 안방에 붙은 부엌은 흙바닥이었고, 나무까리를 쌓아 놓은 부엌 한켵엔 똥개가 항상 누워있다 부스스하게 일어나 죽을 때까지 이빨도 안 닦는 입으로 내 볼을 핥아 됐다.
부엌 둔탁한 나무 뒷문을 열면 펌프를 심은 우물가가 나오고, 뒷뜰엔 장독대가 반듯하다. 장독대 뒤로 대추나무와 앵두나무가 울타리 역할을 했다. 고향 뒤뜰엔 어느 집마다 앵두나무가 몇 그루씩 아기가 태어나 자라듯 자라고 있었다. 우물가 앞으로 닭장과 돼지우리가 있고, 돼지우리 옆에 초가지붕 뒷간이 있었다. 뒷간에 앉아 돼지들이 꿀럭꿀럭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볼일을 봤다. 초가지붕뒷간엔 박넝쿨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달빛아래 박꽃은 희다 못 해 창백하다.
앞마당 한 편엔 냇가에서 주어온 돌멩이로 화단을 표시하고, 빈약한 화단엔 외할머니가 심은 꽃들이 계절마다 뒤를 이어 피어났다. 앉은뱅이 채송화, 수줍은 봉선화, 나비 닮은 풍접화, 백일동안 피어나던 백일홍, 얼굴 넓은 맨드라미, 고개 흔들던 과꽃들이 봄 햇살을 먹고 여름비를 뒤집어쓰며 발로 돌리는 탈곡기 소리를 들으며 가을 내내 피어났다.
유년시절에 나는, 옆집 또래 남자아이랑 내 덩치만한 늙은 호박 하나를 가지고 싸우다가 뺏어왔다고 한다. 짠짜라라 춤도 잘 추었던, 단풍잎만한 손으로 설거지를 도와 주던, 부지런하고 잘 웃고 건강했던 유년이었다는데 지금의 나는 엉덩이 짓무르게 게으르고 웃음이 인색하여 표정이 굳어있다. 떨려서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 추는 떨치와 몸치다.
이모들을 따라 소몰이도 하고, 이모들을 따라 나물로 케고, 이모들을 따라 뽕잎도 따고, 이모들을 따라 불도 때고, 이모들을 따라 외할머니한테 잔소리도 들었다. 도랑 빨래터에서 종아리에 달라붙었던 거머리가 어제 일 같다. 냇가 가는 밭길에서 들꽃 꽃다발 만들어 냇가 잔디에 앉아 놀았던 오후도, 굽이쳐 흐르던 유리성 같던 냇물바닥도 사십 년 전 일이 아니고 어제 일이다. 분명 어제 일어난 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