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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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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프기만 한 큰 녀석


BY 풀향기 2006-02-22

위 층에 찾을 게 있어 올라갔다.
이곳 저곳 눈길을 옮기다 책이 쌓여있는 책장 한곳에서 눈길이 멈추어졌다.
그곳에 빈 봉투들이 대,여섯장 겹쳐 있었다.
살펴보니 남편 회사 봉투였다.

큰 녀석이 와 있는 동안 나 몰래 손에 쥐어 준 용돈 봉투였다.
자신은 어쩌다 놓쳤지만 자식은 고급하게 키우고 싶어 그렇게 봉투에 넣어 용돈
을 주는데 그걸 받는 녀석은 아빠의 심사와는 달리 늘 덤벙대고 늘 헤프게 돈을
쓰고 늘 헤프게 웃음을 달고 다녀 가끔씩 저 녀석이 부모 없는 세상이 되었을 때 세상을 당차게 살아낼 수 있을지 조차 의심케 하곤 한다.

그것도 어쩌면 어미인 내가 만들어 놓은 성격이겠지만.

많이 기다리다 낳은 녀석이라 내 나이가 서른 한 살에 태어났기에 동네 아이들과 어울릴 나이쯤엔 이미 가난한 세대에 태어난 어미들과 똑같이 뼈에 사무친 가난의 의식이 베어 먹을 것이 적으면 결코 제 친구들 앞에서 혼자 먹거리를 주지 않고 꼭 먹고 싶어하면 절대 나누어 먹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먹거리를 손에 쥐어 주곤 했다.

했더니,
스물이 넘은 지금 나이에도 제 손에 뭔가 있으면 풀어서 함께 써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 되어 유학하는 주제에 월급쟁이 아빠의 고단함은 전혀 생각치 못하고 큰 사업가 아들만큼 넉넉하게 사는 통에 남편과 나는 사색이 되곤 한다.

그런 녀석이 너무 야속해 어느날 남편 앞에서 녀석에게 얘기했다.

“아빠가 쉽게 돈 번다 생각치 말아라. 아무리 술을 많이 드시고 오셔도 다음날 아침 일찍 칼같이 일어나 나가실 때 엄마는 정말 아빠가 가엾다.” 라며 말하는데 남편은 뜬금 없는 다른 말로 내 말을 가로챘다.

어느날 왜 내 말을 묻어버리느냐 물었더니
“아들에게 구차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듣고 보니 수긍이 갔다.

그렇구나.
아버지도 “남자”가 우선되어야 했다는 것을 내가 몰랐구나 싶어 진심으로 미안했다.

“나는 네가 원하면 뭐든 해 줄 수 있어!” 하는 자신감을 내게 보여줬던 미혼의 풋풋한 내 남자의 모습을 잊고 있었다.
그랬듯이 아들에게도
“네가 원하면 뭐든 해 줄 수 있다” 라는 것을 자신감이 아닌 자신의 존재감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걸 알고 부터는 그의 방법이 마음 내키지 않지만 우선 순수하다고 맹신을 하고 그 전제하에 우리집 남정네들 앞날을 믿어보려고 한다.

자식은 키운 데로 크는 게 아니고 보여 주는 데로 큰다지 않던가.

나보다 먼저 자식 키운 내 님들 살아왔던 얘기를 듣고 그것을 지침으로 내 삶을 엮어보려 하니 많은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