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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름, 아줌마


BY 최지인 2006-02-03

우리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름, 아줌마!

출근길 버스 안.
매번 똑 같은 시간대이지만 버스 안의 풍경은 늘 다르다.
이미 좌석이 꽉 차서 종아리에 힘 팍팍 주고 알통을 부풀려야 할 때가
대부분이지만 왠 행운이냐 싶게 빈 좌석이 여럿 있을 때도 있다.

날씨탓이었을까.
오늘은 이불속에서 밍기적대느라 버스를 놓친 사람들로 하여
모처럼 내게도 좌석에 앉아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나두 앉아서 책에 눈을 박을 수도 있구나
아무도 눈길 주는 이 없건만 괜히 혼자서 표정관리 하느라
고상한 척 창밖에 시선 두지 않아서 좋구나...하면서
세 정거장쯤 혼자 속으로 룰루랄라 하면서 왔을까.

떠나려는 버스에 달려와 마악 올라타는 세사람, 아니 네사람이겠다.
이제 막 돌을 지난 듯한 아이를 업은 할머니와
한 손엔 커다란 가방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론
부풀어 오른 배를 안듯이 하고 힘겹게 오른 새댁 아줌마.

그냥 앉아서 모른 척 하기엔 내 심기가 너무 불편하다.
에구, 그래..내 팔자에 무슨 앉아 갈 욕심을 다 부리겠냐..ᄏ
얼른 일어나 우선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니
할머니 고맙다며 털썩 앉으시는데 그 순간 왜 울 엄마 생각이 나는지..
괜히 할머니 등에 업힌 아이의 모자를 뚫어지게 내려다 보고..

그런데 참으로 이상도 하다.
옆에 서 있는 또 한 사람 배부른 새댁이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이 추운 날에 화장기라곤 하나 없이 이 이른 아침에
어인 일로 저 큰 가방을 들고 길을 떠나는 걸까.
하여간, 사서 걱정을 하는 게 내 성격인지라..
그놈의 노파심이 발동되자 자꾸만 주위를 돌아보며 자리를 찾게 된다.

아, 그래..!
한 칸 뒤에 앉은 저 처녀가 한 정거장 쯤 더 가면 내리던디..
매일같이 같은 시간대 버스를 이용하다 보니
면식으로 익은 눈썰미가 한 몫을 하나보다.

그런데 바로 그 앞에 서 있는 아가씨.
음 저 아가씨를 살짝 제치고 내가 서면 자리는..?
슬금슬금 한 걸음씩 그쪽으로 다가가 그 앞에 서 있는 아가씨를
살짝 옆으로 옮기는 데 성공..!

드디어 다음 정거장
자리가 비자 잽싸게 새댁~~!을 불러 앉혀놓고
내 마음이 싱글벙글..
고맙다고 작게 말하고 앉는 새댁과 눈이 마주치자
싱긋이 웃어주는 내 심장이 기뻐서 마구 뛴다.
사람을 가리는 내가 이 왠 적극성인지는 모르지만..ᄏ 하여튼 좋다.

제각각의 사연들을 달리는 버스 안을
안 보는 척 한 번 스윽 둘러본다.
내가 안고 가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남의 생활에까지 관심을 둘 여유까지야 챙길 수 없지만
전혀 의도하지 않았어도 신산한 살이의 질곡들을
나도모르게 보아버릴 때가 있다. 바로 오늘 아침처럼.

할머니가 든 아이의 행장 가방에서
요란한 핸드폰 소리가 울린다.
“아, 지금 가고 있다. 그래 그래, 지금 택시 타고 안 가나.
..걱정말그라..그래, 오야..알긋다“.

전화선 너머 큰 부피의 짐과 식구들을 생각해
편하게 택시를 타고 오라는 누군가의 당부하는 목소리.
그래, 할머니와 새댁과 돌 지난 아이, 그리고 뱃속의 태아는
지금 목적지를 향해 택시를 타고 가고 있는 거다.

그 순간 왜 내가 움찔했을까.
아무 말 없이 한 칸 건너 뒤에 앉아 창 밖만 보는 새댁의 표정.
보지 말아야 할 걸 그랬다. 왜 살피듯 얼른 봐버렸는지.
너무 담담함을 가장해서 더 슬퍼보였다.
그 핏기없는 파란 입술이.

아, 우리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름..여인이여, 아줌마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