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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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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빙.


BY 도영 2006-02-02

 

사십대 중반을 넘긴 나이가 되고보니

5년차 남편은 소심해지는 반면

중성으로 되어가는 나는 빼빠처럼 거칠어져서  남편과의 트러블이 삼한사온이다.

며칠은 멀쩡하게 문제없는 부부 사이를 유지하다가도

또 며칠은 도저히 맞는 부분이라곤 없는것 같아 절망을 느끼고는 한다.

해빙과 결빙을 반복하다 보니 그주기를 용케 파악 하는것은 아이들이다.

제대한 큰아들과 입대 3개월차인 작은 아들은

적당한 선에서 되돌아오는 우리부부의 결빙기를 그다지 심각하게 받이들이지를 않는데

나나 남편이나 끝을 보는 모진 성격이 아니라 적당한  해빙과 결빙의 조화를 이루는것 같다

시댁으로 설쇠러 가기전날부터 결빙기에 접어들었다.

조바심심한 시부모님 그늘에서 수십년 살다보니

시댁에 빨리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새벽부터 가슴이 쿵쿵 거려 왔다.

나의 이런 정서불안 증세와는 달리

남편은 여유만만 하게 리모콘을 돌리며 수년전 보았던

사극을 두편이나 보면서 도무지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연산군이 나오는 사극을 보는가 싶더니

잠시후 중종이 나오는 사극에 도취 되어 조선시대와 2006년도를 넘나드는

남편에게 직격탄을 날려버렸다.

\"쾅!\"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남편은 바쁜 제스처를 취하는척 하면서

며칠전 찹쌀 두대를 들고 흥해 오일장날 한시간 기다려  만든 콩자반 <찹쌀과 검은콩과 땅콩을 튀겨 뜨거운 조청으로 버무려 네모나게 만든 과자>봉달이와

떡국 봉달이를 얼릉들고는 자동차 트렁크에 실어 넣었다.

이렇게 위태위태하기게 시댁을 갔는데 시어머니가 기름이 잘잘 끓는 내심기에

성냥불을 착 긋는게 아닌가.

\"야야!!떡국이 와이리 적노! 쌀 넉대가 이래 작다말이가..\"

\"문말인교?넉대라니오?석대 아인교?\"

\"절대 아이다.. 넉대 주었다. 방앗간 가서 니가 석대라 하는 바람에 쌀한대박 방앗간에서 떼어무긋따.!~~\"

으`~~분명 석대 주었건만 저렇게 우기실까..참아야 하느니라 <속으로>

쌀한댓박에 설장 봐온 큰며느리한테 쪄렁 쪄렁 고함을 치자

막내 시동생이 보다 몬해 형수인 내편을 들고 나섰다.

\"엄마.!고만해라.석대면 우쨔고 넉대면 우쨔노.이왕 이래된거 그냥 넘아가라마~~!\"

막내시동생의 응원에 힘입은 나는

참아야하느니라....참아야.참아..아..못참아..폭팔을 했다

오늘만큼은 어머니를 꺽어야겠다 마음을 먹고는

\"다음 명절부터는 어머이가 다하이소~내는 인쟈 모르니더.어무이가 설준비 다하소마..\"

쪄렁쪄렁한 시어머니의 고함에 내고함소리는 주방을 튕겨져나와 거실바닥을 치고 있었다

예상밖에 반격을 가하는 맏며느리에 거칠음에 추춤하던 어머니는

잠시후 생각해보니 쌀한댓박에 맏며느리 위상을 떨어트린거에 미안했던지

분이 덜풀린 내가 조금전 흥해장에서 보아온 대추며 밤 봉달이들을

요란하게 꺼내어 내놓자 주섬주섬 들어서 뒤란으로 챙겨 가셨다

아랫동서들은 고부간의 대립에 숨소리도 죽이고

후라이판에 부추전 뒤집는 뒤집개 소리만 조심스레 날뿐이였다.

그래도 시동생들의 재롱에?즐거운 설을 쇠고 집에 돌아오는중

남편은 ...

\"와 당신 막강하데 엄마 한마디 하니 기선제압 딱 하데..\"

\"그래 나 쎄다와..천하무적이야...건들지마..\"씩씩 거렸다...켁..

이튼날 목욕탕이 딸린 창포하와이란 찜질방을 홀로 찾았다.

수십명의 설 수발을 한후라 온몸을 맞은듯 얼얼했기에

찜질방 가마떼기위 에 몸을 눕히고 이마에 한손을 얹고는 내자신을 들여다보았다.

그 막강한 시어머니에게 대든 기쎈 나를 반추해보았다.

아들딸 차별을 했던 친정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3년을 아버지를 외면 했던 나를 들여다 보았다.

나..그런 여자 아니였는데.

나..순한여자였는데

나..친정부모에게 인정스런 딸이라 인정받았었는데

나..칠칠맞고 어진 며느리라고  시아버님의 취중 진담을 들었던 며느리인데.


내가 왜 이렇게 거친 여자로 변해 가는건가

요즘들어 왜 인생의 무상함이 느껴지는건가.

젊음의 상실감인가.

엄마로서의 할 일이 점점 없어지는 탓일까.

아니면 설정할 미래가 더 이상 없기 때문인가.

뽀죡한 답이 없었다

내 친정 아버지를 떠올렸다.

가장 믿었던 딸에게 외면당하고 남편의 손에 이끌여 3년만에 찾아가니.

쾌씸한 감정 감추시고

막국수를 사주겠다며 돈을 챙기던 아버지의 늙은손.

가까이 사시는 시어머니를 떠올렸다.

네명의 아들 양손에 쥐시고

네명의 며느리들 위에서 당당히 군림 하셨던 시어머니.

한때는 위풍당당했던 그런 시어머니에게.

설전날 대들던 맏며느리에 기세에 눌려 뒤란으로 슬쩍 나가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니

연민과 함께 막강해진 내모습에 쓸씁한 기분이 들었다.

찜질방을 나오니..

어느새 어둠이 내린 겨울 거리는 황량함으로 가득 했다.

집으로 가는 택시를 타니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가사가 마음에 콕 닿는다

오늘도 내기분은 여전히 결빙이다

나의 해빙기는 언제나 올련지..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