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는 광부이셨다.
적어도 내 유년의 기억속에서 약 칠년간은 분명히 검은 얼굴을 하고
저녁노을을 이고 돌아오신 적 없는 아버지였다.
진달래가 붉게 온통 칠을 덥어 쓸 무렵
직접 지은 오두막에서 난 첫 아이로 태어난 계집애다.
딸이라고 해도 섭섭치 않은 얼굴로 나의 볼에 얼굴을 대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래서 진달래피고 또 피고 하는자리에 나의 태를 묻었을 것이고
열달 내내 굶다시피한 어머니의 얼굴을 찬찬히 더듬었을 아버지.
개울가에 놓여진 징검다리를 총총대며 건너 뛰어가면
작은 마을에 사진관에 나를 가운데 앉혀놓고 한살 터울 남동생을
어머니의 치마폭사이에 세워둔 가족사진의 얼굴이 마지막 아버지의 흔적이었다.
멀쩡하게 도시락을 싸갖고 갔는디...
저녁엔 병원에서 사람을 보낸다냐...
막내동생은 아직 어머니의 뱃속에서 아직 크고 있는데.
나의 여덞살은 어설픈 불행이라면 막내는 완전한 불행이었다.
뭔지도 모를 슬픔이 태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네남매는
어디로 보낼지 말지 .누가 키워야 할지 말지, 젊디 젊은 어머니의 눈 속엔
가시같이 찌르는 우리 네남매의 눈망울에 더 기막혔을 것인데.
어머니는 당당하게 낮에 큰 트럭을 부르고 이삿짐을 싣고 서울로 서울로 올라갔다.
그 이후는 물 설다 사람 설다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채 덤벼대는 무차별 공격에
아버지의 기억을 조금씩 조금씩 내 주었다. 내 기억창고는 특히 유년의 기억 저장고는 마지막 한 장의 가족사진의 아버지 얼굴뿐이었다. 나와 똑같이 생긴 얼굴로.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나 또한 나를 닮은 아들을 낳았다.
비록 진달래는 피지 않은 가을이었는데, 유독히 산비둘기가 그렇게 우짖는 동네에서
산국화가 피어 흔들대는 바람결에 아버지의 숨결이 보고 싶었다.
처음엔 무엇인지도 모를 설움이라면 나중에 안다고 해도 속시원찮을 울컥거림처럼 말이다.
분명히 외손자인데 그 외손자가 나에게 외할버지는 언제 돌아가셨냐고 물어온다.
열다섯살의 사춘기는 외할버지의 존재가 생뚱맞게 떠오르게 하는 걸까.
우물쭈물 입에 매달린 말은 버벅거리는 것도 아니고. 그 때가 언제였더라..
문득 아버지의 기일이 시월이고 때는 서리를 막 내릴무렵이었고, 꽃지는 바람결에 실려 떠나간 때가 외손자가 태어날 무렵과 맞물려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이제야 맹추처럼 깨닫기는 ...
니 외할아버지는 너를 보내기 위해 가을에 떠나셨지...
아들의 눈에 검은 눈동자에 나를 꼭 닮은 얼굴이 칠해지고 있었다.